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희야는 아줌마, 아저씨한테 입양됐어. 내일, 모레 집으로 갈 거야.”
은아와 소망이가 떠난 후 오리 방에 희야, 다연이, 영은, 진주, 솔이가 남았다. 이제 희야마저 떠나면 일곱 명이 생활하던 방에 네 아이만 남는다. 크리스마스 날 케잌과 과자, 오리 방과 펭귄 방 아이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사서 보육원을 찾는다. 희야가 떠나기 전 마지막 방문이다. 선유는 아이들과 헤어질 생각에 먹먹하기만 하다. 그 사이 정이 많이 들었다. 일 년 후에 다시 볼 수 있다지만 아이들 얼굴이 자주 떠오를 것이다. 잔잔한 슬픔이 짙은 안개처럼 마음 밑바닥에 깔린다. ‘내가 이런데 희야는 정말 괜찮은 걸까.’ 희야는 전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감정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지,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모르는 것인지 “아이들이 보고 싶다”, “탄이가 무섭다”는 말 외에 희야가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지금 희야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입양이 뭐예요?”
“응. 입양은 가족이 되는 거야. 아저씨, 아줌마가 희야를 낳지는 않았지만 이제 진짜 가족이 된단다.”
“나도 입양 가고 싶어요.”
“나도 희야 집에서 살고 싶어요.”
동그랗게 둘러앉은 펭귄 방 남자아이들이 다투어 말하는 모양이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리고 있는 새끼 새들 같다. 선유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처해져 그저 “으음”하며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 틈에서 희야만 쏙 빼가는 것 같아 미안하고 죄스럽다. 아이들은 희야와 이틀 후에 헤어지는데도 별로 아쉬워하는 빛을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신나는 일이 생긴 듯 들뜬 분위기다. 은아가 미국으로 입양되어 떠날 때, 소망이가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 누구도 미리 정확히 알려 준 어른이 없었다.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은아와 소망이에게 어색한 작별 인사를 했다. 적어도 희야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희야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언제나처럼 말이 없다. 보육원에 희야를 두고 오는 마지막 날이다. “희야야, 내일, 모레 아빠 엄마가 데리러 올게. 그때 집에 가는 거야. 그리고 바로 할아버지 집에 가야 해. 괜찮지?” 희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에게 희야 짐을 미리 챙겨달라고 부탁하고 호진과 선유는 구 개월 동안 수십 차례는 드나들었을 보육원 정문을 나선다.
불면으로 시작됐던 입양 결정이 현실이 되는 날에도 선유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때는 고민이 잠을 앗아갔다면, 이번에는 흥분이 수면 도둑이다. 아침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위장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너무 기뻐도 소화에 지장이 생기는 모양이다.
“여보, 여보. 오늘 너무 바쁘다. 내가 먼저 가서 아이들하고 뭐 좀 배달해 먹이고 있을 테니까 당신이 택시 잡아서 와.”
“알았어.”
“기차 시간이 몇 시지?”
“일곱 시야.”
“시간이 너무 없어. 서둘러야 해.”
아버지의 심장이 오늘 당장 멎는다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희야와 함께 집이 아닌 안산 부모님 댁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입양해서 집이 아니라 시댁으로 가다니.’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가 없다고 받아들인다. 커서 희야가 이날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계획할 수도, 조정할 수도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니 나중에 설명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보육원 정문을 들어서는 선유의 만감이 교차한다. 희야를 만났던 첫날이 선명히 떠오르고, 과연 입양을 할 수 있을지 심란해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날들이 책의 페이지처럼 넘어간다. ‘드디어 이날이 왔어.’ 깊이 심호흡을 한 후, 한동안 와보지 못할 보육원 정경을 빠르게 훑어본다. 푸르렀던 봄날의 초록은 앙상한 겨울의 흙빛으로 변해있었다. ‘꼭 다시 찾아올게. 기다려 줘.’ 오리 방에 들어서자 희야는 이미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희야의 앨범 두 개와 유치원에서 활동했던 파일, 희야의 옷 몇 벌을 챙겨놓았다. 그동안 선유가 산 옷은 집에 보관해두고 있었다. 보육원으로 가져오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입는다고 희야가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물건과 옷을 공유해서 희야의 것이라고 할 만한 물건이 거의 없다. 가져갈 장난감도, 인형도 없다. 6월에 만났던 부부가 희야에게 분홍색 드레스를 사 주었는데 그 옷은 가져가기로 한다. 선유는 몇 년이 지나서야 그날 희야의 물건을 좀 더 세심히 챙겨오지 못한 일을 후회했다. 희야의 추억이 조금이라도 묻어있는 것은 다 가져와야 했다. 다 새로 장만하면 된다는 생각은 무지로 인한 실수였다. 물건이 갖는 중요성을 선유는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호진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두 시간 정도 남았다.
“얘들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피자요.”
“치킨이요.”
“아이스크림이요.”
“그래, 우리 시켜서 먹자.”
아이들은 희야와의 이별을 그리 아쉬워하지 않는다. 늘 이별은 아이들의 삶의 일부분이다. 새삼스러울 게 없다. 아이들은 친구나 동생을 밝게 보내주는 데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해마다 몇 번씩 겪는 이별은 자연스럽기만 하다. 다시 희야를 볼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은 아이들의 의식 표면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들이 배달된 피자, 치킨, 아이스크림을 먹느라 웃고 떠드는 동안 선유는 잠시 착잡함에 잠겨 든다. 커서 입양되는 아이는 이런 헤어짐을 겪어야만 한다. 수백 번도 더 생각했던 일이 막상 닥치니 애잔한 슬픔이 차오른다.
“희야네 집은 커요?”
“아니, 별로 크지 않아.”
“희야 집에 놀러 가고 싶어요. 그래도 돼요?”
“그럼. 대신 좀 기다려야 해. 큰엄마가 일 년 있다가 오라고 하셔서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해. 기다릴 수 있지?”
“네!!”
아이들은 우렁차게 대답한다.
“희야는 방이 있어요?”
“응. 노란색으로 꾸몄지.”
“와, 보고 싶다.”
“나중에 와서 봐.”
“학교는 어디서 다녀요?”
“집에서 길만 건너면 바로 가까이 학교가 있어.”
“걸어서 가요?”
“응.”
“우리는 학교에서 차가 와서 데리고 가요.”
“그렇구나.”
아이들은 희야가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에 관심이 많다. 가정에서 지내는 건 어떤 걸까, 희야에게 가족의 개념이 흐릿한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가정이란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호진이 택시를 타고 도착한다. “택시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서둘러 나가야 해.” 호진은 선유를 채근한다. 차를 가져 와 집으로 간다면 조금은 여유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텐데. 이 중요한 날 마지막 순간이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부산스럽기만 하다.
“다들 잘 지내야 해. 다음에 만나러 올 때까지.”
“네!! 꼭 다시 오셔야 해요.”
“그럼, 물론이지!”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우르르 방을 나선다. 선유는 줄곧 희야의 표정을 살핀다. 무덤덤하니 아무 감정이 읽히지 않는다. 마치 남의 일인 양 조금은 얼떨떨해 보이기는 듯도 하다. 시간이 지나 희야에게 물었을 때, 희야는 그날의 감정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더 커서 성인이 되면 불현듯 무의식에서 치고 올라오는 무언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희야야, 잘 가.”
“희야야, 잘 가.”
택시에 얼마 되지도 않는 희야의 짐을 싣고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작별한다. 아이들이 희야를 빙 둘러싸고 저마다 한마디씩 인사를 하는 동안, 희야는 지금 벌어지는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동안 떠나는 아이들을 많이 봐왔다. 이제 희야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아이들의 작별 인사를 받고 있다. 희야의 입에서는 “잘 있어.”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어색한 순간을 빨리 벗어나고만 싶다.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얼이 반은 빠진 듯한 희야, 곧 다시 볼 것처럼 가볍게 인사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선유의 심장이 감전된 듯 저릿저릿하다. ‘탄이는 안 보이나?’ 선유는 불현듯 떠오르는 탄이 생각에 마당 쪽으로 잠시 시선을 향한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탄이의 흔적이 없다. 탄이는 희야가 떠나고 나서 희야의 부재를 알아차릴까. 이 마당에 왜 탄이가 생각나는 걸까.
“이제 가자.” 택시 뒷문을 열고 희야가 막 올라타려 할 때였다. “희야야!” 누군가 희야를 부르며 건물 안에서 급히 달려 나온다. 정옥 이모다. 보육원에서 가장 오래 일한 정옥 이모는 희야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 희야가 보육원에 온 날부터 직접 돌보지는 않았지만, 희야를 계속 보아왔다. 희야는 자주 정옥 이모 얘기를 했다. 희야가 정옥 이모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짐작이 갔다. 정옥 이모는 희야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엄마를 대신한 사람이 있었다면 정옥 이모가 그런 존재였다. 선유는 어쩌면 정옥 이모에게 희야가 애착을 형성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그랬다면 그 애착이 기반이 되어 희야는 어렵지 않게 선유에게 애착할 수 있을 것이다. 정옥 이모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아 참, 정옥 이모를 잊고 있었어.’ 정신이 없어서 정옥 이모를 찾아 인사하는 걸 깜빡했다. 이모가 이렇게 부랴부랴 달려 나오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정옥 이모가 다가오자 이제껏 아무 변화가 없던 희야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이내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정옥 이모는 희야를 품에 꼭 안는다. 몇 초 동안 희야는 정옥 이모의 품에서 석고상이 된 듯 서 있다. 아이들은 뭔가 숙연해진 듯 조용해진다.
“희야야, 잘 가. 가서 아빠, 엄마하고 행복하게 살아.”
“네...”
희야는 울음을 삼키며 들릴 듯 말 듯 대답한다. 선유는 시큰거리는 눈시울로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순간을 꾹꾹 눌러 담는다. 맹숭맹숭하던 이별이 드라마의 슬픈 한 장면으로 변한다. ‘그래, 입양은 기쁜 일만은 아니야. 이런 가슴 아픈 작별을 해야 하니까. 그리움도 이겨내야 하니까. 그러니까 우리 희야 더 많이 사랑해줘야지.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줘야지.’ 선유의 복잡한 머릿속에 이런 상념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선생님, 너무 감사했어요. 나중에 꼭 놀러 올게요. 연락드릴게요.”
“네, 어머니. 희야 잘 부탁드려요.”
“네.”
호진이 앞 좌석에 타고 선유와 희야가 뒷좌석에 오른 후 택시 기사가 드디어 시동을 건다. 보육원에 처음 와본 택시 기사는 상황을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 택시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희야야, 안녕.”
“희야야, 안녕.”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어떤 아이들은 차를 따라 몇 걸음 내딛기도 한다. 희야는 손을 흔들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호진과 선유가 아이들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든다. 아이들 뒤로 정옥 이모가 한 아이의 손을 붙잡고 서서 끝까지 눈을 떼지 않는다. 정문을 통과한 후 보육원이 점점 등 뒤로 멀어져 간다. 길 좌우 논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살짝 흙을 덮고 있다. 선유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본다. 오십여 명의 아이들이 남은 보육원 건물이 먼발치서 떠나는 희야의 행복을 빌어주는 듯하다. 보육원 마당도, 정문도 침묵 속에서 희야와 작별하고 있다.
“희야야, 괜찮아? 친구들하고 헤어져서 슬프지 않아?”
“응.”
“정옥 이모랑 헤어질 때 슬펐어?”
“응.”
다행히 희야의 표정에 슬픔이 가셔 있다. 아직 어려서일까? 헤어짐에 익숙해서일까? 실감이 나지 않아서일까? 희야가 시무룩해하지 않아 다행이다. 엉뚱하게도 선유는 6학년 때 국민학교 시절 내내 다녔던 시골 학교와 마을을 떠나 서울로 이사 왔을 때를 회상한다. 꿈에도 그리던 서울로 간다는 설렘에 친구들과 정든 마을을 떠나도 전혀 슬프지 않았다. 서울 생활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나머지 아쉬움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이후에도 서울의 학교생활에 몰두하느라 옛 친구들을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비로소 아동기의 추억이 고스란히 새겨진 마을의 길 하나하나, 집과 마당, 텃밭, 장독대까지 자주 기억의 창고에서 튀어나오곤 했다. 어쩌면 희야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희야는 완전히 새롭게 펼쳐질 새 삶에 적응하느라 이곳을 잊고 지낼 것이다.
“우리 희야 왔구나!”
드르륵 아파트 중문이 열리자 호진의 어머니가 희야를 반긴다. 어머니 뒤로 유라와 지운, 영운이 희야를 향해 손을 흔든다. 거실 한가운데 세운 크리스마스트리에는 어머니가 미국에서 사 온 새끼손가락 크기의 나무 인형들이 달려 있다. 희야 키보다 큰 트리다.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느라 경황이 없지만 집에서 할 일이 없는 지운이와 영운이가 희야를 환영하는 의미로 하루 종일 정성껏 꾸몄다. 유라는 케잌을 준비했다.
“오늘은 희야가 우리 가족이 된 첫날이야. 희야의 두 번째 생일이지. 앞으로 해마다 오늘을 축하하자!”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희야의 생일 축하합니다!”
한국말이 서툰 지운과 영운도 손뼉을 치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른다. 수줍게 촛불을 끄는 희야의 표정에 뭔가 뿌듯해하는 듯한 빛이 얼핏 스치고 지나간다.
희야가 오고 이틀 뒤 호진의 어머니와 호진, 유라는 강심제 투여 중단을 결정했다. 그날 오후가 되어 아버지의 혈압이 급속히 떨어지더니 심장이 멈춰 섰다. 희야가 가족이 되어 겪은 첫 번째 사건이었다. 선유는 레빈의 형 니콜라이가 죽고 나서 레빈의 아내 키티가 출산하는 『안나 카레니나』의 결말을 생각했다. 한 사람이 떠나고 한 사람이 가족으로 들어오는 일이 소설처럼 현실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희야와 가족을 이루기 위해 겪게 될 일은 『죄와 벌』의 에필로그에서 예고한 것처럼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