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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Apr 20. 2023

직원 둘이 대체를 찍었다.

대체란 무엇인가

  다른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 A와 B가,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다. 둘이 수줍은 얼굴로 꺼내 드는 종잇조각 하나에 사무실이 떠들썩해졌다.


  "잘됐네. 그런데 대체 찍는 게 얼마 만이야? 예전에는 대체 많이 찍었는데."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가 반박했다.          


  "아닌데? 가 지점에 C와 나 지점의 D도 작년에 결혼했잖아."     

  "아…. 그렇네? 대체가 은근히 있네?"     

  "어이구. 왜 대체를 찍냐고. 밖에서 구해야지! 대체 찍어봤자 좋을 게 없어요! 보험만 두 배로 해야 해!"     

  "제가 보기엔 대체도 나쁘지 않습니다. 업무적인 면에서 서로를 이해해 주기 쉽고, 또 어차피 보험은 자기를 위한 거기도 하니까! 자기 돈으로 자기 보험 넣는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도 전 대체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게 다 무슨 소릴까?          




** 


         


  우리 회사 직원 A와 B는 우리 회사에 몇 안 되는 미혼들이다.     


  A가 입사 한 후로(A가 최근에 입사했다.) 둘은 내내 묘한 기류를 풍겼다. 사람들이 사귀냐고 물으면 절대 아니라고 말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면 특유의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말투. 표정. 심지어 몸을 터치하는 것까지, 보통과 달랐다. 두 사람이 극구 아니라고 하니 다들 아니라고 믿어주는 척하긴 했지만, 사내연애는 복사기도 안다고 하듯이, 둘의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결국 결혼을 알린 것이다. 그들이 가져온 예쁜 청첩장을 보며 직원들 사이에 수다 꽃이 피었다. 둘 다 평판이 좋은 직원들이었다. 선남선녀, 좋은 말들이 오월을 맞은 꽃처럼 피어났다. 그 끝에 누군가 말했다.          

"잘됐네. 그런데 대체 찍는 게 얼마 만이야?"          



**          



  이제 대충 감이 오는가?          



**          



  입사하고 1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같은 사무실에서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연애 사실을 고백했다. 상대방은 같은 사무실 내의 다른 직원분이셨다. 비밀로 사귀고 있었지만, 결혼을 결정하여 알리게 되었다고 했다. 둘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선배가 말했다.          


"너희 둘이? 어머, 왜 하필 대체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물었다.          


" '대체를 찍었다'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               




  대체란 무엇인가. 

         

  대체란, 정의가 진짜 어렵지만 내 기준으로 정의하면, 금융기관 내부에서 처리하는 화폐의 한 종류다. 일반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금속성 동전이나 종이로 만든 화폐가 아닌, 전산에서 움직이는 돈이 바로 대체다. '현금을 대체하는 돈'이라고 대체라고 하는 것도 같다.          


  당신이 통장에서 현금을 출금해서 실제 돈을 들고 가서 상대방에게 준 것이 아니라 계좌 이체로 돈을 보냈다면, 당신은 지금 '대체'를 이용한 것이다. 인터넷뱅킹으로 송금 후, 귀찮더라도 통장을 확인해 본다면, 대체라고 적힌 글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대체다.          


  그런데 왜 하필 농협에서는, 금융권에서는, 사내연애 (혹은 사내 결혼)를 '대체를 찍는다'라고 표현할까?



          

**          



  이 관용어의 어원이 궁금해서 주변에 물어보았다. 하지만 명확히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답을 찾을 수박에 없다!

          

  고심 끝에 나는 그것이 '사내연애는 기록이 남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금거래는 추적이 불가능하다. 불법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돈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현금을 선호한다. 다운계약서를 쓸 때도, 전화금융사기도 결국은 '현금'을 이용한다. 이것은 전산을 통한 거래, 즉 대체 거래와는 정반대의 특징이다. 대체를 통한 거래는 기록이 남는다.   

  

  사내연애는 기록이 남는다. 누구나 다 알고, 그 내용을 다 추적할 수 있다.  

   

  사내연애의 기록이 남는다는 의미에서, 사내연애를 '대체를 찍는다'라고 표현한 것 아닐까?


               



  선배는 다른 의견을 냈다.  

        

  대체는 틀리면 안 된다. 대체가 틀리면(전산을 이용한 금융거래에서 금액 오류가 생길 경우) 마감을 할 수가 없다. 대체는 무조건 맞아야 한다. 현금이 틀리면,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신의 돈으로 물어내서라도 처리할 수 있지만 대체는 아니다. 대체가 틀리면 원인을 찾고 해결을 해야 한다. 대체는 원인 계정과 상대계정이 이어져야 하고, 무엇보다 딱 맞아야 한다.


  "그러니까 대체를 맞추듯이, 서로에게 꼭 맞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내연애를 '대체를 찍는다'라고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실제로 대체를 찍은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덤으로, 대체를 찍는다는 내부 관용어를 이야기하자, 일반인(?) 친구는 '대체 왜 결혼하냐?'고 '대체'가 아니냐는 천재적인 해석을 내어놓았다.          



**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뭐가 중요할까? 대체를 찍든, 현금처리를 하든,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또 하나의 행복한 커플이 태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두 사람 모두, 내가 좋아하는 동료들이다. 그러니까 이왕 대체를 찍었으니 앞으로 전산에 기록이 두루두루 남을 테니, 남거나 모자람 없이 서로 딱 맞았으면 마감까지 잘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두 사람이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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