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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May 17. 2023

시즌 한정판 팔찌를 장만했다

토끼풀 꽃으로 놀기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 세상이 정말로 초록초록하다. 온몸이 초록으로 물들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문득 이런 곳에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길거리에 가득 피어있는 토끼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사이에 피어있는 새하얀 토끼풀 꽃에 화들짝 놀랐다. 토끼풀 꽃을 본 것은 처음이 아니건만, 이렇게 크고 싱싱한 토끼풀은 처음이었다. 일부러 기르려고 거름이라도 준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먹는 내내 그 토끼풀이 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 토끼풀 두 개를 뜯어 팔찌를 만들었다. 혼자서 하다 보니 마무리가 힘들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보면 볼수록 뿌듯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이 마음이 들떴다.


결국 사무실로 들어와 차장님께 손목을 쭉 내밀며 외쳤다.


"차장님! 저 시즌 한정판 팔찌 하나 장만했어요!"

"음? 뭐 샀어?"


나는 씩, 웃으며 팔을 내밀었다. 차장님은 약간의 버퍼링 후. 겨우 내 팔목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진정한 한정판이네."

차장님이 웃는다. 그 웃음에 괜히 마음이 뿌듯하다. 하지만 이제 일을 할 시간.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마감시간이다.


직원 중 한 명이 묻는다.


"마른 꽃으로 만든 거야, 그거?"

"??"

"팔목에 그거."


아, 나도 잊고 있었다! 뒤늦게 인지하고 대답한다.


"아뇨! 아까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뜯어서 한 건데, 일 하다 보니 말랐어요!"


내 대답에 직원도 웃는다. 진짜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말에 뿌듯해지면서, 눈가에 아까 보았던 그 토끼풀 꽃이 아른거렸다.


문득, 잊고 있던 내 로망이 떠올랐다.


예전부터 토끼풀 꽃으로 화관을 만드는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에 시도하지 않았는데... 그 정도 튼튼하고 커다란 꽃이면 충분히 토끼풀 화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차가 없어서 직원들 차를 얻어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그 토끼풀을 뜯기 위해서는 퇴근길, 차를 잠시 돌려야했다. 차를 얻어 타는 것도 미안한데, 그것까지 부탁하기엔 염치가 없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 로망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내 팔찌를 인정해 준(!) 직원분에게 조심스럽게 토끼풀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동네 앞에 토끼풀이 엄청 싱싱한데.. 딱 요만큼, 국수 1인분 만큼의 양이 필요한데.."

"천지가 토끼풀이야. 왜 꼭 거기를? 저 도로 옆에도 엄청 많아."

"그래요? 왜 전 못 봤지? 근데 뜯으려면 한 5분 걸려서.."

"그 정도 뜯는데, 무슨 5분이나 걸려. 10초면 되지!"

"그것보다 더 걸리진 않을까요?"

"안 걸려! 쑥, 뜯으면 되는 거 아냐?"

"그렇긴 하죠.."

"가다가 보이면 차 세워 줄게."


그리고 직원분은 정말로 가다가 차를 세워주었다. 심지어 같이 내려서 나와 같이 토끼풀을 뜯어주기까지 했다! 다 큰 성인 둘이 도로 옆에서 토끼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남들 보기엔 조금 우스웠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로 즐겁고 신났다.


도로가 옆의 토끼풀은 내가 보았던 동네의 것만큼 싱싱하지도 크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뿌듯했다. 같이 뜯던 직원분이 말했다.


"아, 10초는 더 걸리겠다. 그리고 생각보다 안 싱싱하네."

"그게 뭐가 중요해요! 이렇게 할 수 있는게 어딘데!... 바쁜데 시간도 내어주시고... 바보 같은 짓에 어울려주셔서 감사해요."


내 말에 직원분은 아무 말 없이 웃었다.




퇴근 후,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화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하는 거라 어색했지만... 어렵지 않아서 금방 만들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었는데, 생각보다 그럴 싸했다. 그러나 좀 허섭 한 느낌이라 나는 다시 식당 가는 길에 보았던 커다란 꽃을 생각했다.


'역시 재료가 중요해! 다음에는 꼭! 거기 꽃으로 만들어야겠어!'



"엄마! 이거 봐봐!"

"네가 만들었어? 잘 만들었네."

"그렇지? 인증샷 한번 찍자."


결국 누워있던 엄마를 일으켜 머리에 씌우고 사진을 찍는다. 찍다 보니 살짝 작게 만들었단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폭 감싸야하는데, 머리 위에 올라간 느낌. 초등학생들이 쓰면 될 정도의 사이즈였다. 그제야 중간에 머리에 한번 써 봤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래야 사이즈를 알 수 있는데, 나는 그냥 모양만 대충 잡히니까 마무리했던 거다.


"아이고, 딸 덕분에 이런 것도 써보네."


엄마 머리 위에 화관을 씌우고, 앉아서 찍고, 서서 찍고, 방에서 찍고 거실에서 찍고, 옆에서 찍고 앞에서 찍고,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솜씨가 좋지 않은 탓에 멋진 사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짧은 추억은 되었다.


토끼풀 꽃.


이 작은 들꽃 덕분에 이틀이 행복하고 즐거웠다. 좋은 추억도 만들고. 이것이 바로 한정판의 효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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