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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Aug 17. 2024

네가 나에게 왔다

18장

  호진의 부모에게 희야의 입양 사실을 알릴 시점이 다가왔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점, 시부모의 영향이 전혀 미칠 수 없는 시기를 기다려왔다. 사 년 전 췌장암으로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난 선유의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쁜 여자아이 하나 입양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지나가는 아이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다가가서 “아유, 예쁘다”라고 할 정도로 아이를 좋아했다. 진작 용기를 냈더라면 희야를 보여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 호진의 부모는 이제 더 이상 선유가 출산하기를 기다리지 않는 눈치다. 언제부터인가 아이에 대한 말이 쏙 들어갔다. 그러나 두 분이 입양을 반기실지는 미지수다. 한 번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 본 적이 없었다. 선유와 호진은 두 분의 반응이 어떻든지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기뻐해 주신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저녁 식사를 마쳤다. 호진의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서도 오른손을 덜덜 떤다. 맨발인 양쪽 발은 부어오르고 검붉은 빛을 띠고 있다. 호진은 아버지가 예정된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사가 이 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한 시기가 거의 다 되었음에도 아버지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선유는 시아버지가 언제든지 돌아가실 수 있다고 호진의 마음을 준비시키려고 하지만 그 말은 호진의 견고한 방어를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저희 드릴 말씀이 있어요.” 호진이 천천히 입을 연다. 평소 말이 빠른 편인 호진이 신중하게 말을 꺼내자 호진의 부모는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음을 직감한다. 조용히 들을 준비를 갖춘다. “무슨 얘긴데 그러냐?” 호진의 어머니가 의자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묻는다. “저희가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어요.” 이 말이 떨어질 때 선유는 재빨리 시부모의 표정을 살핀다. 그런데 뜻밖에 두 분의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놀람도, 당황스러움도 없다.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자세다.

  “저희가 4월부터 아이를 만나고 있어요. 곧 법원에서 결정이 날 거예요. 입양이 거의 확정되면 말씀드리려고 그동안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남자아이냐, 여자아이냐?”

“여자아이예요.”

“나이는 몇 살이냐?”

“일곱 살이요.”

“이름은 뭐냐?”

“희야라고 해요.”

“희야, 희야...예쁜 이름이네. 그래 어디서 만났냐?”

“희야가 자란 보육원에서 만났어요. 홀트에서 연결해 줬어요.”

“사진은 있냐?”

“네. 보여드릴게요.”

호진은 폰을 꺼내 그동안 찍어두었던 희야의 사진을 한 장씩 보여준다.

“예쁘게 생겼네.”

호진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폰을 바짝 들이댄다. 호진의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희야의 사진을 더듬으며 초점이 흐릿해진 눈에 힘을 준다.

“너희가...결정했으니...잘 키워라...아이...키우는 게...아주...힘들다...”

떨리는 목소리, 또렷하지 않은 발음으로 호진의 아버지는 말한다.

  선유는 뭉클해지며 눈물이 핑 돈다. 두 분 때문에 입양하는 걸 미뤄왔다. 원망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아무 상의도 없이 어떻게 너희끼리 결정할 수 있느냐, 아이 없이 살 줄 알았더니 무슨 입양이냐, 그런 비난이나 질책을 들어도 할 수 없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너희가 알아서 잘 생각하고 결정했겠지.” 어머니도 이 말만 하고 더 이상 부연하지 않는다. 이런 두 분의 태도가 의외이고 놀랍다.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싶다.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시다니.’ 선유는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호진의 말에도 안도감이 묻어난다.

“다음에...올 때...희야...데리고...와라.”

“네, 그럴게요.”

더 이상의 장애물은 없다.

  10월 셋째 주 토요일. 선유의 사촌 언니인 선미의 딸이 수원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청첩장을 받았다. 수원에서 호진의 부모님이 사는 안산은 가까운 거리다. 그날 희야를 결혼식과 부모님 댁에 데려가기로 했다. 희야는 호진의 사촌 동생 말고는 아직 친척이 될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 이날 희야는 한 번에 많은 미래의 친척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 가족의 개념도 확실치 않은 희야에게 친척의 개념이 들어서 있을 리가 없다. 선유는 미리 누구의 결혼식인지, 누가 오는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누구인지 설명한다.

“엄마한테 사촌 언니가 있거든. 사촌이 뭔지 알아?”

“몰라.”

“그래, 모르지. 엄마한테 아버지가 있었거든. 엄마 아버지한테 형이 있었어. 엄마 아버지와 형이 형제인 거야. 이 말은 알아들어?”

“응.”

“엄마 아버지 형한테 자식들이 있어. 그 자식들하고 엄마하고 사촌이라고 해. 어려워?”

“응.”

희야가 제대로 이해할 리가 없다. 나중에 천천히 알게 될 것이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일단 설명을 계속한다.

“엄마 사촌이 다섯 명인데 그중에 제일 큰 언니가 있어. 엄마보다 여덟 살이 더 많아. 엄마의 엄마가 엄마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어. 그건 알지?”

“응.”

“그때 그 언니가 엄마네 집에 와서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줬어. 그 언니 딸이 결혼하는 거야. 거기 가면 엄마 사촌들을 다 볼 수 있어. 그리고 희야 외삼촌하고 외숙모도 만나게 될 거야.”

희야는 선유의 두 남동생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다. 미국에 사는 호진의 여동생은 고모이고 선유의 남동생들은 외삼촌이라고 들었다. 희야는 모든 호칭이 혼란스럽고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다. 그저 엄마, 아빠하고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밖에 그 이상은 파악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가 마련되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도 사진으로만 보았던 엄마의 남동생을 처음 본다는 것은 조금 흥분되는 일이다. 그 사람은 엄마가 아는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른 특별한 사람일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희야는 선유의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고 호진의 부모님이 자기의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유치원에서 그 정도는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희야는 약간 긴장한다. “희야야, 할아버지가 아프셔. 잘 걷지도 못하시고 말도 잘 못하셔. 그래도 무서워하지 말아. 알았지?” 초점이 분명치 않은 회색으로 변한 눈, 검붉게 퉁퉁 부어오른 발, 제대로 앉고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모습에 희야가 겁을 먹을 수도 있다.

“할아버지가 왜 아파?”

“응. 파킨슨이라는 병인데 그 병에 걸리면 그렇게 돼.”

“밥도 못 먹어?”

“먹기는 하시는데 자꾸 음식을 흘리시지.”

“으응...”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희야는 살짝 무섭다.

  선유는 희야에게 도톰한 분홍색 원피스를 사 입혔다. 희야를 처음 선보이는 자리라 더 예쁘게 꾸며주고 싶었다. 소매가 없는 원피스라 분홍색 긴 티를 안에 받쳐 입히고 고동색 레깅스를 신겼다. 이제 선유는 원하는 대로 희야의 옷을 사 입힐 수 있는 만족감을 맛본다. 그렇게 입히고 보니 희야에게 귀티가 흐른다. 처음 만났을 때 상상할 수도 없었던 변화다. 희야의 얼굴에 조금씩 빛이 나고 햇빛에 많이 그을려서인지 거무튀튀하던 낯빛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다. 알고 보니 희야는 피부색이 하얀 아이였다. 보육원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희야의 외모에서 보이는 변화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희야에게 온 관심을 기울이고 희야를 꾸준히 바라봐주고 접촉하는 어른의 존재로 밖에는. 그런 변화를 보고 만족감을 느낄 때마다 선유는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결혼식에는 선유의 사촌들, 조카들까지 다 모여 희야를 소개하느라 정신이 없다. 결혼식과 함께 또 다른 의식이 치러지고 있다. 미리 전화로 희야 입양에 대해 알려주어 사촌들은 자연스럽게 희야를 반긴다. 선유의 두 사촌 언니인 선미와 선영은 선유가 중학생일 때 일 년씩 집에 와 살림을 해줬다. 둘 다 이십 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다. 선유 큰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다. 선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언니들이 없었더라면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지 깨달아갔다. 언니들은 선유의 작은 엄마들이었다. 선미와 선영 덕분에 어머니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않고 그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날 큰딸을 결혼시키는 선미는 자신의 결혼식 때 고등학생이었던 선유가 제대로 옷도 갖춰 입지 못하고 왔던 일을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낸다. 선유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결혼식인데도 속이 상했다. 그러던 선유가 결혼했는데도 아이 없이 살아가는 게 내심 안쓰러웠다. 선유가 입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선미는 이제야 선유가 제대로 된 가정을 이루는 듯하여 기뻤다.

  선영도 마찬가지였다. 유난히 선유가 따랐던 선영은 여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선유가 늘 짠했다. 러시아에서 귀국해 우울증에 걸렸을 때 선유는 영주에 사는 선영의 집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노을이 내리깔리는 천변을 산책하며 선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두서없이 꺼내 나눴다.

“언니, 언니들한테 얼마나 고마운지 이제 알겠는데 내가 보답도 못하네요. 이렇게 아프기나 하고.”

“보답은 무슨. 너희들이나 잘 살면 되는데 이렇게 아파서 어떡하니...”

선유는 유학 후 남보란 듯이 잘되어 선미와 선영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던 강의마저 그만두고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밑바닥에 곤두박질쳐 있는 자신의 처지가 기가 막혀 날마다 울었다. 선영을 만날 때마다 선유는 그 시절이 악몽처럼 기억났다. 그 악몽의 와중에 선영은 선유를 데리고 부석사와 도산서원, 희방사 등 영주 근처의 관광지로 차를 몰았다. 숨조차 쉴 수 없었던 선유에게는 잠시나마 푸근했던, 오아시스 같았던 며칠이었다. 선영은 희야를 보고 속으로 눈물이 난다. “네가 이제 엄마가 되는 거니?” 그 말에 선유도 울컥하고 뭔가가 치솟는다. “행복하게 잘 살아.”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선유의 큰동생 준과 준의 아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차가 막혀 늦는다는 연락이 온다. 피로연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두 사람이 피로연장에 들어서 서둘러 사촌들과 인사를 나누고 선유와 호진 쪽으로 다가온다. “아, 네가 희야구나. 반가워!”

준의 아내가 희야를 보고 살짝 포옹한다. 희야는 수줍은 미소를 띠면서도 몸을 빼지 않는다. 준의 아내는 희야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시키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선유는 준의 아내를 잘 따라다니는 희야가 흐뭇하다. 준은 선유에게 딸이 생기는 게 기쁘다. 동생인 훈의 딸과 아들인 두 조카가 있지만 입양을 통해 조카를 얻는다는 건 사뭇 벅찬 감흥을 일으킨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조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외삼촌으로서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설렌다. 평소 입양은 아무나 결심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나가 이런 결심을 했다니 준은 새삼 놀랍다.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한 아이를 키울 기회를 누나 부부가 얻은 사실이 감사하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을 텐데 두 사람이 힘을 모아 잘 헤쳐 나가기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딩동.

벨 소리가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활짝 열린다.

“어유, 우리 희야 왔네.”

호진의 어머니가 환한 웃음을 머금고 희야를 반긴다.

“예쁘게도 생겼네. 우리 희야 정말 예쁘네. 옷도 예쁘게 입었네.”

거실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현관에서 희야의 외모며 옷차림을 칭찬한다. 호진의 부모가 사는 아파트는 꽤 넓은 평수다. 거실문을 열자 호진의 아버지가 사용하는 휠체어가 희야의 눈에 들어온다. 정면으로 보이는 안방 문이 살짝 열려있다. 아버지가 파킨슨에 걸린 후로 그 방은 어머니 혼자 쓰는 공간이 되었다. 아버지는 오른쪽에 있는 서재에서 지낸다. 서재 한가운데 병원용 침대가 놓여 있고 방구석에는 기저귀와 물티슈가 쌓여있다. 반쯤 열린 그 방문을 통해 병원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배어 나온다. “희야...왔어?” 보이지 않는 어디에선가 목소리만 들려온다. “네, 아버지.” 거실로 들어서니 왼쪽 소파에서 호진의 아버지가 혼자 일어서려고 힘을 주고 있다. “일어서지 마세요, 아버지.” 호진은 희야의 손을 잡고 아버지 앞으로 데려간다.

  희야는 아파트에서 나는 냄새와 휠체어, 그리고 손을 덜덜 떠는 할아버지를 보고 겁이 난다. 이렇게 아픈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희야는 놀라거나 무서워하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동물적인 감각이 희야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지시를 내린다. “희야...이리...와서...앉아..” 아버지가 무릎을 가리키며 희야를 부른다. “희야야, 할아버지 무릎에 가서 앉아.” 희야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 무릎에 가서 앉는다. 그리고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긴장되고 어색할 텐데..’ 희야의 눈치를 살피던 선유는 희야의 의젓한 행동에 내심 흐뭇하다. 희야를 안고 있는 시아버지의 마음이 전달되어 뭉클하다.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아버지, 희야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호진의 말에 아버지는 희야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발음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버지와 하나님만이 무슨 기도인지 아시리라. 그동안 희야는 몸을 비틀거나 꿈지럭대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 있다.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벗어난 희야는 조금씩 긴장이 풀어진다. 처음 선유의 집에 왔을 때처럼 거실을 둘러보며 “이건 뭐예요?”하고 묻기도 한다. 실내에서 연습하기 위해 베란다로 향하는 창문 앞에 깔아놓은 초록색 미니 골프장이 신기한지 자꾸 그 주변을 얼쩡거린다. “희야도 한번 쳐 볼래?” 하니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호진이 시범을 보이지만 골프공이 여간해서 구멍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희야는 또다시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피곤한 하루였는지 금세 꿈나라로 빠져든다. 선유는 훌륭하게 행동한 희야를 마치 자기가 키우기라도 한 듯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에 벅차오른다. 희야를 예쁘게 봐주는 시부모님에게도 고맙다. 이렇게 삼대가 한집에 있는 광경을 얼마 전까지 상상이나 해 볼 수 있었을까. ‘이제는 희야와 함께 시댁을 방문하겠구나.’ 눈앞에 미래가 선명히 펼쳐진다. 그러나 선유도 호진도 곧 닥쳐올 일을 전혀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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