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쏭쏭 Apr 02. 2023

소개팅 남은 왜 SNS를 안 하냐고 물었다.

내가 SNS를 안 하는 이유



  오랜만에 하는 소개팅은 불편하고 지루했다. 은행원으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공감하고 리액션을 해주면 뭐 하나? 대화가 이어지질 않는데…. 침묵에 못 견딘 나는 TMI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이 중에 그래도 하나는 남자도 즐기는 게 있을 테니까!


  평일은 새벽마다 수영을 나갔고, 퇴근 후 격일로 필라테스를 다녔다. 운동을 쉬는 저녁엔 직장 동료들을 만나 가벼운 술자리를 즐기거나 우쿨렐레 연주를 배웠다. 주말엔 오전엔 승마를 배웠고, 끝나면 수영장에 가서 혼자 수영을 했다. 오후 시간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집에서 영화를 보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웹툰이나 웹 소설을 보았다. 특별한 날엔 직장 통로들과 백패킹이나 캠핑을 갔고, 때로는 혼자 등산을 가거나 국내 여행을 다녔다.


  이 중에, 하나는 너도 즐기는 게 있겠지!


  그러나 남자는 단 하나도 공감하지 못했다. 그는 퇴근 후 매일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주말엔 동네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고 했다. 그 흔한 조기 축구도 안 했다! 그는 나를 대단하다며 추켜세우고는 말했다.


  "그런데 왜 SNS는 안 하세요? 하면 인기 엄청 좋을 것 같은데."

  "..... 네?"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나?

  생각지도 못한 해석에 나는 당황했다. 정말 하나도 안 맞는구나! 하지만 남자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카톡에 프사도 없다!


  SNS 에는 필라테스 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승마는 드문 취미니 말이랑 인증사진 찍으면 멋있을 것 같았고, 독서는 그럴싸한 문장과 함께 표지 찍어서 올린다면 지적여 보일 것이다. 수영 인증샷도 뭔가 세련된 느낌을 주지. 중간중간 텐풍(백패킹 가서 야경에 텐트 조명을 밝혀 찍는 사진)이나 정상석 인증샷, 캠핑 먹방 사진이 올라오면? 다소 단조롭고 수동적이고 얌전해 보이는 이미지에서 와일드 한 매력을 더해주겠지. 거기다 여자 혼자 떠난 국내외 여행까지?


  음. SNS가 심심할 틈이 없겠는데?


  SNS를 권유받는 건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해외여행을 다녔을 때도 외국인들이 왜 페이스북(그때는 페이스북이 대세였다)을 안 하냐고 묻고 했었다.


  당시 나는 은행에 다니고(햐-). 소설을 한 권 낸 작가며(캬-). 필라테스와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오-). 국내외 여행이 취미였다(크윽-).


  내가 봐도 환상적이군.


  내가 처음부터 SNS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꾸준히 쓰는 카카오톡(업무연락하지 마라)을 제외하고 ,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 트위터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했었다. 그중에서 가장 열심히 한 것은 단연 트위터였다. 나는 훌륭한 트잉여(트위터 잉여라는 뜻) 중의 한 명이었다. 핸드폰 중독이 심각한 나는 카카오톡만큼, 그 이상으로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반응했다.


  그런 내가 트위터를 비롯한 SNS를 가장 열심히 한 시기는, 바로 취업준비생일 때. 그리고 취업을 한 직후였다.


  그때는 진짜 너무너무 힘든 시기였다.

  취업준비는 끝없는 기다림과 탈락의 연속이었다. 도대체 내가 뭐가 그렇게 부족해서? 날 떨어뜨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자기소개서도 이력서도 더 고칠 점이 없었다. 전문가를 찾아가도 운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다들 척척 취업하는데, 나는 뭐 하고 있는 건가. 나는 이 정도인가 하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다.


  취업하고 나서도 쉽지 않았다. 직장은 나랑 맞지 않았다. 매일 울면서 출근을 했다. 겨우 마음을 붙일 때쯤 시작된 직장 내 괴롭힘은 나를 한계로 몰아붙였다. 날 괴롭힌 그녀가 제일 고통스러워할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그녀의 딸이 죽도록 아프길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내 인성이 이 정도구나 싶어서, 정말로 죽고 싶었다.


  그때 SNS를 정말 열심히 했다.


  도피하듯 그렇게 했다. 내가 내 일상을 올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내 인생에는 올릴 게 없었으니까! 대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정말 열심히 살폈다. 언제나 환하고 즐거운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살까 봐 괴로워했다.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정말 열심히도 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내가 불행하면 타인의 삶이 궁금해진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을까? 내가 불행한 시간에 그들은 행복할까? 나처럼 불행할까? SNS는 그런 관음증 환자들에게 최적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최악의 선택이다.


  SNS에는 다들 행복의 최고 순간만을 전시한다.


  여행을 가고(좋겠다. 여행이라니. 난 언제 여행을 가봤지? 하지만 여행 갈 시간도 돈도 없는데? 나랑 똑같이 월급을 받는 저 사람은 어떻게 여행을 가지? 나는 뭐가 문젤까? 아, 내가 가난해서 그런가? 우리 부모님은 왜 부자가 아니지? 나도 여유롭게 컸다면 이따위 성격은 안 되었을 텐데!),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맛집을 가고(아, 친구도 있고 좋겠다. 가족 사이에 관계도 좋네. 난 왜 같이 갈 친구도 없을까? 인간관계가 왜 이렇게 엉망일까? 내 문제겠지? 내가 관리를 못 해서…. 우리 가족들은 왜 저런 외식도 싫어할까? 저렇게 함께 가면 행복한데! 우리 가족은 왜 이리 관계도 안 좋냐고!).


  문화생활을 즐기고(와, 저런 것도 봐?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저런 걸 어디서 찾는 거지? 저 멀리까지 갔다고? 그런 시간과 여유가 된단 말이야?)


  심지어 혼자 카페를 가도(좋겠다. 카페 갈 시간도 있고. 나는 바쁜데…. 혼자서 저런 곳을 가다니 용기가 있는걸? 난 혼자선 죽어도 못 가겠던데…. 친구 없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쟤는 안 그래 보이는데…. 아, 왜 나만 이렇게 혼자이면 쓸쓸해 보이는 거지? 내 외모 문제인가? 스타일이 문제인가?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건 부럽다. 난 언제 그런 시간을 가져보지?)


  멋진 타인의 삶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려들어 온다. 몸을 지탱할 작은 나무판자 하나 없는 나는 맨몸으로 그 파도에 휩쓸린다. 그리고 끝없는 우울의 바다에 빠지고, 결국 자존감이 사라진 모래사장에 처박힌다.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남들은 행복하군. 세상에 나만 불행한 거구나.


  결국, 그런 생각으로 귀결된다. 불행에 취해서, 주정뱅이가 술에 취한 걸 모르고 또 술을 마시듯, 불행을 좇는다. 그렇다고 불행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지도 않다. 잠깐은 위로가 되지만 결국은 이 세상에 다 불행하다는 뜻. 결국, 살아도 불행하다는 건데….


  그럼 이 세상을 사는 의미가 무언인가?


  같은 원리로, 우리 주변의 타인의 삶이 캐내려고 하고, 말을 옮기는, 그 값싼 관심에 몰두한 사람들 역시,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너무 불행해서, 자신의 삶이 너무나 심심해서 타인의 삶이 궁금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사는 동안 남들은 어떻게 살까? 남들도 나처럼 심심하다면, 괴롭다면? 나는 평범한 거겠지? 만약 행복하다면 나는 불행한 거겠지? 그들은 그래서 타인의 삶을 깎아내리거나 추앙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모른다.


  이 고리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결국 SNS를 끊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SNS에 중독되면, 말 그대로 중독이기 때문에 끊기는 쉽지 않다. 담배를, 술을, 커피를 끊어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끊은 사람은 보이지 않듯이.


  하지만 끊어야 했다.


  알코올 중독이었고, 나아가 헤비 스모커였던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끊은 것은 본인이 많이 아프고 나서였다. 끊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에 아버지는 끊었다. 아프면, 끊을 수 있다. SNS가 내 정신을 아프게 한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나도 끊을 수 있었다. 아파지고 나서야 끊을 수 있다니, 나도 아버지를 닮았나 보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SNS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카카오톡을 하고, 트위터를 한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 같이 영상과 사진으로 된 매체는 완전히 끊었다. 그리고 남의 삶을 보는 대신, 내 이야기를 한다. 남을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대신, 내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증거를 내가 만든다. 그 증거가 지금 여기에 있다.


  글 쓰는 내가 있다.



참고. 소개팅남과는 잘 안되었다.

세상에 그렇게 나랑 안 맞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아버지는 내게 작약을 던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