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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Apr 06. 2023

손절당했던 친구와 다시 만났다.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인연 끊겼던 친구들과 다시 만났다. 그들과 인연을 끊게 된 것은 전부 다 내 탓이다. 그 당시 나는 너무 힘들었고, 결국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어!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매일 징징거렸고, 반복된 내 징징거림에 질린 친구들이 도저히 더는 못 들어주겠다! 하면서 손절당했다.     


다시 말하자면 다 내 탓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그러다 이제 인생에 맷집도 좀 생긴 것 같고, 예전만큼 땅만 파지 않고, 열심히 판 덕분에 생긴 맷집 덕분에(?) 건강해진 것 같기도 하면서, 그들과 다시 연락하게 되었다. 내가 힘들어서 그만두었던 그 일, 그들이 하는 그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연락할 명분이 생긴 것도 유효했다. 나의 징징거림을 몇 년이나 받아주었던 만큼 그들은 본디 선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긴 시간 떨어져 있었지만, 다시 어울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물론, 서로 연락하지 않았던 그 시간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른이었고, 그 정도 불편함은 당연하다는 걸 아는 나이었다. 우리는 꽤 잘, 끊어졌던 인연의 실을 다시 이어갔다.     


그런 것처럼 보였다.     


평상시처럼 대화하던 어느 날, 그들 중 한 명이 내게 말했다.     


“너 너무 자존감이 떨어진 거 아냐?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네 말투에서 상처 입은 사람의 느낌이 많이 난다. 네 말처럼 네가 전보다 나아진 것도 같은데…. 내가 느끼기엔 ‘엄청 맞아서 강제로 맷집이 좋아진’ 사람, ‘상처를 많이 받아서 상처에 익숙해진’ 사람의 느낌이 난다. 이 세상이 너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아서 정말 속상하다.”     


좋은 말이었다.

나를 공감하고 위로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났다.     


그렇게’ 되었다는 건 어떤 건데?     


이게 나다.

상처받은 것도 나고, 그 상처를 안고 맷집을 키워온 것도 나다. 그런데 넌 꼭, 상처받지 않은 나만 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네? 분노는 천천히 그러나 강렬하게 타올랐다. 언제나 착하고 선한 너는 좋겠다. 안락한 세상 속에서 상처받을 틈이 없이 있을 수 있는 네 환경이 정말 부럽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이게 내 최선인데 어쩌니?     


그의 말이 사실이어서 화가 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화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다시 해어져야 하니? 한번 끊어진 실을 다시 연결해 보려고 한 게 잘못이었나?     


구겨진 종이는 다시 펴도 자국이 남는다. 상처는 나아도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항상 후배들에게 말하는, 상처받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상처를 받았는데 어쩌나? 나는 이미 잔뜩 구겨진 종이인걸? 문득 화장실 뒷간 종이가 생각난다. 어릴 적 집에 있던 뒷간. 종이를 구겨 엉덩이를 닦았던 그때. 아, 물론 그래서 내가 뒷간으로 가야 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신권을 찾는 손님들을 생각한다. 신권은 대부분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 명절 때나 결혼식이 열릴 때는 일부러 신권을 구하러 오시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신권은 항상 부족하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차선책으로 제공하기 위해 평소에 깨끗한 돈을 따로 모아둔다. 그리고 그 돈은 ‘꼭 신권이 아니라도 깨끗한 돈이면 괜찮은’ 손님들에게 간다. 그건 일반 사용권은 받을 수 없는 특별 대우.     


현금에 날 비유하면 나는 손상권(손상이 많이 되어 시중에서 사용되지 않고 한국은행으로 회수되어야 하는 돈)으로 뺄까 말까 고민하는 사용권쯤 될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찢어지고 불에 타고 오물이 묻어서 이제 회수되어야 할 극 손상권은 아니다. (그 정도면 이미 저세상=한국은행 들어가야지). 나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닳고 해지고 구겨진 돈이다. 누군가는 싫어하는, 신권으로 바꾸고 싶은 그런 돈….     


하지만 돈은 그래도 돈이잖아?     


가끔 손님들은 구겨진 돈을 가져와 바꿔 달라고 한다. 기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그럼 나는 속으로 이 돈을 꾸긴 건 바로 당신이야! 를 외치지만, 겉으로는 얌전하게 네=하고 대답한다. 나는 그 구겨진 돈, 젖은 돈을 따로 모아둔다.      


그리고 마감 시간 나는 작업에 들어간다.     


젖은 돈은 선풍기 바람을 쐬기도 하고(바람에 날려갈까 봐 교묘하게 여러 작업을 한다), 정말 심할 땐 다림질도 한다(정말로!). 돈은 내 손길에 순순히 몸을 맡겨야 한다. 바람이 춥다고, 다림질이 뜨겁다고, 다시 펴지기 싫다고(!) 어깃장을 부려서는 안 된다. 고통스러워도 견뎌야 한다. 그래야 사용권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빳빳한 지폐 사이에 끼워둔다. 그리고 그대로 금고에 넣어버린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시간은 그 구김을 없애줄 테니까.

지난 시간은 내게 그런 시간이었다. 구김을 펴는 시간이 내게도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다 보니 선풍기 바람도 못 쐬고, 다림질도 할 수가 없다. 좋은 친구를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이야기를 듣는(읽는) 것은 구겨진 돈이 빳빳한 돈 사이에 끼이는 과정과 같다. 지금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여기에 속하겠지.   

   

화가 식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친구들이 섭섭하다. 하지만 싫지 않다. 아니, 좋다. 다시 연락을 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다. 신권을 좋아하는 그들이 사용권을 곁에 두는 것도 그들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내가 지금의 그들에게 완전히 만족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지금의 내게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뿐이니까. 신권을 갖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을 수 있는 애정, 그 정도 사랑이면 나는 충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신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놀랍지만 정말이다) 그들은 인건비 등의 대량을 현금을 취급하는 분들이다. 그들은 새 돈은 잘 붙어서, 실수로 돈을 잘못 세는 경우가 생긴다고 좋아하지 않는다(정말은 싫어한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나를 완전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가능하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죽는 날까지 바로 내 곁에 있을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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