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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Apr 10. 2023

나는 코아였다. 1장 괴물 아버지

2화 동네 집으로 피신하다


동네 집으로 피신하다     


  “얘들아, 빨리 나가!”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역시 기억에서 사라졌다. 내가 기억하는 건 다급하게 우리를 집 밖으로 내몰던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아버지의 포악함이 극에 달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 것만 같았는지 어머니는 우리보고 도망치라고 했다.

“애숙이네로 가 있어! 엄마도 갈게.”

   애숙이는 내 친구였다. 동생들을 데리고 부리나케 집을 나와 아버지가 쫓아올까 봐 뛰었다. 어머니가 온다는 말이 없었으면 우리는 뒤에 남은 어머니가 걱정돼서 애숙이네로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비교적 큰 길가 마을 끝 쪽에 있었다. 애숙이네 집은 동네 안으로 더 들어가야 했지만 워낙 작은 동네라 그리 멀지는 않았다.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어 바로 애숙이네 집 문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라. 아이고, 불쌍한 것들!” 애숙이 어머니는 곧바로 짐작하셨는지 우리를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밥은 먹었니?”

“네에...”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동네는 늘 그 시간이면 그렇듯 조용했다. 사람들은 다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언제 어머니가 오나 고개를 대문 쪽으로 계속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며시 대문을 열고 어머니가 들어왔다. 그제야 휴우 하고 마음이 놓였다.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가 집에서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우리 집 근처에 얼씬도 안 했지만, 도움이 필요해서 도망을 올 때는 기꺼이 피신처를 제공해줬다.

“자, 어서 자거라.”

애숙이 어머니가 깔아주시는 요에 몸을 눕히고 혹시나 아버지가 우리를 찾으러 올까 봐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몰래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할지 불안하신 눈치였다.

  우리가 집을 도망 나올 때면 아버지는 체념하고 혼자 잠을 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그리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잠시 후 길에서 아버지의 고함이 들리기 시작했다. 애숙이네 집은 대문이 골목길에 나 있고 창문이 큰길 쪽으로 나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큰길에 나와 고함을 치며 우리를 찾고 있었다.

“어디 있어? 나와. 안 나와? 안 나오면 다 죽여 버려!”

아버지는 우리들의 이름을 불러 가며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온 동네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잠을 깰 것 같았다. 우리는 아버지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에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버지가 이 집으로 불쑥 들어오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다른 데로 도망가야 하나?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긴장한 얼굴로 내게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버지는 한 시간 정도 그렇게 큰길을 오가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때 나에게 아버지는 사람이 아닌 괴물이었다. 언젠가 저 괴물이 어머니와 우리를 잡아먹을지도 몰라, 지금이 그때인지도 몰라 하는 두려움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애숙이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를 보호해 줄까? 숨겨주기는 했지만,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줄 수 있을까? 지금이라면 경찰이 와서 아버지를 잡아갔겠지만, 그때 시골 마을에는 경찰도 없었고 누구도 경찰에 신고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동네 한복판에서 소란을 피워도 누구 한 사람 나와서 조용히 하라거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 정도로 아버지는 동네에서 혀를 내두르는 술꾼이었고 선생이라는 직업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혼자 고래고래 온갖 위협적인 말로 겁을 주던 아버지는 포기했는지 목소리가 잦아들며 집 쪽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고 애숙이 어머니는 울먹이며 어머니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어서 자라, 내일 학교 가야지.”

  밤 한 시가 넘었을 시간이었다. 무서움에 졸린 줄도 모르던 우리는 갑자기 풀린 긴장에 졸음이 쏟아졌다. 방금 있었던 상황은 꿈에서나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일이 현실일 리 없어... 나는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잠을 청했다. 아침에 집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숙취가 남았지만,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의 고질적인 두려움은 그 무렵,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인생은 내게 두려움으로 가득 찬 위험한 뱃길같이 느껴진다. 언제 폭풍우가 몰아칠지 모르고, 어디서 암초가 나타날지 모른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나는 큰 재난이 시작되는 것처럼 두려움에 휩싸인다. 두려움에 빠질 때 내 모습은 영락없는 초등학생과 다름없다.

      

한밤중에 산을 넘다

     

  또 한 번은 아예 다른 동네로 도망을 간 적이 있었다. 그날은 어머니가 먼저 도망을 치셨다. 아주 상황이 다급했었던 모양이다. 나가면서 어머니는 나에게 동생들을 데리고 황 선생님 댁으로 오라고 했다. 황 선생님은 아버지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인간관계가 그리 폭넓지 않았던 아버지도 황 선생님은 깍듯이 형님으로 모시며 그 선생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황 선생님의 부인과 언니, 동생 사이로 지냈다. 일찍 오빠를 잃고 서울에 남동생만 있던 어머니는 그분을 친언니처럼 의지했다.

  황 선생님이 사시던 동네는 우리 동네에서 산을 넘어가야 갈 수 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사셨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나는 황 선생님이 우리 동네에 사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분이라면 아버지가 집에서 난동을 부릴 때 와 주실 것 같았다. 아버지를 달래고 말려 주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분이 와 주시기에는 두 동네 사이가 너무 멀었다.

  어머니가 나가고 나는 아버지가 잠시 딴 데로 주의를 돌리는 틈을 타서 동생들을 데리고 나왔다. 황 선생님 댁으로 가는 길은 매일 학교에 가는 길이라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했다. 우선 동네를 벗어나면 나지막한 산으로 가는 길고 좁은 길이 나왔다. 그 길 양쪽에는 밭이 있었고 계절마다 옥수수, 무, 열무, 배추가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밭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옥수수를 꺾어서 껍질을 벗겨 단물을 빨아먹고 무를 뽑아서 손톱으로 두꺼운 껍질을 돌려 깎은 후 베어 물면 그렇게 시원하고 맛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가난했던 그 시절 아이들의 군것질을 대신했다.

  낮에만 다니던 그 길을 한밤중에 동생들과 걸었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겁에 질린 동생들을 다독이며 조금 있으면 엄마한테 간다고 말해준 것 같다. 산은 깊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소나무들이 많아서 검은 자태를 드러내며 서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저쪽으로 우리 동네가 보였다. 여전히 고요했고 불빛이 다 꺼져 있었다. 우리 집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금쯤이면 우리가 사라진 것을 알 텐데 설마 여기까지 쫓아오진 못하겠지. 또 동네를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고함을 치고 있을까. 아니면 체념하고 곯아떨어져 있을까.

  여느 때처럼 달이 떠 있었고 하늘은 검푸르렀다. 달빛 밖에 우리를 비춰주는 것 없는 컴컴한 밤이었는데도 나는 산에서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빨리 어머니한테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오늘 밤은 집에 있지 않아도 되고 황 선생님 집에 가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는 기대에 발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어린 동생들은 말없이 나를 따라왔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나와 해리되는 느낌이 든다. 그 일이 정말 있었단 말인가. 어린아이 셋이 한밤중에 산을 넘어 이웃 동네로 갔다는 사실이 기가 막힌다.

  황 선생님 댁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울고 계셨다. 어머니는 황 선생님 부인 앞에서만 마음껏 울 수 있었다. 그분은 어머니의 상담자이자 위로자였고 어머니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 나는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그 시절을 견디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언니, 언니...”

  “그래, 그래...”

함께 울면서 두 사람은 밤을 지새웠다.

  황 선생님 댁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와 동갑인 여자아이도 있었다. 언니, 오빠도 있어서 우리는 그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무서움도 잊었다. 엄마와 이 집에 살면 좋겠다, 우리 집에 영원히 돌아가지 않으면 좋겠다...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을수록 이런 불가능한 소망이 몽글거렸다.

  혹시 아버지가 황 선생님 댁에 오더라도 거기서만큼은 아버지가 소란을 피울 수 없었다. 황 선생님 앞에서만은 아버지가 그리 고분고분해질 수가 없었다. 황 선생님은 아버지를 야단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다.

  “네, 형님. 그래야죠. 처자식 생각해야죠.”

황 선생님 앞에서 그런 말을 할 때면 잠시 기대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아버지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 아버지에게 영향을 미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나는 차차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무서우면 무조건 도망가야 한다는 본능이 움직인다. 내 남편은 매우 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결혼 생활 20여 년 동안 큰 소리 낸 적이 두세 번 손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나는 그때마다 쏜살같이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조금이라도 무서운 분위기를 감지하면 내 몸은 자동으로 반응해 도망갈 태세를 갖춘다. 그래서 나는 늘 “나를 무섭게 하면 우리는 끝”이라는 말로 남편을 위협하곤 했다. 언제쯤 나는 도망치지 않고 두려움에 용감히 맞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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