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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Aug 09. 2024

네가 나에게 왔다

17장


  “희야야, 안녕!”

“응.”

“이번 주 잘 지냈어?”

“응.”

“아빠랑 잘 오고 있어?”

“응.”

“엄마는 희야 빨리 보고 싶어. 이따 보자.”

“으응.”

희야의 탁한 허스키가 폰을 타고 귀로 흘러든다. 선유는 금요일마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호진에게 전화를 걸어 희야와 대화한다. 희야는 만나면 곧잘 말을 하지만, 전화할 때는 “응.”이 전부다.

 버스 창밖으로 노란 은행나무와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나무들이 언뜻언뜻 스친다. 선유가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긴 트렌치코트를 입은 선유는 희야에게 도톰한 가을옷을 사줘야겠다고 궁리한다. 요즘 선유는 계절 탓인지 다소 감상적인 기분에 젖을 때가 많다. 앞으로 두 달, 길어야 석 달이면 희야의 입양이 확정될 것이다. 그날을 기대와 설렘에 차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 모든 일이 신기루처럼 없었던 것이 되어 버릴까 봐 두렵다. 선유의 상상력은 고삐가 풀려 희야에게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나거나, 자신과 호진에게 불운이 닥쳐 희야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소설 같은 이야기를 꾸며낸다. 그런 상상을 할 때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어느새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문학 전공자인 선유가 너무 소설을 많이 읽은 탓인지도 모른다. 희야가 눈앞에 현실 속 존재로 다시 나타나야 선유의 불안한 상상력이 경박한 요동을 멈춘다.

  온통 시멘트로 발라져 있는 아파트 앞 빈터는 저녁 무렵이면 차들로 빼곡하게 들어찬다. 오른쪽 구석 정자가 세워진 곳이 아파트 후문이다. 그곳에는 제법 키 큰 나무들이 심어있어 입구에 들어서는 사람을 가린다. 아직 조명이 밝혀지기 전 어스름 속에서 호진의 손을 잡은 희야의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희야야!” 누군가를 이렇게 설렘을 가지고 기다려 본 적이 있었나. 선유는 대학생 때 과에서 좋아하던 형들(80학번인 선유는 당시 유행하던 대로 남자 선배들을 형이라 불렀다)을 우연히 마주치기 위해 도서관 안을 자주 샅샅이 훑고 다니곤 했다. 그러다 그들의 옆모습이나 뒷모습이 포착되면 심장이 세차게 고동쳤다. 찾지 못한 날에는 가을 낙엽이 바람에 쓸리듯 이리저리 캠퍼스를 배회했다. 서른이 넘어 호진과 연애를 할 때까지 선유는 데이트 약속을 하고 만나기 전 설레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호진과 짧았던 넉 달의 연애가 끝나자 그 설렘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 경험하는 감정은 짝사랑에 빠진 듯, 그러나 상대가 반드시 마음을 열어주리라 확신하기에 애타지는 않는 기묘한 설렘이다. 희야는 아직도 선유를 보면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엄마!”하고 달려오지 않는다. 선유는 현관문을 열어젖히며, 혹은 밖에서 선유를 발견하고 희야가 “엄마!”하고 달려올 그 순간을 상상하며 황홀해한다. 그날이 선유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다.

  평온하게 시간이 흐른다. 이제 희야는 울지 않고 이박삼일을 잘 지낸다. 희야의 마음이 안정되어 간다고 판단한 선유는 입양에 대해 진지하게 희야와 대화할 기회를 엿본다. 어느 날 밤, 선유와 희야는 함께 침대에 누워 있다. 희야가 침대에서 잠이 들면 호진이 안아서 희야의 방으로 꾸밀 방에 데려다 눕히곤 했다. 선유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희야는 이제 아빠, 엄마랑 살 준비가 됐어?”

“응.”

“아빠, 엄마랑 살면 좋을 것 같아?”

“응.”

“그럼, 이제”

선유는 잠시 숨을 가다듬는다.

“낳아준 엄마하고는 살지 못하게 될텐데 괜찮아?”

침묵. 희야의 표정에 별다른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선유는 잠시 기다린다.

“나는 엄마가 나를 보러 와 주길 기다렸어. 언젠가 엄마가 찾아올 줄 알았어.”

쿵! 커다란 망치가 가슴을 내려친다. 무엇인가가 부서져 아래로 떨어진다.

“그랬구나...그런데 엄마가 오지 않았구나.”

“응.”

“그래서 많이 속상했어?”

“아니. 그래도 꼭 올 줄 알았어.”

“그랬구나. 우리 희야가 엄마를 많이 기다렸구나...”

희야의 자아가 형성된 후로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는지 비로소 비밀의 봉인이 해제된다. 그 희망 하나로 희야는 박탈된 유년기를 버텨왔을 것이다. 생모라는 존재는 희야의 환상 속에, 꿈속에 살아있었다. 다만 그 형체를 알 수 없게, 유령같이 모호하게 희야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맴돌고 있었다. 입양되지 않는다면 희야는 앞으로도 생모가 찾아오기를 계속 기다릴 것이다. 아려오는 가슴에 ‘가만있어.’라고 명령을 내린 후 선유는 눈물이 날 것 같아 침을 꿀꺽 삼킨다.

  “그럼, 이제 아빠, 엄마가 생겼으니까 낳아준 엄마 기다리지 말아. 나중에 희야가 커서 만나고 싶으면 그때 만날 수 있게 도와줄게. 그럴 수 있어?” 희야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희야의 눈에 물기가 가득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그렁그렁한 눈물에 희야의 슬픔이 고여 있다. 상실감.  말로 표현해낼 수 없는 그 먹먹한 감정의 실체를 마주 대하니 선유는 더 할 말을 찾기 어렵다. 차라리 엉엉 울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도 좋으련만. 그저 양쪽 눈에 그득히 담겨있는 짜디짠 물. 선유는 희야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 작은 몸을 살포시 안는다. 선유의 뺨에도 물이 흘러내린다. 입양으로 아이는 새로운 부모를 얻지만 동시에 생부모와 다시 결합할 수 있다는 희망은 산산이 부서진다는 뼈아픈 진실을 선유는 어렴풋이 체감한다. 그 진실은 선유의 상실감에도 맞닿아있다.

  선유가 5학년 때 엄마가 한 달간 집을 비웠던 적이 있었다. 선유는 아직도 그때 엄마가 왜 집을 나갔는지, 어디 가서 무얼 했는지 모른다. 다시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그 사정을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한 달은 선유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매일 엄마를 그리워하며 해가 질 무렵이면 장독대에 올라 마을 어귀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엄마 사진을 가슴에 품고서 혼자 있을 때마다 꺼내 보고 남몰래 엉엉 울곤 했다. 영영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 두려움과 슬픔으로 다른 감각이 마비됐다. 세상과 선유의 마음은 텅 빈 무(無)로 변했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선유에게 엄마는 돌아오지 않으니 더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보다 잔인한 말은 없었을 것이다. 희야는 생모에 대한 기억도, 추억도 없어서 선유와는 다를 것이다. 선유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엄마에 대해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희야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도리가 없다. ‘내가 희야를 힘들게 하는 말을 한 것일까.’ 그래도 선유는 희야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빨랐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 희야는 꿈속으로 빠져든다. 오늘은 꿈속에서 낳은 엄마와 작별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만나게 될 날을 서로 기약할지도 모른다.

“여보, 오늘 희야와 생모에 대해 이야기했어.”

“어떻게?”

“희야가 그동안 생모가 찾아오길 기다렸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을 참느라고 혼났어.”

“그랬겠네.”

공감 능력이 거의 제로라고 선유가 늘 타박하던 호진도 찡하게 울려오는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을 감지한다.

“그래서 내가 이제 낳아준 엄마는 더 기다리지 말라고 했어. 나중에 커서 만나도록 도와주겠다고.”

“그랬더니 희야가 뭐래?”

“아무 말도 안 하고 눈물만 그렁그렁하더라고. 가엾어서 나도 같이 울었어.”

“흠...”

“내가 희야를 힘들게 한 건 아닐까 싶더라고. 괜히 얘기했나?”

“그래도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럴까?...희야 생모는 어떤 사람일까?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당신은 궁금하지 않아?”

“조금 궁금하긴 하지.”

“난 아주 궁금해. 내가 이런데 희야는 오죽하겠어? 희야가 입양되고 나서 마음에 꽁꽁 묻어두고 혼자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같이 아파해주고 함께 가려고 입양하는 건데. 이런 마음을 희야가 알 날이 올지 모르겠다.”

“언젠가 알게 되지 않겠어?”

“그러길 바라지만...입양하고 나서 생모에 관해 물을 텐데. 다른 것은 다 말해줄 수 있는데, 희야를 낳았을 때 생모 나이는 말 못 할 것 같아. 희야가 너무 큰 충격을 받을 거야. 그래도 자꾸 물어보면 어떡하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그래. 지금 고민해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 어린 나이에 임신하고 출산을 하는 게 어떤 걸까? 희야 생모가 희야를 뱃속에 품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난 도저히 추측도 하지 못하겠어. 희야를 보낼 때 마음은 어땠을까? 아주 슬펐겠지? 너무 어려서 잘 몰랐을까?”

  어느새 선유는 혼자 독백 중이다. 호진의 의식에는 이런 질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유는 가끔 어딘가 살고 있을 희야의 생모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지금 잘살고 있나요? 나중에 희야를 꼭 만나주어야 해요. 건강한 모습으로 잘 지내서 희야를 만났을 때 희야 마음이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희야 사랑하면서 잘 키울 테니 희야에 대해 이제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동안 힘들었지요? 언젠가 만난다면 한번 안아 주고 싶어요. 희야의 삶에 나타나서 아프고 상처받았던 마음 훌훌 털어낼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선유는 희야를 낳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다. 희야의 생모가 희야를 낳을 결정을 한 게 대견하기는 하지만 희야를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가늠할 수 없다. 희야와 부모, 자식으로 만나게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생모가 희야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선유가 희야를 딸로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궁에 열 달 동안 품었던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생모에게 어떻게 낳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기묘한 운명의 얽힘을 어찌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잠든 희야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선유의 마음에 거미줄이 복잡하게 짜인다.

  선유는 언젠가 보육원에서 보았던 희야의 아기 때 사진을 떠올려본다. 희야의 앨범을 아직 받아올 수 없어서 어렴풋하게만 기억난다. 희야에게는 돌 사진이 없었다. 돌 무렵 어느 날 몰아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사진들 속 희야는 항상 울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악을 쓰듯 울거나 그친 울음이 채 진정되지 않아 누군가가 준 폴더폰을 꼭 부여잡고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뭔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활짝 웃는 사진은 하나도 없었다. 웃을 때조차 허탈한 듯 넋을 놓은 표정이었고 울지 않을 때는 뭔가를 골똘히 응시하고 있었다. 사진 밖에서 희야를 보고 웃어주거나 ‘까꿍’이라고 해주며 눈을 맞추는 누군가가 없었다. 사진을 찍는 그날 희야가 유독 많이 울었던 건지, 왜 하필 그날 그토록 울었던 건지 여느 아이들의 한 살 때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그 사진들이 남긴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선유는 차마 다시 그 사진을 보자고 할 수 없었다. 입양하고 나면 두고두고 볼 생각이었다. 희야를 키우는 것이 버겁다고 느껴지거나 혹시라도 입양을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사진들이 선유의 마음을 희야에게 다시 돌이켜 줄 것이다. 희야가 혼자 울지 않도록, 선유를 향해 방긋 웃도록 그때 선유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과연 그 결핍을 메울 수 있을까. 얼마나 가능할까. 희야를 키우면서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눈을 맞출 이 하나 없었던 그 어린 희야를 기억하면서 이겨내리라 선유는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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