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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Apr 17. 2023

10원 예금하면 이자가 얼마나 나올까?

매일 10원을 들고 오던 그 손님


  신규직원 때 일이다.

  창구에는 대략 6명의 직원이 있었고, 우리는 3명씩 교대로 밥을 먹었다. 창구에서 일하면 자기 자리를 벗어나는 일은 화장실 가는 것만 빼면 거의 없었다. 한 사무실에 근무한다고 해도 자리가 떨어져 있다면 말할 기회가 없었다. 점심시간은 그런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내 밥 조에는 나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는, 예금계에서 유일한 남자 선배가 끼어 있었다.     


  그날의 화두는 남자 선배님 앞에 매일 찾아오는 손님 이야기였다.    

 

  그 손님은 여자로, 며칠째 선배에게 와서 10원씩 입금하고 있다고 했다.     

  어렵거나, 힘든 일은 아니었다. 욕을 하거나 난동을 부리는 손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상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그때도 10원의 가치는 낮았다. 잔돈으로 10원짜리를 내어주면 안 받는다는 사람도 많았고, 심지어 버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 동전들을 전부 기부함에 넣었다) 그런데 실물 10원짜리를 저축하러 들고 온다고??     


  “그냥 그분이 대리님께 반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매일 올 방법을 생각하다가, 10원을 예금하기로 한 거죠. 1만 원씩 예금해 봤자 기억에도 안 남을 거고, 돈도 부담스럽고! 만만한 10원짜리를 활용한 거죠!”    

 

  내 농담에 선배는 정색하고 싫어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일화에 모두는 신이 났다. 누군가 말했다.   

  

  “이러다가 그분, 10원 정기예탁하러 오는 거 아니겠지?”     


  그 말은 씨가 되었다.     





**     



  며칠 뒤, 번호표를 당겼다. 내 앞에 여자 손님이 섰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가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나한테?

  뭘 하겠다고?     

  신규직원인 내게 상담은 정말 무서운 말이었다. 나는 긴장하며 물었다     


  "뭐가 궁금하신가요?"     


  그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10원 정기 예탁하면, 이자가 얼마나 나와요?"

  "..... 네?"     


  정기 예탁. 그러니까 특정 금액을 일정 기간 금융기관에 맡김으로써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상품. 이 상품의 경우, 상품마다 다르지만, 최소 예치금액이 정해져 있다. 당시 신규직원이었던 나는 그걸 몰랐다. 항상 손님들은 그 기준 이상을 예치하니, 그런 걸 생각해 볼 틈도 없었다.    

 나는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어설프게 계산기를 들었다.     


  지금 이자가 2.8 퍼센트니까….     10원 X 0.028 = ?     

  몇 번이나 계산기를 두드리고, 세팅을 바꾼 후에야 답이 나왔다. 10.28원?      

  그런데 답이 나와도 문제였다. 원 단위 아래의 돈은 뭐라고 읽어야 하는 거지? 나는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10원을 정기예탁하면…. 십 점……. 고객님 죄송한데 원 단위 아래 소수점 단위라서 제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아니! 이자가 10원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손님이 버럭 화를 냈다. 나는 너무 당황했다. 하지만 나도 억울했다. 그때는 나도 신규직원이라 입이 살아있었다.


  "그렇지만 원금이 10원인데 이자가 10원이면…. 이자가 100%인데요?"    

 

  그러자 여자의 얼굴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사실, 제가 재산이 조금 있는데, 저는 이걸 최대한 불리고 싶거든요….”

  "아…. 네. 그러시군요."

  "그래서 이것저것 방법을 생각하는 중인데……. 아, 현재 제 자산은 2800만 원 정도 돼요."

  "네에……."

  "그래서 10원이라도 이자를 받으려고 애썼던 건데! 10원도 안 준다니! 너무 한 거 아니에요?! "

  

  그제야 그녀의 생각의 흐름이 이해가 되었다.      

  10원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위 중 가장 작은 단위의 돈이다. 그러니까 10원으로 정기예탁하면 이자로 최소한 10원은 주겠다고 생각한 거였다. 그러니 현재 재산이 2800만 원이니까……. 10원씩 정기 예탁을 해서 이자를 10원씩 받을 수 있다면?     

  전 재산 2800만 원을 280만 개로 나눠서 예탁하면?     


  내년엔 돈이 두 배가 되네?!     


  이 기막힌 창조경제를 보았나! 대단하다? 지금 같으면 징글징글하다고 구시렁거리거나, 혹은 죄송한데 그런 거래는 해줄 수 없다고 했겠지만, 그때는 어리바리한 신규직원이었다. 말문을 잃고 서 있는 나를 구해준 것은 옆자리에 계시던 선배님(지금은 상무님이 되셨다.)이었다.     


  "고객님. 그 직원이 신규직원이어서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녀는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로 내 앞의 그 미스터리 한 손님을 자신의 앞으로 데려갔다. 나는 선배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음 손님을 호출했다.

  그 선배가 뭐라고 상담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여자 손님은 어떤 큰 소리도 내지 않고, 어떤 민원도 제기하지 않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 후로 그녀는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지 않는다.     


  10원짜리를 던져버리는 손님을 볼 때면, 나는 종종 그 손님을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돈으로 부자가 되려고 했는데…….     


  10원을 모아 부자가 되길 원했던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가 어떻게 돈을 모우고 어떻게 돈을 벌고 있을지, 그녀의 재산 상황이 너무 궁금하다.


  원하는 대로 재산 증식에 성공한 그녀가 이번엔 10원이 아닌 10억을 들고, 한번 와서 알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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