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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May 21. 2023

나는 코아였다. 알콜 중독자 자녀의 회고록

19화. 2장 소녀가장. 친구들과의 추억

친구들과의 추억

  

  내 고등학교 시절을 밝혀주었던 친구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여전히 나는 그 누구에게도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아버지에 대해서 몰랐다. 아버지는 나의 수치였고 열등감이었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것 외에는 친구들과 속내를 나누고 소녀다운 고민도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2~3학년 때 나눴던 친구들과의 우정은 어두운 밤하늘에 점점이 박혀 반짝이는 별들처럼 내 삶을 빛내 주었다.

  당시 나는 모범생임에도 꽤 장난기 있는 학생이었다. 2학년 때 부반장을 했었는데 매일 저녁 자습 시간에 반장이 없으면 내가 아이들을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 곧 다가올 수학여행으로 기분이 들떠 있을 때였다. 나는 교실에서 자유롭게 흩어져 자습하고 있는 반 아이들에게 “야, 너희들 카드놀이 할 줄 알아?”하고 물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집에 카드 한 벌이 있었고 나는 카드놀이를 할 줄 알았다. 아이들은 모른다며 흥미를 보였다. “내가 가르쳐 줄까? 우리 수학여행 갈 때 기차 안에서 놀자.” 아이들은 좋다며 카드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카드를 가지고 가서 자습 시간에 아이들에게 놀이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날도 공부하다 말고 한창 카드놀이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교실 안으로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국어를 가르쳤던 담임 선생님은 결혼하신 분인데도 학교에서 인기가 매우 많았다. 나도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담임 선생님을 좋아하고 있었다. “지금 자습 시간에 뭐 하는 거야?” 선생님은 얼굴을 굳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큰일 났다.’ 들키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떡하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카드 누가 가져왔어?” 나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저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다들 일어나서 교무실로 와!” 선생님의 손에는 가늘고 긴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수업 시간에 쓰는 것이었는데 때에 따라 용도가 바뀌곤 했다.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 들어서자 선생님은 “한 명씩 이리로 와 손 내밀어.” 하더니 한 사람씩 손바닥을 내리쳤다. 찰싹하는 소리만 들어도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졌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는 부반장이 돼서 아이들 감독할 아이가 카드를 가져와서 놀아? 너는 더 맞아야 해. 손 내밀어.” 손바닥을 내밀자마자 순식간에 막대기가 세 번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막대기가 부러지고 말았다. 손바닥이 불에 덴 듯 얼얼해졌다. 아프기도 했지만 나는 부끄러움에 더 마음이 쓰라렸다. 좋아하는 담임 선생님에게 실망을 안겨줬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가면서 나는 그 카드를 기어코 가져가고야 말았다. 기차에서 앞좌석에 앉은 아이들과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옆으로 지나갔다. ‘설마 또 혼나지는 않겠지?’ 선생님의 반응이 궁금하던 찰나 선생님은 “재밌냐? 나도 할까?” 하면서 의자에 걸터앉아 한참을 같이 놀았다. 역시 멋진 선생님! 그 장면을 찍은 사진이 앨범 속에 끼워져 있다. 선생님은 선글라스를 벗어 머리 위에 걸치고는 카드를 펴서 들고 있다. 옆에 앉은 나는 웃음을 참으며 즐거워한다. 그 선생님은 아내가 중한 병이 들어 학년을 끝맺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다. 재수 학원에서 꽤 유명세를 날리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지 오래다. 

  한번은 들키지 않았던 사건도 있었다. 역시 자습 시간에 나는 아이들에게 “얘, 너희들 순대 먹어 봤니?” 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없다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아이들에게 없는 경험이 어찌 그리 많았던 것일까? “우리 먹으러 갈까?” 아이들은 신나서 좋다고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학교를 벗어나 순대를 먹으러 간 것일까. 그 사실이 들통났다면 카드놀이를 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게 혼이 났을 텐데 말이다. 나에게 어디서 그런 대범함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가방을 싸고 우리 동네 시장으로 가서 순대를 사 먹었다. 아이들은 처음 먹는 순대가 맛있다며 즐거워했다. 몰래 먹는 맛이라 더 맛있었을 게다. 나는 아이들에게 최초의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던지 나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 몇 명에게 내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더니 아이들이 동의했다. 그 아이디어란 학교 도서실에 몰래 남아 밤새도록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야간 자습이 끝나면 수위 아저씨가 교실들을 한 바퀴 돌았다. 그때 도서실 구석에 몸을 숨기고 아저씨가 떠나면 칸막이로 된 자리에 불을 켜고 공부하자는 계획이었다. 큰 모험이라도 하듯 가슴이 떨리고 설렜다. 들키기라도 하면 이건 정말 큰 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는데도 나는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밤 열 시가 되자 자습하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집으로 가는 척하다가 다시 도서실로 돌아와 구석에 앉아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수위 아저씨가 도서실 문 앞에 나타났다. ‘쉿,’ 우리는 숨을 죽였다. 지금만 잘 넘기면 성공이었다. 아저씨는 도서실에 들어오지 않고 대충 불 꺼진 도서실을 쓱 훑어보더니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면 그렇지, 이 시간에 누가 도서실에 남아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아저씨가 든 후레쉬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각자 칸막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성공했다는 짜릿함과 밤새도록 공부하겠다는 의욕으로 의기양양해 있었다. 공부를 시작했다. 도서실 창문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도서실 전체 불을 켜지 않아서 도서실 안도 칸막이 불이 켜진 곳 외에는 컴컴했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있어서 무섭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공부가 잘되어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나무를 갉아 먹는 것 같은 소리였는데 한밤중의 고요함 속에서 그 소리는 천둥같이 크게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작게 속삭였다. “이거 쥐 아니야?” “쥐다, 쥐!” 맙소사. 도서실 안에 쥐가 들어와 어디선가 책상다리를 갉아 먹고 있었다. 쥐가 어디 있는지는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렸는데, 낮이었다면 들리지도 않았을 그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었다. 순간 공포가 엄습했다. 어찌나 무서운지 더 이상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귀를 막아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야, 다 틀렸다.” 우리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망연자실해졌다. 이제는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공부는 고작 한두 시간 했을까. 나머지 시간은 멈추어 선 것 같은 시계만을 바라보며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바깥 하늘이 살짝 푸르러지자 우리는 서둘러 가방을 싸 도서실을 빠져나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새벽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씻고 곧바로 다시 등교했다. 그날 우리는 모두 하루 종일 수업 시간 내내 잠만 잤다. 

  고3 여름 방학이었다. 방학인데도 나는 매일 학교 도서실에 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했다. 도서실은 거의 꽉 찼다. 당시 학교 의자는 네모반듯한 나무 의자였다. 어느 날 나는 항문에서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처음에는 콕콕 쑤시는 듯하더니 이내 걷기가 힘들 정도로 통증이 커져서 벽을 붙잡고 걸어야 했다. ‘내가 무슨 큰 병에 걸렸나 보다.’ 겁이 덜컥 났다. 며칠 동안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끙끙대기만 했다. 친구들이 내 모습을 보더니 “선화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하고 물었다. 나는 솔직히 이야기했다. “나 무슨 큰 병 걸렸나 봐. 어떡해?” 아이들은 내 말을 듣더니 깔깔대고 웃었다. 이 와중에 웃음이라니! “선화야, 그거 치질이야, 치질.” “치질이 뭐야?”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웃으며 설명을 해줬다. “네가 딱딱한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걸린 거야.” 그리고 아이들은 나와 함께 약국에 가서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사주었다. 약을 먹고 발랐더니 정말 증세가 점점 나아졌다. 친구들이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찔했다. 

  당시 여고생들은 하이틴로맨스라는 시리즈 소설을 수업 시간에 책상 밑에 펴고 읽었다. 작은 판형에 흰색 표지의 연애소설이었다. 열풍같이 퍼진 하이틴로맨스를 유치하다고 나는 무시했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 빌리진이 수학여행을 간 경주 불국사 근처 숙소에서 울려 퍼졌다. 마이클 잭슨만큼은 나도 인정했다. 카세트로 그의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내가 더 좋아했던 가수는 사이먼과 가펑클이었다. 당시 인기 있었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는 왠지 가사가 감상적인 것 같았다. 대신 ‘침묵의 소리’와 ‘엘 콘 도 파사’를 너무 좋아해 가사를 외우고 다녔다. 떨리는 목소리와 감미로운 음색으로 그들은 나를 먼 이국의 낭만적인 이상향으로 데리고 가 주었다. 

  무슨 자존심인지 남들이 좋아하면 나는 오히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상한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모두가 조용필을 ‘오빠’라 부르며 열광할 때 나는 “조용필 별로야.”라며 박인희의 ‘끝이 없는 길’을 흥얼거리며 소녀다운 감수성을 달랬다. 브룩 쉴즈와 피비 케츠, 소피 마르소가 여고생들의 우상이었을 때 나는 다이안 래인의 사진을 책받침으로 만들어 다녔고 심지어 일기장에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고교 시절 본 최고의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는데, 크라클 케이블에게 반해 사흘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아마데우스’를 보고 모차르트를 죽인 살리에리의 질투심이 이해되어 모차르트가 불쌍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운 여고 시절. 누구에게나 추억의 한 귀퉁이를 장식할 가슴 시린 여고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완벽했을 시절이었다.   

   

내겐 집이 없다     


  버스 종착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어두웠다. 흐릿한 가로등이 겨우 길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밝혀져 있었다. 맞은 편에서 누가 오더라도 가까이 오기 전에는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당시에는 밤길이 무섭지 않았다. 밤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루의 수업과 자습이 모두 끝나고 무거워진 머리를 식히며 걸어가면서 나는 자주 공상에 빠졌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읽었던 『소공녀』의 새라 크루에게 일어났던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방문을 열면 새라의 방에 이웃 인도인이 일으킨 기적이 일어나 있다면. 창문에는 부드러운 색감의 커튼이 하늘거리고 있고 방바닥에는 보드라운 매트가 깔려 있다면. 벽은 칙칙한 색이 아니라 화사한 벽지로 다시 발라져 있고 지퍼를 열어 사용하는 비키니 옷장 대신에 아담한 앤틱 옷장이 놓여 있다면. 벽에는 꽃이나 들판, 산이나 강을 그린 유화가 걸려있고 방 한구석에는 커다랗고 푹신한 느낌의 곰 인형이 앉아서 나를 맞이해 준다면. 경사진 바닥이 요술처럼 평평해져 있다면, 촉감이 너무 좋아 얼굴이 닿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지는 베개가 머리맡에 놓여 있다면. 달랑 혼자 매달려 있는 전구 대신에 오렌지색 갓을 씌운 등이 내 방을 밝혀주고 있다면. 지금 생각하면 소박한 공상이었지만 당시에는 현실로 이루어지기에는 너무 까마득한 꿈이었다. 

  나에게는 집이 없었다. 집이란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곳만이 아니라, 차가운 세상으로부터 바람의 침입을 막아주는 온기가 있는 곳이어야 했다. 나를 반겨주고 그날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어야 했다. 안정감과 안전, 보호받는 느낌을 주는 곳이어야 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위로받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나에게 그런 집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단지 물리적인 공간에 불과한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나는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때마다 늘 집을 떠나고 싶어진다. 여전히 집을 찾지 못했다는 느낌, 어쩌면 이 세상에는 내 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진정 속해야 할 그 집은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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