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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Aug 23. 2024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19장

  계절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떼어 11월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11월에는 바쁜 일정이 많다. 홀트에서 주최한 입양가족 행사에 참여한다. 봄 캠프 때와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베이지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가을 코트를 입은 희야는 이제 다른 아이들 틈에서도 그다지 주눅 들지 않는다. 내년쯤이면 희야도 어른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장기자랑을 하는 다른 입양아들과 함께 서 있을 것이다. 희야의 얼굴에도 사랑받은 아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생기가 돌게 될 것이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알고 지낸 선교사 부부가 라오스에서 잠시 나왔다. 수원 화성에서 만난다. 채 선교사 부부에게는 일 년 전 아들이 태어났다. 한 부부는 출산으로, 한 부부는 입양으로 자녀를 얻었다. 이제 선유는 아이가 있는 다른 부부들을 만날 때 전과 다른 동질감을 맛본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선유와 호진이 다녔던 교회의 선교사가 한국을 방문해 연락이 왔다. 두 사람을 아는 모든 이들에게 희야를 소개하라는 하늘의 뜻일까. 서울에 간 김에 시청역 근처에 있는 덕수궁에 들른다. 찬 바람이 불어 분홍색 패딩과 털부츠를 입히고 신기니 부티마저 풍긴다. 가볍게 뿌리는 가을비에 젖은 은행나무들이 노란 자태를 뽐내며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아이들 손을 잡고 고궁을 찾은 방문객들 틈에 자연스레 녹아든 세 사람이 가족임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희야는 작은 우산을 마다하고 굳이 커다란 검은 우산을 쓰겠다고 제 몸을 다 덮을만한 우산을 들고 브이 자를 그린다. 살포시 웃는 미소가 선유가 그려왔던 아이의 미소와 정확히 겹친다. 

  이 선교사 부부를 따라 한국을 처음 방문한 안토니나 전도사는 육중한 몸으로 희야를 보자마자 와락 껴안는다. “아이고, 네가 희야야?” 안토니나 전도사는 한국인 2세로 카자흐스탄 침켄트에서 페테르부르크로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이주해 살던 중, 우연히 길에서 이 선교사를 만났다. 이 선교사의 집에서 성경 공부를 하다가 신학교까지 가서 전도사가 되어 이 선교사의 모든 사역에 함께 했다. 안토니나 전도사는 미혼 시절에 선유를 알았고, 선유와 호진의 신혼생활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신혼집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을 때, 바로 집을 나와 오 갈 데 없게 된 그들에게 새 보금자리를 찾아준 사람도 안토니나 전도사였다. 그들은 같은 아파트 건물 1층과 10층에 살았다. 해마다 혹한의 겨울이 되면 안토니나 전도사의 남편인 겐나디는 어디선가 잡은 들개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삶아 페테르부르크의 선교사들을 초대해 대접했다. 선교사들이 돌아가고 나면 “호진, 소냐. 우리 집에 와서 고기 먹어요.”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개고기라면 질색하던 선유도 달리 몸보신을 할 수 없는 러시아의 북쪽 도시에서 기꺼이 국물과 부드러운 살코기를 몸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두 사람은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안토니나 전도사는 선유가 엄마가 된다는 게 감개무량하다. 서른 살에 처음 만났던 선유가 이제 오십을 앞두고 엄마가 되다니. ‘소냐는 좋은 엄마가 될 거야.’ 안토니나 전도사는 선유를 늘 실제보다 약간 높게 평가했다. 

  선유와 호진이 봉사하는 러시아어 중국어 연합 예배에서 김장 김치를 담그는 날을 마련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해마다 유학생들과 김장 김치를 담갔던 선유는 귀국한 후에는 늘 김치를 사 먹었다. 여름에 함께 거제도에 갔던 비카, 최근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을 온 한국인 3세 줴냐와 안나, 대학원에서 그림을 전공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한국인 3세 타마라, 그리고 최근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한 우즈베키스탄 여성 잔나와 러시아 여성 라나가 왔다. 잔나는 희야와 동갑인 딸 유진이를 데려왔다. 피부에 우유 색깔이 돌고 엄마를 닮아 눈이 왕방울같이 큰 아주 예쁜 아이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 다문화 가정 아이들처럼 외모가 출중하다. 외모는 역시 유전자가 좌우하는 법. 희야는 생부를 닮았을지, 생모를 닮았을지 선유는 궁금하다. 커 가면서 희야 자신에게는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까지 자라나고 증폭될 것인가. 희야도 선유 옆에서 손에 빨간 고춧가루 양념을 묻히고 배추에 한 켜 한 켜 바른다. 지난 추석에는 제법 모양을 갖춘 송편을 차분히 빚는 희야가 여성스럽다고 선유는 생각했다. 요리에 흥미가 없는 선유는 그런 희야에게 벌써 약간의 대리 만족마저 맛본다. 예배를 담당하는 정 목사님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희야는 살짝 선유의 등 뒤로 몸을 숨긴다. 사진에는 희야 얼굴 반쪽만이 빼꼼 나와 있었다. 

  12월이다. 누런 나뭇잎들이 떨어져 바람에 이리저리 뒹군다. 선유는 페테르부르크에서 호진과 연애할 때처럼 가슴에 난로가 하나 들어와 있는 듯 추위를 체감하지 못한다. 어느 날 아침, 임 소장의 호탕한 목소리가 폰 너머에서 울려온다.

“희야 엄마. 희야 입양 허가 났어요. 축하해요.”

“네? 정말이요? 법원에도 가지 않았는데.”

“그러게요. 법원에 가지 않고도 허가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한데. 너무 잘됐어요. 판사가 서류를 잘 봐준 것 같아요.”

“와, 진짜 믿기지 않아요.”

가슴이 쿵쾅거린다. 판사 앞에 가면 어떤 질문을 할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그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제 뭘 해야 해요?”

“허가는 났어도 법적 절차가 다 끝나려면 확정판결을 받아야 해요. 한 달 정도 걸릴 거예요. 그래야 완전히 법적인 가족이 되는 거예요.”

“그럼 그 전에 희야를 집에 데려올 수는 있나요?”

“데려올 수 있어요. 언제 데려오실 생각이세요?”

“유치원 방학하면 바로 데려와야겠어요. 이달 말쯤. 아, 정말 잘됐어요! 감사해요.”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6월에 또 한 부부가 나타나 당황했던 일, 희야가 보육원에 가겠다고 울던 날, 심리검사 결과로 가슴 졸였던 일, 드디어 희야가 법적인 딸로 엄연한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는 사실이 가능성에서 현실로 들어온다. 

  선유는 곧바로 보육원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린다.

“어머, 어떻게 그런 일이? 축하드려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저, 희야를 유치원 방학하면 바로 데려오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네. 빨리 데려가시는 게 좋죠. 그렇게 하세요.”

남은 시간은 불과 한 달이 안 된다. 그동안 해야 할 일이 많다. 우선 희야 방을 꾸며야 한다. 급한 대로 짐을 빼내고 벽 색깔부터 바꿔야지. 가구는 입학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차차 들여놓아도 될 거야. “희야야, 판사님이 희야 입양하는 거 허락해주셨어. 이제 희야는 진짜 우리 가족이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끄덕끄덕. 정말 알아듣는 건지 확인할 길은 없다. 일단은 사실 그대로 알리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지나고 유치원 방학하면 희야 집으로 올 거야. 괜찮아?”

“응.”

“이제 보육원을 아주 떠나는 거야. 희야, 마음 준비됐어?”

“응.”

  선유는 희야 말을 조금의 의심 없이 믿는다. 내가 행복하니 너도 행복하겠지. 진짜 가족이 생기는 건데 행복한 게 당연해. 보육원을 떠나는 게 아쉬울 수도 있지만 엄마 아빠와 떨어지지 않고 살 수 있다는 행복감이 훨씬 클 거라고 선유는 추측한다. 시간이 아주 오래 흐른 뒤 희야의 입에서 “그날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어.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는 그날 끌려온 거야.”라는 말이 나올 줄 꿈에나 상상했겠는가. 만날 때마다 설명해 줬건만 희야의 기억 속에는 저장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선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누군가 그럴 수 있다는 걸 미리 말해주었더라면. 희야의 마음을 섬세히 살피고 준비시키는 일보다 희야의 방을 꾸미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선유의 머리는 모터를 단 듯 바쁘게 돌아간다. 

  “희야야, 네 방은 무슨 색깔로 했으면 좋겠어?”

“노란색.”

“노란색! 알겠어.”

며칠 후 어수선한 창고였던 작은 방은 깔끔하게 치워지고 칙칙했던 벽은 화사한 노란색으로 탈바꿈한다. 창문에는 초록색 풀밭과 꽃들 문양이 그려진 롤스크린이 달린다. ‘아, 화사하다.’ 선유는 자라나면서 예쁘게 꾸며진 방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딸이 하나라 혼자 방을 쓰기는 했다. 그러나 눅눅한 곰팡이가 피고 바닥이 기울어진 방, 심지어 쌀가마니를 들여놓아 쥐가 드나들기도 했다. 밤에 집에 돌아갈 때마다 소공녀 새라 크루처럼 누군가 찾아와 방을 예쁘게 꾸며주는 공상에 잠기곤 했다. 일곱 명이 한방에서 생활하다가 자기만의 방이 생기니 희야가 얼마나 좋을까. 옷장, 책상, 책장은 어떤 걸로 살까. 선유는 마치 희야의 나이로 돌아가 자기 꿈을 충족시키는 기분마저 든다. 희야와 비슷한 나이에 해외로 입양된 아이가 자기 방 침대에서 자는 첫날 밤 너무 좋아서 겅중겅중 뛰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희야의 첫날도 그럴 것이라고 선유는 지레 믿어버린다.

  입양 허가가 난 후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호진이 출근한 후 선유는 음악을 틀어놓고 쌓인 그릇을 설거지하고 있다. 부엌 창문 밖으로 잎을 떨군 나무들이 장승처럼 늘어서 있다. 날씨와 마음의 온도 차가 이리도 다를 수 있다니. 갑자기 폰이 울리며 호진의 이름이 뜬다. 아직 학교에 도착하기 전일 것이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거는 법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선유는 고무장갑을 벗은 후 조심스럽게 폰을 집어 든다.

“지금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응,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아침 식사를 하시다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서 의식을 잃으셨대. 지금 중환자실에 계신대. 빨리 가보아야 해.”

“정말? 그럼 빨리 기차 시간 맞춰봐야지.”

선유는 올 것이 왔다는 직감이 든다. 그래도 하필 이때라니. 호진은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기차 시간을 알려온다. 선유는 곧바로 기차역으로 향한다. 몇 년 전 선유의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려 한 달밖에 살 수 없다는 전화를 받았던 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선유는 시아버지가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 직감한다. 살짝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얼마 전에 희야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기도해주던 모습이 선하다. 조금 더 희야를 보실 수 있다면 좋을 것을. 우연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교묘하지 않은가. 아버지의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선유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호진은 다르다. 기차의 문을 열고 들어선 호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우리 아버지 어떡하냐? 돌아가시면 안 되는데...”

“여보, 마음 단단히 먹어.”

선유는 호진의 큰 손을 잡아준다. 호진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다. 선유가 여러 번 마음을 준비하라고 말했지만, 호진은 흘려들었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언젠가 맞닥뜨리리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호진은 아버지가 깨어나실 거라고 믿는다. 선유는 호진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크지 않은 중환자실 창가 쪽 가운데 병상에 호진의 아버지가 누워 있다. 목에 호흡기를 달고 의식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아버지, 아버지...” 호진은 아버지의 부어오른 손과 발을 어루만지며 울먹인다. 표정에는 어떤 고통의 흔적도 없다. 호진 어머니 말로는 식사 중 갑자기 음식이 기도에 막혀 손써볼 틈도 없이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119가 와서 병원으로 이송하자마자 기도를 뚫는 시술을 했다. 선유의 눈에 석고상처럼 굳은 시아버지의 몸은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지금 자가호흡을 못 하셔서 며칠 더 지켜봐야겠지만 회복되시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경을 낀 젊은 의사가 호진에게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하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자리를 뜬다. 

  호진의 아버지는 삼 주 동안 중환자실에서 홀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투를 벌인다. 호진과 선유는 매주 집과 병원을 오고 가면서 주말에는 희야를 데려와 집에서 함께 지낸다. 안산에는 눈이 유독 많이 내려 하루에도 몇 번씩 빙판길을 오가다 어머니는 두 주가 지난 후 병원 출입을 끊는다. ‘혹여 넘어지기라도 하면 이 상황에서 손 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선유는 사 년 전 호스피스 병동에서 한 달간 아버지 옆을 지켰던 날들을 기억한다. 그때는 아버지의 휠체어를 끌고 병동 안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정신이 들었을 때 간단한 대화라도 나눴다. 병상에서 선유의 아버지는 세례식을 받기도 했다. 의식을 잃은 한 주 동안은 옆에서 찬송가를 불러 주었다. 죽어가는 마지막 시간에 아버지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선유는 위안을 얻었다. 아버지 자신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는가. 선유는 부모의 마지막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자식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임을 그때 깨달았다. 중환자실에서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루에 두 번 십 분 정도 들어가 “괜찮으세요? 저희 왔어요.”라거나 “아버지, 사랑해요. 빨리 깨어나세요.”라는 말을 건네고 손과 발을 쓰다듬는 게 전부다. 혈압과 맥박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확인하며 아직은 괜찮다고 안심한다. 가망 없이 생명이 꺼져가는 이 옆에서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선유는 자신과 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호진과 의식이 없을지언정 홀로 죽음을 기다리는 시아버지가 안쓰럽다. 

  희야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말에 어리둥절하다. 얼마 전에 처음 만난 할아버지인데. 죽음이라는 게 무얼까. 희야에게 죽음은 너무나 낯선 현상이다. 섬뜩하기도 하고 뭔가 중요하지만 자신하고는 상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 뿐이다. 호진의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실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냥 희야를 데려오는 걸 늦출 수는 없다. 예정대로 유치원 방학 후 27일에 집에 데려오기로 한다. 

“희야야, 크리스마스 지나고 두 밤 자고 나서 집에 오는 거야, 알았지?” 

“응.”

보육원에서 희야에게 무슨 말을 해줄지, 아이들과의 이별을 준비시켜줄지 그런 데까지 선유의 관심이 미치지 못한다. 그런 절차가 필요하다는 인식조차 없다. 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크리스마스 날에 아이들에게 희야의 입양 사실을 알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아이들과 놀아줄 계획이다. 

  그래도 희야가 오는 날만은 특별하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 “희야가 집에 오는 날 간단하게라도 환송식을 해주면 어떨까요?” 선유의 말에 국장은 딱 잘라 말한다. “그렇게 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조용히 데려가시는 게 나아요. 다른 아이들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선유는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듣는다. ‘남겨질 아이들도 배려하라는 소리구나. 내 생각이 너무 짧았나 봐.’ 그래도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맡겨져서 칠 년 동안 살았던 고향이자 집이었던 곳을 떠나는 날인데, 아기 때부터 한방에서 울고 분유를 먹고 같이 먹고 자고 놀며 모든 생활을 같이한 친구와 언니들과 영영 헤어지는 날인데 특별한 의식도 없이 희야를 데리고 가라는 말이 야속하게 들린다. ‘그게 정말 나은 걸까.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 선유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어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다. 우연히 한 곳에서 만나 자란 아이들에게 이별은 너무나 가볍고 쉬운 것이구나. 어른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대로 아이들은 다 따를 수밖에 없구나. 어른들의 판단이 다 옳은 걸까. 선유를 내내 괴롭혔던 질문은 끝내 해소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른들 맘대로 가위로 자르듯 아이들의 인연을 싹둑 끊어버리는 건 못 할 짓이다.

“그러면 희야가 입양되고 나서 다시 보육원을 방문해도 될까요?” 

“한 일 년은 오지 마세요. 여기 잊어버리고 가정에 적응하는 게 좋아요. 자꾸 여기를 오가면 희야가 적응하는 데 방해가 될 겁니다. 일 년쯤 지나고 나서 다시 방문하시는 건 괜찮아요.”

“네.”

왜 꼭 일 년씩이나 기다려야 할까. 그동안 희야가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나. 선뜻 동의가 되지 않지만 선유에게는 국장을 설득할 어떤 논리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아이들을 많이 입양시켜 본 시설장의 말이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려니 한다. 그래, 일 년만 잘 참았다가 다시 아이들을 만나러 오자고 다짐한다. 

  죽음과 싸우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희야와 곧 가족이 된다는 설렘 사이에서 정신없이 삼 주가 흐른다. 그 사이 휴스턴에 사는 호진의 여동생 가족이 아버지와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도착한다. 중환자실에 갈 때마다 호진은 아버지의 귀에 대고 “아버지, 곧 유라가 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지운이와 영운이도 올 거예요.”라고 속삭인다. 의식이 없어도 청각은 살아있다고 분명 아버지가 알아듣고 힘을 내실 거라고 믿는다. 아버지는 정말 딸과 손주들이 도착할 걸 알고 기다리는 것만 같다. 혈압이 불안정하게 오르내리는 데도 잘 견뎌주고 있다. 유라는 목에 호흡기를 달고 생명의 표시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버지를 보자 왈칵 눈물을 쏟는다. “아버지, 왜 이러고 있어? 빨리 일어나야지.” 유라도 자기 말이 그저 가망 없는 투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유라가 손에 힘을 꾹꾹 주어 아버지의 팔다리를 마사지하고 얼굴을 쓰다듬는 동안 호진과 선유는 병상 끄트머리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희야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처음 만난 날 영상통화로 고모와 고모부, 지운과 영운을 보고 인사를 나눴다. 그때도 희야가 한 말이라고는 들릴 듯 말 듯 한 “네.”가 전부였다. 희야가 사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빠한테 여동생이 있잖아.”

“응.”

“그 여동생이 고모야. 유라 고모. 유라 고모한테 아들이 둘 있는데 너랑 사촌이 되는 거야. 엄마한테도 남동생이 둘 있어. 지난번에 만난 준이 삼촌하고 훈이 삼촌. 네 외삼촌이 되는 거야. 준이 삼촌한테는 딸이 있어. 희야 외사촌 언니지. 훈이 삼촌한테는 너랑 동갑인 딸하고 너보다 세 살이 적은 아들이 있어. 다 네 외사촌들이야. 어려워?”

“응.”

선유의 말 폭탄에 희야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빠, 엄마에게 동생들이 있고 그 동생들한테 자식들이 있다는 정보 외에 희야의 뇌가 처리하기에는 버겁다. 차차 알아가게 될 테니 서둘 필요가 없다.

  지운과 영운은 미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말이 서툴다. 갑자기 생긴 일곱 살 외사촌 여동생의 존재가 신기하기만 하다. 말을 붙여보고 싶어도 영어를 쓸 수 없어 셋은 그저 말없이 블록쌓기 놀이에 열중이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레 교감이 싹튼다. 더 좋은 기회에 만났으면 좋았겠지만 인간 능력 밖에 있는 힘의 작용을 어쩔 도리가 없다. 이렇게라도 만난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지운과 영운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까. 선유는 사촌이라는 존재가 희야의 삶에 갖는 의미가 크지 않을 거라 짐작한다. 아기 때부터 보아왔으면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인연을 쌓아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 사는 외사촌들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형제, 자매가 없이 홀로 자라야 하는 희야에게 벌써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첫째를 입양한 후에 둘째, 셋째를 계속 입양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럴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더 이상 입양할 생각이 없다. 한국에 입양이 필요한 아이들이 아무리 많아도, 한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은 다 다르다는 현실을 몇 개월의 경험으로 깨우쳤다. ‘희야가 우리의 유일한 딸이야. 정말 잘 키워야 할 텐데.’ 선유는 이제 두려움보다는 설렘으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딜 준비를 한다. 그 세계로 들어가는 커튼이 곧 젖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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