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3화. 결심

by 별지킴이

결심


“여보, 오늘 이 선교사님 만나 뵙고 왔어. 선교사님하고 오래 이야기했는데...우리 아이 입양하자. 나 그거 고민하느라고 그동안 잠을 못 잔 거야.”

러시아에서 사 온 파란색 꽃무늬가 새겨진 그젤 찻잔에 얼그레이 차를 우려내면서 선유가 말했다.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호진이 고개를 들었다. 책을 내려놓고 찻잔을 받아 들면서 그는 엄지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래?”

저항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뻔한데도,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모님께는 뭐라고 하지?”

그 말이 나올 줄 예상했던 선유는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 하러 말해? 언제까지 부모님 눈치만 봐? 당신이 이러니까 시간만 끌었지. 진즉 입양했으면 아이가 벌써 학교에 들어갔겠다. 난 이제 부모님 신경 안 쓸래. 우리 삶이잖아. 아이 없이 산 시간이 14년이야. 이대로 사는 건 비극이야.”

그녀는 간신히 분통을 억눌렀다. 생각할수록 모든 게 남편의 우유부단 탓이었다. 더 말해야 소용없다는 걸 안 듯, 꼬리를 내린 강아지처럼 호진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알았어요. 당신이 알아봐...”

호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말은 안 해도 그는 늘 두려웠던 것 같았다.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없어서. ‘내가 늘 말만 했기 때문에 이대로 둘만의 삶이 계속될 거라 믿었겠지. 이젠 더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겠지.’ 선유는 생각했다.

“그래, 해보지, 뭐. 당신이 확고하게 말하니까 부모님께도 덜 미안해지는 것 같아요.”

호진의 말에 속이 시원해진 선유가 문득 눈을 돌려 바라본 창밖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나무 잎사귀 위로 쏟아졌다.

“우리 입양 알아보기로 했어.”

다음 날 늦은 아침 후 커피를 마시면서 선유는 은수에게 전화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

“정말? 시부모님은 어떻게 하고?”

전화기 너머 들리는 은수의 목소리는 활기차면서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너도 시부모님 얘기부터 하는 거야? 이제 시부모님은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말해봐야 반대만 하실걸. 나중에 확정되면 그때 알리려고 해.”

은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선유는 자신의 갑작스러운 결정이 은수에게 얼마나 뜻밖일지 짐작됐다. 잠시 후 은수가 질문했다.

“어떻게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어? 시부모님 때문에 못 한다고 했잖아?”

“내 나이가 몇인데...이제 됐어. 두 분도 더 이상 아이 얘기를 안 하시는 걸 보니 포기하셨나 봐. 기다린 세월이 후회돼.”

선유는 지난 한 달 잠 못 이룬 날들의 고민을 은수에게 털어놓았다. ‘러시아에서 향수병에 걸려 힘들어하던 나를 구해준 건 은수였어. 그 후 우리는 숨기는 게 없는 절친이 되었지. 그런데도 나는 최근 심각하게 고민하는 걸 은수한테 말하지 않았네.’ 선유는 은수에게 미안해졌다.

“드디어 용기를 냈네. 그럼, 이젠?”

“홀트 사무소에 연락해 보려고.”

“어떤 아기 할지는 정했어?”

“한 일곱 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

“일곱 살?”

은수의 목소리가 눌린 버튼에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커졌다.

“그렇게 큰 아이면 정이 쉽게 들 수 있을까?”

은수의 말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마흔이 넘어 결혼한 은수는 몇 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자 임신을 포기하고 부부끼리만 살기로 했다. 은수는 아이 키우는 게 무섭다고 말하곤 했다. 아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자기는 제 명에 못 살 거라고. 은수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선유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사십 대 초반이면 아기를 입양하겠지. 근데 생각해 봐. 내가 예순이 될 때 아이는 중학생이 될 거야. 그럼, 대학은? 결혼은? 남편도 퇴직할 텐데. 우린 늙어서 아이에게 짐만 될 거야. 언니나 오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야. 내가 예순이 될 때쯤 아이가 성인이면 딱 좋아. 그러려면 일곱 살이 적당해.”

선유는 냉철하고 논리적인 자기 말에 은수가 어떻게 반박할지 궁금했다. 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애 씨 알지? 몇 년 전에 여자 아기 입양했던.”

선유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이야기를 계속했다.

“알지. 현애 씨하고도 얘기해 봤어?”

“잘 생각했대. 아주 좋아하더라고. 우리 집에 아이를 데려와서 자고 간 적도 있었거든. 입양 권유하려고.”

“기억나.”

“근데 현애 씨가 말리더라고. 내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안 된대. 그렇게 큰아이는 키우기 힘들다고.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면서. 입양하자마자 치료를 많이 받아야 한대.”

“치료까지 받아야 한대?”

“자세한 설명은 안 했어. 치료야 받으면 되지. 그 나이까지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상처받은 게 있을 테니까. 그것 때문에 말리다니 이해가 되지 않아.”

“그 정도로 힘들다는 뜻 아닐까. 잘 생각해 봐.”

은수는 선유의 생각을 돌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선유는 은수의 말에 주저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녀를 이해시키려고 힘주어 말했다.

“아니야. 차라리 입양을 안 하면 안 하지 아기는 못 해. 그렇게 큰 아이들도 누군가는 입양해야 하잖아. 어렵다고 하니까 꼭 해내고 싶기도 해.”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해야지. 어쨌든 기대된다, 선유야. 나한테 입양한 조카가 생기는 거잖아.”

은수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선유는 자신을 염려해주는 은수가 고마웠다. ‘은수는 언제나 그랬듯 나를 응원해 줄 거야.’


은수와 통화를 마친 뒤 선유는 스마트폰 검색창에 ‘입양’이라는 낱말을 입력했다. 『입양아 부모 되기』라는 책이 검색됐다. 그 책 말고는 ‘입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 없었다. 선유는 바로 주문했고 며칠 후 책이 도착했다. 그녀는 습관대로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중간쯤 읽어가다가 그녀는 ‘연장아’라는 낯선 단어에 눈이 머물렀다. 이런 말도 있나? 읽어보니 ‘연장아’란 신생아가 아닌데 입양되는 아이를 의미하는 용어였다. 영어로는 older children. 이 쉬운 단어를 왜 이렇게 이상하게 번역했을까? 그러나 번역의 문제를 따지기에는 책 내용이 심각했다. ‘연장아’ 입양에 따르는 여러 문제점을 기술하는 페이지를 넘기면서 선유의 마음이 점점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져 갔다. 도둑질에 방화도 가능하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설마 나이가 있다고 아이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 일부 극단적인 경우일 거야. 책에서도 모든 ‘연장아’가 다 그렇다고 쓰여 있지는 않았다. ‘우리가 입양할 아이는 그렇지 않을 거야.’ 선유는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단단히 각오해야겠구나. 이래서 현애 씨가 말렸던 거구나.’

선유의 상상력은 보육원에서 일곱 해를 지낸 여자아이 모습을 조금씩 선명하게 그려나갔다. 엄마의 손길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 가정이라는 걸 체험해본 적이 없는 아이,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누가 자기를 낳았는지 모르는 아이, 낳은 엄마와 떨어져서 그 존재조차 확신할 수 없는 아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자아이가 선유 앞에 서 있었다. 그 아이를 안아 주고 “이제 내가 네 엄마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의 상처가 아무리 커도 아주 작은 미미한 변화라도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상처를 줘서 오히려 아이 인생을 망가뜨리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만으로도 선유는 무섭고 끔찍했다. 하지만 그녀는 입양을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안은 채 입양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누구와 이야기해야 하지?

야나가 떠올랐다. 러시아 트베리라는 도시에서 온 야나는 사 년 전 결혼해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 ‘야나 남편이 어릴 때 시장에 혼자 있는 채로 발견되어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했지?’ 선유는 야나 남편이 고아원 생활을 이야기할 때마다 냉소적으로 웃곤 했던 기억이 났다. 가장 힘들었던 건 구타와 배고픔이라고 했다. 공부를 잘해서 늘 일등을 했지만, 결국 대학에 가지 못했던 게 한이 되었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커서 알코올 중독자가 된 그는 죽을 만큼 노력한 끝에 중독을 이겨냈다. ‘야나 남편이라면 결정적인 얘기를 해줄 것 같아.’ 막연한 확신 비슷한 것이 솟아났다.


“저는 입양 좋다고 생각해요.”

마른 체구와 햇볕에 짙게 탄 얼굴을 가진 야나의 남편은 선유의 고민을 듣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

“왜요?”

선유가 물었다.

“제가 커서 제일 힘들었던 게 뭐였는지 아세요? 사람들이 저보고 근본 없는 놈이라고 했을 때예요.”

지난 설움이 기억나는 듯,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럴 때마다 부모가 있었으면 이런 말 안 들어도 될 텐데 너무 화가 나고 서러웠죠. 왜 중독자들이 그러잖아요.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았겠다고. 선유 씨도 어릴 때 그런 생각 들었다고 했죠? 그런데 저는 어떤지 아세요? 난 그런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야나의 남편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선량한 눈에서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선유는 그에 대한 연민에 마음 한구석이 쿡 찔리는 것 같았다.

“그럼 입양되길 바라신 적도 있어요?”

“있었죠. 그땐 70년대였는데 가끔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이 있었거든요. 그 애들이 부러웠죠. 좋겠다. 부모가 생겨서. 공부도 실컷 하고.”

양반다리를 하고 손을 턱에 괸 그는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햇볕에 그을린 그의 팔에는 굵은 핏줄이 서 있었다. 선유는 그런 마음을 가진 아이를 입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그런 아이가 있을 것만 같고, 빨리 그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감사해요. 제 마음을 정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선유는 자기 얘기를 들려준 야나의 남편에게 고마우면서 미안했다. 그도 입양되었더라면 중독자가 되지 않고 공부도 많이 해서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가진 재능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부모님 찾아보고 싶지 않으세요?”

선유는 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이참에 해보기로 했다.

“찾고 싶죠. 돌아가셨을지도 모르지만. 언제 유전자 등록하려고요.”

“꼭 그러세요. 혹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부모님 아니어도 형제나 누이들이 있을 수도 있고.”

선유는 야나 남편의 입가에 떠오른 엷은 미소에서 아련한 슬픔을 보았다.

선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진에게 선언하듯이 말했다.

“여보, 난 마음 굳혔어. 나 입양할 거야.”

선유의 말에 호진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무 빨리 나아가는 게 남편에게 부담스러운 걸까?’

“당신한테는 시간을 줄게. 당신이 확신할 때까지 기다릴 거야. 대신 아이는 알아봐도 되지?”

선유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면 됐어. 남편을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는 법이야. 언제나 그랬듯이 남편은 결국 나를 따라오게 될 거야.’ 그 점만큼은 의심의 한 조각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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