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불면의 이유
불면의 이유
3월 중순 자연은 맹렬한 기세로 봄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초록 이끼가 나뭇가지에 번지기 시작했고, 목련 봉오리는 단단히 몸을 웅크리고 조바심을 냈다. 개나리는 노란 꽃망울을 감추고, 꽃받침에서 실 같은 긴 꽃술을 뻗은 산수유는 왕관 같았다. 선유가 제일 좋아하는 매화는 다섯 장의 흰 꽃잎을 연초록 꽃받침이 고이 받치고 있었다. 갈색 줄무늬를 한 벌 몇 마리가 구애하듯 매화 꽃잎에 입을 들이댔다. 곧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선유는 그 꿈틀거림을 거의 감지하지 못했다. 손끝은 봄바람에 시렸고 마음 한 가운데는 큰 구멍이 뻥 뚫렸다. 도로변의 늘씬한 나무들은 잎을 낼 기미도 안 한 채 무심히 서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은 달랐다. 며칠 전 장례식에서 만났던 이 선교사님을 만나러 아파트 현관을 나섰을 때, 아파트 앞 화단의 비어 있던 공간에 옮겨심어진 키 작은 소나무에 그녀의 시선이 머물렀다. 아파트 둘레길에 우람하게 뻗어있는 소나무들만 보아오던 그녀는 그 앙증맞은 소나무의 등장에 자각하지 못한 채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았다. 수십 개의 가느다란 손가락 같은 연한 이파리 끝에 동글동글한 갈색 몽우리가 매달려 있었고, 그 몽우리들 안에 밤색 점들이 박혀 있었다. 손을 살짝 대어 쓰다듬어보니 잎이 까칠하지 않고 보드랍고 서늘했다. ‘고 녀석, 귀엽기도 해라. 잘 자라거라. 근데 그냥 둬도 잘 자랄까? 누가 돌보지 않아도?’ 그녀는 곧 옮겨심은 아파트 관리인이 알아서 잘 돌봐주리라 믿었다. 그 어린 소나무가 같은 동에서 자라게 되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하필 그날 소나무를 보게 된 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그 무렵 그녀는 보고 듣는 모든 사물과 사건 속에서 늘 숨은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썼으니까.
“여기요, 선유 집사님.”
테이블이 몇 개밖에 없는 작은 카페에 들어서자 이 선교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재킷에 나비 모양으로 접은 흰 천을 왼쪽 가슴에 꽂은 중년의 여성이 선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숱이 적은 곱슬곱슬한 머리 위에도 검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생기있는 작은 눈과 웃을 때마다 접히는 눈가의 주름이 누가 보아도 선량한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인상이었다.
“잘 지냈죠? 얼굴 좋아 보이네요.”
그녀의 입가에도 주름이 잡혔다. 선유는 그녀가 내민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은 뒤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요, 선교사님. 잘 지내지 못해요. 그나저나 장례식 마치고 정신도 없으실 텐데 만나자고 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니, 만나야죠. 근데 왜? 무슨 일 생겼어요?”
이 선교사의 작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선교사님 소식도 듣고 싶은데 오늘은 제가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괜찮으세요?”
상트페테르부르크 유학 시절, 선유와 호진은 이 선교사 부부와 가까이 지냈다. 그 인연은 귀국 후에도 계속되었다.
“괜찮죠, 그럼. 말해봐요.”
이 선교사의 눈이 궁금증으로 동그래졌다. 늘 희생적으로 남을 도왔던 이 선교사 부부를 선유는 진정한 선교사로 존경했다. 그래서 소식을 묻지도 않고 선뜻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저 입양을 고민 중이에요, 선교사님.”
선유는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단어를 마침내 입 밖으로 내보냈다. 이 주제를 가지고 누군가와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슨 말이 나올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선교사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너무 좋지요, 집사님. 잘 생각했다!”
“진짜요? 남편하고는 아직 의논하지도 못했어요.”
선유는 왠지 그 순간 부끄러웠다. 결국 실행에 옮기지도 못할 일을 공연히 말만 하는 건 아닐까.
“집사님, 지금 나이가 몇이지요?”
이 선교사는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 선유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질문했다.
“저 벌써 마흔일곱이에요.”
“호진 집사님은?”
“그 사람은 마흔다섯이요. 저보다 두 살 어리잖아요.”
선유는 새삼스럽다는 듯 엷은 미소를 흘렸다.
“맞아, 그랬지. 아직 한창이다. 근데 입양 생각은 언제부터 했어요?”
선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입양하려는 이유에 대해 누가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도록 수십 번은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과연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귀국한 후 제가 바로 심한 우울증에 걸렸던 거 아세요?”
선유가 이 선교사를 바라보자, 그녀는 눈을 꿈쩍이며 안다는 듯 신호를 보냈다.
“그때는 길에서 배가 불룩한 여자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뚝뚝 흘렀어요. 나는 영영 아이를 못 갖는구나 싶어서요.”
선유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면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근데 어느 순간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마음이 입양 쪽으로 기울기 생각했어요.”
선유는 십 년 전 인생에서 최악의 터널을 들어섰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이제는 가슴이 쓰라리지 않은 것에 놀랐다.
“처음에는 우울증이 끝나기를 기다렸어요. 입양해도 우울증 상태에서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었거든요...그런데 우울증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때는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국 끝이 나긴 하더라고요. 기적처럼 삼 년이 지나 다 나은 거예요.”
‘기적’이라는 말을 할 때 선유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돌아봐도 놀라운 일이었지.
“근데 우울증이 낫고 나서 입양 얘기를 꺼내니까 이제는 남편이 망설이는 거예요. 남편은 원래 아이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요. 둘만 살아도 좋다고 늘 말했거든요.”
“두 분 사이가 워낙 좋으니까.”
이 선교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선유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그렇지도 않아요...사실 남편보다 더 큰 걸림돌은 시부모님이었어요. 저희에게 아이가 생기길 학수고대하고 계시니 입양하고 싶다는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거죠.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후회돼요. 두 분이 포기하실 때까지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한 것이요. 저희 인생인데요...”
선유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제가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
“아이, 그럴 수 있지. 한국 사회에서 입양이 그리 쉬운가요?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입양하려는 마음을 먹었어요?”
이 선교사는 선유의 이야기를 줄줄 끌어냈다. 다른 때 같으면 수돗물에서 끝없이 떨어지는 물처럼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선유가 들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 선교사가 온통 귀로 변한 듯했다.
“한동안 포기하고 지냈거든요. 그런데 지난달부터 갑자기 잠이 오지 않는 거예요. 아무 이유도 없이.”
선유는 식어가는 찻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짙은 안개처럼 가라앉았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남편하고 둘이 늙어간다는 게 끔찍하게 느껴졌어요...전에는 남편하고만 여행을 가도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어디를 가도 허전해요. 아이 데리고 다니는 부부가 부러워서 자꾸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동네에서 조그만 여자아이들이 뛰어가는 모습을 한참 물끄러미 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갑자기 깊어질 줄 몰랐어요.”
선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이 선교사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잠자코 그녀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한 달을 끙끙거리다 마음을 굳혔어요. 이 세상에는 부모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 아이 중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주어야겠다고요. 갑자기 용기가 생겼어요. 시부모님이 저희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도 아니고. 이제 겁 안 나요. 진즉 이랬어야 했어요.”
그녀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결연한 각오를 표현하기라도 하듯이.
“아유, 잘 생각했어요. 당연하지, 집사님 부부가 알아서 결정하는 거지. 저기 최성모 선교사님 알지요?”
이 선교사의 목소리에 갑자기 활기가 돌았다.
“네, 기억해요.”
“그분들도 4년 전에 러시아 여자아이를 입양하셨어요. 몰랐죠?”
“몰랐어요. 아이가 몇 살인데요?”
뜻밖의 소식에 선유의 달팽이관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입양이라는 말만 나와도 온몸의 감각이 자동으로 작동했다.
“이제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이지, 아마. 아기 때 입양했으니까. 얼마나 애가 예쁘고 재미있는지 몰라요. 말을 어찌나 깜찍하게 하는지 엄마, 아빠가 꼼짝을 못 한다니까.”
이 선교사는 신이 나는지 여느 때처럼 아이에 대해 두서없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호기심에 가득 차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들은 선유는 물었다.
“그럼, 아이는 자기가 입양된 줄 알겠네요? 부모가 한국 사람이니까요.”
“아직 모른대요.”
“어려서 그럴까요? 금방 알 텐데. 얘기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선유는 벌써 그 아이 일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외모가 확연히 다른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와 다르게 생겼다는 걸 알 수밖에 없을 텐데, 그 선교사님들은 설마 숨기려고 하시는 걸까.
“알아서 하시겠지요. 애가 똑똑해서 벌써 알지도 몰라요. 근데 집사님은 아이 낳을 시도는 안 해 봤어요?”
다른 사람 같으면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선교사는 거침없이 물었고, 선유도 예상했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안 했어요.”
“왜요?”
“사실 어릴 때부터 아이 낳는 게 무서웠어요. 죽을 것같이 아프다는 말을 들으면 상상력이 발동했죠.”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어가던 선유는 힐끔 이 선교사를 올려다보았다. 유별나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하지만 이 선교사의 진지한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설마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못할 줄은 몰랐어요. 생각해 보면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제 무의식에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거기다 저는 혈연을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청소년 때부터 입양에 그렇게 마음이 끌리더라고요. 입양이라는 말만 들어도 뭉클하고 언젠가 나도 하고 싶다고 꿈을 꿨는데, 정말 그날이 왔네요.”
선유는 조금씩 생각이 정리되어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맞아, 그랬어. 입양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던 거야.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은 고려하지 않았어요?”
이 선교사는 다시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선유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저희는 둘 다 부정적이에요.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굳이 갖고 싶지는 않았어요. 겁도 났고요. 몸이 그렇게 힘들고,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데 내 핏줄을 낳으려고 고생을 감수할 마음이...만약 입양이라는 게 없다면, 어쩌면 시도했을지도 모르지요. 아니...그냥 아이 없이 살았을 것 같아요.”
선유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몸을 너무 아껴서 출산 대신 입양을 선택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그런 마음으로는 입양하지 못하겠더라고요. 편한 길을 택하는 것 같아 양심에 찔렸어요.”
선유의 표정에 결연한 빛이 돌았다. 이제 입양하려는 진짜 이유를 말할 순간이 왔다.
“근데 어딘가 저희 부부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을 것만 같아요. 그 아이의 엄마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막 벅차올라요. 아이 없이 늙는 게 무섭고 엄마가 되고 싶지만...제 욕구만으로는 입양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정말 할 수 있을까,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그것만으로는 각오가 서지 않아요. 선교사님, 제가 입양하려는 게 잘하는 일일까요?”
이 선교사는 이제야 본인의 생각을 얘기할 기회가 왔다는 듯 식은 잔을 비우고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럼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에요? 세상을 다 바꾸지 못해도 한 아이의 세상을 바꾸는 건 엄청난 기적이죠.”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 선교사의 말에 미래의 운명이 걸려있기라도 한 듯 선유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요,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도와주실 테니 염려하지 말고 결정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