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쏭쏭 Mar 31. 2023

노후에 필요한 것들

이것은 밸런스 게임.

  마트에서 근무했을 때다. 하얀 단발머리에 허리가 꼿꼿한 할머니가 들어왔다. 까만 브로콜리 같은 머리에 고된 노동으로 허리가 굽은, 마트료시카처럼 똑같이 생긴 꼬부랑 할머니들만 있는 이 동네에서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외향이었다. 할머니는 천천히 그러나 소리 없이 움직였다. 우아함과 여유가 있는 그 몸짓은 고통과 치열한 사투가 느껴지는 이곳 할머니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할머니는 마트에서 몇 가지 생필품을 샀고, 은행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마감 시간이라 창구로 들어갔다. 그 덕분에 나는 할머니를 좀 더 살펴볼 수 있었다.   

       

  할머니의 등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 충분했다. 특히 창구에 조르르, 똑같은 쌍둥이 모양을 하고 서 있던, 마트료시카 할머니들의 관심은 단숨에, 새로 등장한 낯선 우아한 할머니를 향했다. 할머니 중 한 명이 용감하게 우아해서 낯선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매쌀이나 먹었소?”     


  맷돌에 간 것처럼 투박하고 직설적인 질문을 이해하는 데, 우아한 할머니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뒤늦게 우아한 할머니가 몇 살입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녀의 나이는 창구에 서 있던 할머니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았다.     


  우아한 할머니의 대답은 우리도 놀랍게 했지만, 또래인 마트료시카 할머니들을 더 놀라게 했다. 아니, 질투 나게 했다. 원래 친구들끼리 더 강하게 질투하는 법이다.  그건 나이가 작던, 많든 상관이 없는 그런 마음.   

  

  할머니들은 저마다 그녀가 고생을 안 해서 그런 거라며, 고생하면 절대 저럴 수가 없다며, 자기들끼리, 그러나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숙덕거렸다. 평소 같으면 자신의 고생담이 끝없이 이어졌을 텐데, 그날은 별다른 이야기가 없이 이야기가 끝났다. 백발의 할머니는 귀까지 밝아서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 같다고.     


  그 순진한 수긍, 낯선 우아함은 억척스러운 할머니들의 강력한 쌈닭본능도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느릿하게, 온갖 소리를 내며, 마치 자갈밭을 쓸고 가는 파도와 같은 소리를 내며 떠났다. 우아한 할머니는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이 지역에서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법한 큰 병원의 딸이었다. 그 덕분에 일제 강점기(..)에 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부유했고, 결혼하지도, 아이를 놓지도 않았고, 덕분에(?) 고생은 정말로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고향은 이곳이 아니었지만, 요양을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현재도 빨래나 살림은 도우미 분들이 와서 하고, 자기는 간단하게 간식거리 정도를 사서 먹는 것이 자기가 하는 집안일 전부라고 하셨다. 취미는 책 읽기인데, 주로 불교 서적을 읽는다고도 했다.     

     

  우리는 모두 말문을 잃었다. 할머니 손님은 온화하게 웃으며 떠났고,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생하지 않은 사람의 삶은 저토록 온화할 수 있구나. 허리가 굽지도, 무릎이 아프지도 않은, 노동으로 고생하지 않은 탓에 육체적인 고통이, 경제적인 고통도 없는, 노후의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아마 모두가 원하는 노후는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할머니의 모든 모습이 마음에 들었지만, 나는 특히 우아한 할머니가 또래 친구들(?) 앞에서 자기의 건강함과 부유함을 자랑하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할머니의 처신은 마치 또래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잘 아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아마 평생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 속에는 평화로운 시기는 거의 없었고,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치열했으니까. 유명 병원장의 딸로 태어난 탓에 많은 것을 누렸겠지만 동시에 많은 시기와 질투를 이미 경험했겠지. 자신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도 이미 알고 있겠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겠지.    


할머니는 떠났지만 나는 계속 그녀들을 생각했다. 저렇게 온화한 사람이 되려면, 역시 고생을 하지 말아야 하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내가 살아온 날들이 과연 '젊어서의 고생'으로 취급될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라도 고생하지 않는다면 나도 저렇게 곱게 늙을 수 있을까?


나는 다짐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저렇게 꼿꼿한 허리로, 우아하게 밖으로 나오겠다고.

     

하지만 무작정 그렇게만 다짐하기엔 마트료시카 할머니들을 바라보던 우아한 할머니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과 똑 닮은 친구들과 함께 온 할머니들. 꼬부랑 허리를 보행기에 기대고 긴 거리를 무작정 걸어왔을 할머니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그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 서로 모르고 살던 시간보다 함께 한 시간이 훨씬 더 길고 길 관계. 서로가 한평생 얼마나 고된 노동과 힘겨운 가사를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 친구들을 곁에 둔…….

    

  아마 우아한 할머니는 평생 가져보지 못했을, 오랜 세월 함께 한, 같은 시간을 공유한 친구.     


  그런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인생은 우아한 할머니의 눈에 얼마나 찬란해 보였을까? 심지어 그녀는 지금 낯선 타지에, 가족도 친구도 하나 없이 혼자 내려와 있는 상황이었다. 더 외롭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처음 본 우리에게 자신의 삶도 이야기했던 거겠지.         

 

   아. 과연 어떤 노후가 더 행복할까?     


  고생은 하지 않고, 경제력은 있고,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모든 것을 가진다면 아무런 걱정도 없겠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이건 밸런스 게임이다. 하나는 무조건 골라야 하는 그런 게임.     


 묻는다.


고통스럽되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는 삶과 외롭지만 부유한 삶.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을까?


그 질문에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있는 건, 노후 대비는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개팅 남은 왜 SNS를 안 하냐고 물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