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마치며
글을 마치며. 우리 안의 코아들에게
안녕. 나는 몇 년 있으면 육십이 되는 중년의 여성이야.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지금까지 내 글을 읽어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나는 사 개월 정도 이 글을 썼는데, 쓰면서 힘든 순간들이 많았거든. 쓰다가 눈물이 터져서 화장실에 가서 펑펑 울다가 다시 돌아와서 마저 쓴 적도 많아. 너에게 읽는 경험이 어땠는지 정말 궁금해. 너의 안에 있는 무언가가 자극되어서 힘들지는 않았을지, 기억 속 상자에 잠가두었던 과거의 사건들이 떠올라 괴롭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돼. 이 글을 끝까지 쓴 나에게 칭찬을 보내듯이, 끝까지 읽어준 너를 칭찬하고 싶어. 여기까지 잘 와 주었어.
우리는 코아라는 공통점이 있지. 그런데 말이야, 코아는 이 세상에 아주 많아.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 많단다. 코아는 술을 마시는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 집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밖에서 그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거든. 나도 그랬어. 그래서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고 무섭다고 생각했어. 커보니 그게 아니었어. 나와 똑같은 경험, 똑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너무 많은 거야. 얼마나 많으면 코아라는 용어까지 생겼을까.
아마 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왜 내게는 이런 아버지, 어머니가 주어진 걸까. 나도 무수히 그런 생각을 했어. 억울하고 분했지. 어떤 아이들은 자기 때문에 아버지나 어머니가 술을 마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더구나. 그래서 죄책감을 가진다는 거야. 나는 그러지는 않았어. 혹시 너는 그랬니? 그랬다면 분명히 말해주는데, 절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혹시 너의 부모가 네 탓을 했더라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걸 꼭 말해주고 싶어. 내 잘못이 아니라는 데서 우리의 치유는 시작되어야 한다고 하더라고.
왜 우리에게 그런 부모님이 주어졌는지 어떻게 알겠니? 나도 모른단다. 그 질문으로 너무 너를 괴롭히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도 더 이상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려고 해. 어차피 답이 없는 질문이니까. 찾을 수 없는 답을 찾으려고 너무 애쓰지 말기를. 혹시 너도 나처럼 보상심리를 가지고 있니? 아버지나 어머니의 중독 때문에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하려고 뭔가 큰일을 이루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아니라면 참 다행이야. 만약 그랬다면 너는 나와 함께 치유의 여정을 더 가야 할 것 같아.
난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 중독이라는 모진 환경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참 잘해온 거라고. 내가 중독자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 난 성공한 거라고 말이야. 네가 중독자가 되지 않았기를 빌어. 만약 너도 중독자가 되었다면 난 너무 슬플 것 같아. 그렇다면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히 도움을 찾기를. 내 아버지처럼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너에게 자녀가 있다면 네가 겪은 상처를 물려주어서는 안 되잖아. 네가 중독자가 아니라면 너를 크게 칭찬해주고 싶어. 잘 견뎠어. 브라보! 우리 참 대단한 것 같아.
아직 너의 부모님이 원망스럽니? 사실은 너의 부모님도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었어. 예전에는 중독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어. 그분들이 중독자가 된 건 어쩌면 그분들 탓이 아닐지도 몰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독으로 자신의 삶을 무책임하게 산 것까지 봐주라는 건 아니야. 이제 너도 컸을 테니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좋겠어.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야. 부모님을 원망하고 미워하느라 너의 삶을 갉아먹지 말았으면 해. 상처는 지난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사실 이런 충고를 하려고 편지를 시작한 건 아닌데. 난 너를 위로하고 싶었어. 너를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그 무섭고 캄캄했던 날들이 어떤 거라는 걸 알고 있다고. 지금의 내가 너를 알았다면 네 곁에 있어 주고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었을 거라고 말하고 싶어.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보호해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었지. 우리의 엄마를 도와줄 힘 센 어른이 필요했었어. 우리에게 세상은 참 차가운 곳이었어. 우리가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었어. 이제는 내가 너에게 손을 내밀어 줄게. 어른이 된 내가 의지할 데 없는 어린 나에게 말이야. 넌 더 이상 혼자가 아니란다. 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너를 지켜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
알고 있니? 이 책은 울기 위해서 썼다는 걸? 그러니 네가 혹시 울었다면 정말 잘한 거야. 그게 내가 바란 거거든. 우리 안에는 눈물의 바다가 있어. 울어도 울어도 마르지 않는 바다란다. 언제까지 울어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우는 걸 겁내거나 부끄러워하지 마. 우는 건 좋은 거란다. 나처럼 너도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 지금이라도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눈물을 밖으로 빼내자꾸나.
우리나라 코아들의 흐느낌은 들리질 않아. 그들은 말을 안 해. 국내에 코아가 직접 쓴 책이 한 권도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먼저 썼지. 너희들이 쓴 책도 조만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네가 알아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버지를 탓하려고 이 책을 쓴 건 아니야. 시간 여행을 하면서 나의 삶을 되짚고 내 성찰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리고 다시 한번 애도하고 싶었어. 나의 슬픈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말이야. 치유를 위한 긴 노력의 한 자락이라고나 할까. 이 글을 써서 내가 얼마나 치유되었는지는 모르겠어. 시간이 말해주겠지.
코아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굉장히 어려워. 커야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 앞으로는 코아도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된다면 너무 오래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살지 않아도 될 거야. 코아들이 자기 얘기를 할 수 있게 돕고 싶어. 아마 나는 앞으로 그런 일을 하게 될 것 같아. 너도 돕고 싶다면 내게 연락해.
우와. 드디어 내 얘기를 끝냈어. 마치 영혼의 항암치료를 한 느낌이야. 효과는 조금씩 나타나겠지? 효과가 있다면 나는 코아들에게 글을 쓰라고 성화를 부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