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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Apr 26. 2023

님아, 그 돈을 건네지 마오. 제발!

나는야 은행의 보안관.

오늘 아침. 청소하고, 영업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데, 자주 오시는 할머니가 오셨다. 어슬렁어슬렁. 그 움직임이 묘하게 평소와 몸짓이 다르다고 느꼈다. 내 착각인가?     


"일찍 오셨네요? 뭐 하셔야 해요?"

"돈 찾으려고…."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바로 해드릴게요.”     


단순히 출금하시겠거니,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게 정기예탁금 통장을 던진다. 4천만 원이 좀 더 되는 돈이 예금된 통장이다.  

  

돈을 찾는다며 정기예탁금 통장을 주셨다면... 만긴가? 음. 그런데 내가 어제 이분한테 전화했나? 안 한 것 같은데?  통장을 살펴보려는 찰나,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여기서 3천만 원만 찾아줘."     


3천만 원??? 어제도 3천만 원 찾아간다고 한 분이 결국 사기였는데?

설마 오늘도 그런 사기는 아니겠지? 불안함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거기 3천만 원짜리 있지? 그거 해지해서 줘."

"아니 아니. 이건 일단 3천만 원짜리 통장이 아니고요. 아니, 도대체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으세요? 왜 이렇게 큰돈을? 어디 쓰시려고요?"

"집 고치는 대, 쓸 거야."

"아니, 집수리하는데 무슨 돈을 현금으로 줘요! 통장으로 넣어 주지!"

"내가 돈을 들고 있다가, 물건 보고 그때그때 살 거야."     


당당한 태도지만 위화감이 든다. 그리고 돈을 찾는 이유가 묘하게 달라졌다.    

 

"안 돼요. 사기 때문에 요즘 난리예요. 어제도 난리 났었단 말이에요."

"무슨 난리?"

"소문 못 들었어요? 어제도 금감원에서 연락받아서, 3천만 원 현금 찾아가신다는 거 싸우고 생난리를 쳤다고요. 집으로 저희가 찾아가고…. 결국 찾아서 다행이지 못 찾았으면…. 어휴…."

"난 그런 소리 처음 듣는데? “

"못 들으셔서요? 어휴. 요즘에 여기에 사기가 진짜 심해요. 그래서 현금 찾고 이런 게 엄청 예민해요."

"난 그런 거 안 당해. 그런 전화도 안 받고."

"에이 알죠. 그런데 상황이 그래서 현금으로는 못 찾아드려요."

"... 그럼 우리 아들한테 한번 물어볼게."  

   

갑자기 아들이 왜 나오지?


전화금융 사기에 한해서 나는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내 이다.

    

"어머니. 저 핸드폰 좀 주실 수 있어요?"

"왜?"

"아뇨. 뭐 확인 좀 해볼까 해서요."

"안돼!"     


이상하다…. 어머니가 이렇게 과하게 거절을 하실 분이 아닌데?    

 

"한 번만 줘봐요."

"내가 그럼, 아들하고 통화 좀 하고 올게."     


그렇게 할머니가 밖으로 나간다. 다행스럽게도 통장은 두고 사셨지만…. 나는 확신한다. 이건 99% 사기다. 나는 꼿꼿하게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설마, 사기꾼 놈들이 같이 온 건 아니겠지?  

    

그때, 슬그머니 할머니를 따라갔던 직원분이 내게 와서 속삭인다.   

  

"아무래도 이상해요. 할머니가 '네, 네'하고 대답해요. 아들이면 왜 높임말을 써요?"  

   

이거 99.8% 사기다. 아…. 신이시여. 이틀 연속 이게 무슨 입니까?!     


잠시 뒤, 할머니가 돌아왔다.     


"그럼 3천만 원은 그대로 두고, 내 입출금 통장에 있는 1천만 원만 현금으로 빼줘."

"안 돼요. 전 못 해 드려요."

"내 돈인데! 왜!"

"어머니. 진짜 죄송한데 저 전화기 좀 주시면 안 돼요?"

"안돼!"     


결국, 직원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할머니, 어제도 사기가 나서 난리였어요!”

“맞아요. 어제도 이 직원이 돈 찾아준다고 욕봤어요!”

“그 사람도 할머니랑 똑같이 이야기했어요!”

“아무리 봐도 사기 같은데. 요즘 여기에 이상한 전화가 엄청 온다고요!”  

   

갑자기 직원들이 달려들자 할머니는 좀 당황한 것 눈치셨다. 갑자기 나에게 여유가 생겼고, 나는 순간 방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허공에 붕 뜬 것 같은 그 느낌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이게 사기가 아니라면?


‘이런 짓’을 저지른 대가로 나는 민원에 걸리겠지? 그러면 정말 엄청나게 깨지겠지? 하지만…. 난 이미 찍힌 직원 아닌가? 게다가 정말 이건 100% 사기다.      


아, 안되면 또 욕먹지 뭐!     


나는 할머니가 직원들에게 시달리는 사이, 나를 잊은 그사이, 몰래 그러나 재빠르게, 창구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할머니 옆으로 다가가 가방을 뒤졌다.     


"뭐 하는 기고?!"

"핸드폰 좀 볼게요!"     


어렵지 않게 꺼내든 휴대폰. 그 핸드폰에 떠 있는 [국제전화]라는 글씨.     


야, 이- 씨-     


바다 건너의 그들을 향한 욕설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들에게 절대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더 큰 피해가 일어날 수도 있기에 나는 꾹 참고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할머니가 나를 본다.     


나는 당당함과 슬픔과 분노를 담아 외친다.     


"할머니! 사기 전화라고요!!!"

".... 뭐?"     


할머니가 눈을 끔뻑거린다. 나는 감정이 휘몰아쳐서 숨을 좀 가다듬고 겨우 말한다.  

   

"사기 전화예요. 국제전화잖아요."

"아니…. 경찰이라고…."

"흐엉. 제가 아까 어제도 경찰이라 사칭하는 받아서 난리 났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런 거는 들은 적도 없다고 하셨으면서!"

"그렇지만 경찰이라고 하니까…."     


직원 한 명이 할머니를 의자에 앉히고, 또 다른 한 명이 따뜻한 차를 가져왔다. 천천히 이성이 돌아온 할머니가 이야기한다.     


경찰이라고 전화가 왔고, 안전한 곳으로 돈을 옮겨야 한다고 했다고.


전화는 절대 끊으면 안 되고, 현금으로 찾아야 하는 이유를 물을 때 대답하는 법,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당당하게 말하라고 조언까지 했다고 한다. 아오.)까지 모두 알려주었다고 했다.     


"경찰이라 하니까 깜빡 넘어갔어."     


관공서 사칭은 정말 흔한 수법이다. 하지만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그만큼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수법이기도 했다. 나는 너무너무 속이 상했다.


"어머니, 저 몰라요?"

"알지. 왜 몰라."

"그렇죠? 잘 알죠? 아들보다 제 얼굴을 더 자주 보잖아요. 그런데 내 말은 못 믿고, 한 번도 안 본 경찰 말은 어떻게 그렇게 잘 들어요?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어머니가 돈을 떼이면 제가 속상해서 잠이라도 제대로 자겠어요? “

”.... “

"어머니. 이런 전화는 그냥 무조건 안 받아야 해요. 저희 말투 알죠? 여기 말투. 딱 이 말투 쓰는 사람 아니면 다 무시하세요. 제 목소리도 알잖아요. 돈 관련해서는 농협에서도 저 말고는 아~ 무도 전화 안 해요. 다 끊어요. 아시겠죠? 뭐 이상하면 무조건 저 찾아오셔야 해요. 아시겠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인다. 할머니가 마음을 다스리는 사이, 나는 할머니의 휴대전화를 다시 빼앗아 들고 빌어먹을 국제전화 수발신 금지를 등록한다. 모든 사기를 막을 순 없지만, 적어도 국제전화로 인한 사기는 막을 수 있겠지.     


어휴…. 그렇게 한숨을 내쉬다가, 아까부터 옆에 계시던 손님(할아버지)과 눈이 마주친다. 아악!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얼른 해드리게요. 뭐 해드릴까요?"

"아니…. 나도 할멈이 농협에서 돈 찾아가라고 전화가 왔었다고 해서…. 가보라 해서 왔는데…."

"..... 전 아버지한테 전화한 적이 없는대요? 어머니한테도?"

    

나는 이 할아버지의 성함도 알고, 얼굴도 안다. 우리 사무실은 금융담당 직원이 나 하나이기 때문에, 만기 안내 등 금융 계통은 전부 내가 전화를 한다. 내 기억에 이번 달에는 이 할아버지께 전화한 적이 없다.     


..... 이분도 사기 전화를 받은 거다! 미쳐버리겠네!!!     


"저 말고는 농협에서 전화 안 하니까 이런 전화 오면 신경 쓰지 마세요. 아시겠죠? 저 아시잖아요.”

"응. 허허. 별놈의 세상이 다 있네."

"그러니까요. 아앗! 가시기 전에 저 휴대전화 좀 주세요!"

“왜?”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할아버지가 휴대전화를 주신다. 휴대전화 설정에 들어가니 역시나 이분도 국제전화가 수/발신 금지가 해제되어 있다. 아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수신 금지로 변경한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다 떠나고 혼자 남은 나는 외친다.     


"왜 자꾸 사기가 터지는 거얏!!"     





**     




그 후 오는 손님들은 족족 붙잡아 휴대전화를 반쯤 강탈했다.    

 

이유를 묻는 손님들에게 사기 전화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하며 국제전화 수발신 거절을 다 등록해 드렸다. 이쯤 하면 내가 농협 직원인지 통신사 직원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리고 점심시간도 훌쩍 지나, 오후가 되었을 때, 또다시 손님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설정을 만지고 있는데 지점장님께서 어깨를 두드린다.     


"송 대리. 어제오늘 계속 한 건씩 하네?"   

  

시간이 지난 터라 마음이 좀 느슨해진 나는 너스레를 떤다.    

 

"그렇죠? 이 정도면 경찰에서 저 감사패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 지점장님에게 나의 성실함을 어필했다. 그러자 지점장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경찰 서장에게 연락할까?"     


그렇지만 막상 준다고 하면 부담스러운 나는 유교걸….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화두를 돌린다.

    

"에이. 그냥 하는 말이죠. 괜찮아요. 저 보안관이잖아요. 이 정도는 해야죠."

"보안관?"     


지점장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 모르시나? 나는 웃으며 서랍장 제일 구석에 넣어두었던 그것을 꺼내었다.  


"이런 거 못 보셨죠?"

그것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모르겠지만에 받았던 감사패다. 전화금융사기를 예방한 실적을 인정받아 받은 공로패의 일종이었다. 지점장님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감사패를 본다.    


“이게 뭐야?”

“전화금융사기 예방 잘한 직원이랑 사무실 선정하는데, 그때 저 선정되었었거든요. 그때 받은 거예요.”

"이런 게 있으면 말을 하지! 이번에도 올리자! 경찰에게도 내가 말해줄게! 감사패라도 받아야지!"

“이게 뭐라고 올려요. 직원이라면 다 하는 건데!"

"그래도 실적 올리면 좋지! 우리 이미지도 좋아지고!”     



지점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 설마…. 아니겠지?


그리고 몇 시간 뒤, 관내 경찰서에서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손님과 거래를 하고, 손님의 휴대전화를 강탈해서 국제전화 수발신 금지를 등록하고 있었다.     


"송 씨! 잠시만 들어와 볼래요? 당사자가 있어야 설명이 쉽겠다."

“하아……. 네.”     


한숨을 내쉬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는 주절주절 어제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오늘 막은 돈이 3천만 원. 바로 어제도 3천만 원…. (어제 3천만 원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너무 길어서 쓰다 접었다.) 이틀 만에 6천만 원의 사기를 막았다.     


그러자 경찰관이 하는 말은 전화금융 사기 예방으로 실적을 잡으려면, 사기 전화를 받고 있을 때 혹은 사기를 당한 손님이 왔을 때, 바로 그때 경찰서에 연락해야 한다고 했다. 미리 막아서는, 문제가 해결된 후에 연락하는 것은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는 미리미리 연락해 달라고(?) 말하고 떠났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의아함은 더욱 커졌다.     


내 입으로 감사패를 운운하기도 했지만…. 그게 정말 중요한 걸까?     


나는 전화금융사기를 예방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안관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근무했던 지점은 사기 예방 우수 사무실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객의 자산을 보호하고 지켰다는 건 정말로 대단하고 훌륭한 일이다. 그 공로를 인정하기 위해 이런 '인증'을 해주는 걸, 이해는 한다.


하지만 진짜 대단한 사무실은 그런 일이 아예 발생하지 않는 지점이 아닐까?     


사기가 일어나지 않아서, 그래서 그런 예방조차 필요 없는, 직원의 기민한 대처가 필요로 하지 않는, 아예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그런 사무실, 그런 사회가 정말 좋은 곳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곳은, 아예 금융사기 무실적이 되어버린다. 너무나 잘해서 무실적인 사무실.


....말이 되나?     


금융회사는, 그리고 일반 회사 대부분은 실적으로 평가를 한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 실적을 주고 평가한다면, 그건 조금 과장하면 일어나길 바라는 것과 같지 않나? 사고가 일어나야 예방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어째서 사기를 막고,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실적을 생각해야 하는가?


에잇, 이 빌어먹을 세상!



**     



하루종일 손님의 휴대전화를 만지다보니 문득, 우리 부모님이 생각났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전화를 받을 텐데….


물론 말은 매번 한다. 사기 전화가 엄청 많이 오니 조심하라고. 모르는 전화번호는 받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오늘 내가 만졌던 휴대전화의 주인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자제분들이 그런 말을 안 했을까? 분명했을 거다. 하지만 휴대전화에는 정작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퇴근 후, 나는 혹시나 하고 집에 와서 엄마의 핸드폰을 살펴보았다. 우리 엄마도 국제전화 필터가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하하- 농협 직원 부모도 이 모양인데! 내가 누굴 욕한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누워서 침 뱉기다. 퉤          

**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휴대전화를 한번 살펴보라.

그리고 가까운 이의, 소중한 이의 휴대전화를 살펴보라. 그리고 점검해 주자.

뻔한 말과 충고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짜 도움은 아주 사소하지만 분명한 행동이다.          




사기는 나이 들고 멍청한 사람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와 당신이 사기를 당하지 않은 것은 그저 사기꾼이 내게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전화금융사기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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