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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Jun 18. 2023

후배가 퇴사를 고민한다.

10년 전 내가 겹쳐 보이는 이유


"제가 언제 그만두면 제 자리에 신규직원이 올 수 있어요?"


점심시간. 밥을 안 먹겠다는 H를 끌고 식당에 왔다. 근손실이 날까 봐 항상 고봉밥을 비우던 H가 밥을 반공기도 먹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H가 퇴사를 입에 올린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우리는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그를 보았다. H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만 보고 있었다.


"진짜, 너무 힘들어요."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눈물을 보았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과거의 나를 보았다.


**


나에게 첫 퇴사 욕구는 입사 후 한 달 후에 찾아왔었다.


입사 후, 나는 경제 사업소로 발령이 났다. 처음에는 사수가 함께 있어서 6시 퇴근을 했지만, 사수가 떠난 후부터 나는 거의 매일 8시 출근에 밤 11시~12시 퇴근을 했다. 게다가 '좋은 대학'을 나온 나를 비웃는, 그러니까 자격지심에 가득 찼던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았던지... 다들 퇴근하고 나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출근은 버스로 퇴근은 택시로 했는데, 출근할 때 버스비가 3천2백 원. 퇴근할 때 택시비 4만 원. 주말에도 매일 나왔는데, 주말에는 그래도 퇴근은 버스가 끊기기 전에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수습이었기 때문에 내 첫 월급은 70만 원을 조금 넘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일이 일찍 끝날 것 같으면 소장이 회식을 했다. 점심시간부터 술을 먹여서 퇴근시간까지 먹게 했고, 다들 집에 가면 나는 혼자 사무실로 돌아와 12시까지 야근을 했었다. ㅎ...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은 회식자리에서 남자 직원들이 상의를 탈의하고 춤을 추었다는 것과, 내게 마시라고 주었던 고무 대야에 1/3이 가득 찼던 짬뽕 술이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퇴사를 생각했고, 3번의 사직서를 냈다.


두 번째로 퇴사 위기가 닥쳤던 것은 그 후로 6개월 정도가 지나서였다. 경제 사업소에 적응 못했던 나는 결국 은행으로 보내졌는데,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 선배가 왜 나를 그렇게 괴롭혔는지는 모른다. 단지 알 게 된 것은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딜 가든 괴롭힐 사람을 한 명 찾아서 괴롭히는데, 그때는 내가 그 타깃이었던 거다.


정확하게 그녀가 나를 어떻게 괴롭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나는 그 당시 식사량이 정말 적었는데, 그런 내가 커피를 마시면 "너는 밥은 한 그릇 안 먹으며 커피는 한잔 마시니?"라고 말했던 일이다. 그 당시에도 그랬다. 이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맞나? 내가 과민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들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무엇보다 그 선배의 괴롭힘은 나를 인격적으로 망가뜨렸다. 


그 선배는 외동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사랑했다. 나는 당시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괴로울 방법이 뭘까? 고민했는데, 그 끝에 "그 딸이 진짜 죽도록 아픈 것"이 그 결론이었다. 그 딸이 죽도록 아프면 그 선배는 자신이 아픈 것보다 더 괴로울 테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나 자신이 너무 쓰레기 같아서 엄청나게 괴로웠다.


그분과 2년을 같이 근무하고, 각각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나면서 괴롭힘은 끝났다. 그 후로 2년 정도가 지났을 때, 그 선배가 있는 지점에 마트에 문제가 생겨서, 내가 퇴근하고 그 지점을 가야 마감이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 상황이 되자 선배는 그때 처음으로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물론 그 지점에서도 신규 직원 하나를 엄청나게 괴롭혔었다고 한다. 하.


세 번째는 6년 차 정도 때 찾아왔다. 마트 근무를 오래 하다가 오랜만에 은행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내 상사가 나를 괴롭혔다. 원래 그분의 악명은 들었었지만, 같은 부서가 아닐 때는 몰랐다. 하지만 같은 부서가 되자 정말 사람을 미치게 했다. 고작 6개월 근무했는데, 나를 가장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분과 근무하며 갑상선 문제가 생겼고, 정말 오랜만에 그만두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당시 우울증이 심각했다. 현재 내가 가진 많은 단점이 그 당시 만들어졌다. 내 성격을 변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 이분이다.... 지금은 따로 근무하는데, 그분은 승진해서 상무가 되셨다. 요즘은 가끔 실무를 물으러 나한테 연락이 오는데 그런 걸 보면 자신이 나한테 한 행동은 하나도 기억을 못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겐 이렇게 크게 3번의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었다. 일이 힘든 건 1년을 견딜 수 있지만 사람이 힘든 건 한 달을 견디기 힘들다. 이 말을 처음 들은 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몹시 공감하고 있다.



**


H가 이야기를 쏟아냈고, 우리는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침묵이 내린 식당 테이블 앞에서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말을 하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닐 것인가?


내가 뭐 잘났다고,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래! 그만둬!라고 말하기엔 지금 구직이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참고 다녀!라고 말하기엔 그의 상처가 너무 컸다. 침묵이 가장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H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 같았다. 그가 조금이라도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단서를 주어야 하는 것이, 선배의 역할일 테니까.


"음. 나는 항상 하는 말이지만 그만두는 건 찬성이야. 나도 그때 못 그만둬서 지금까지 다니는 거니까. 물론 다닌다고 해도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부분이 진짜 많거든."

"...."

"근데 이거는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넌 지금 소장님이 힘든 게 제일 큰 문제지?"

".... 네."

"네가 그만두면 그 사람을 더 이상 안 보겠지. 그건 확실해. 하지만 그런 사람은 또 안 볼까? 내가 가게 될 회사에서 그런 사람을 안 만난다는 보장이 있어?"


말을 내뱉는 순간, 누군가 귓가에서 '꼰대!'라고 외치는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들어봤던 말. 선배들이 자주 하는 그런 말. 그 말을 내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이잖아? 소장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지만, 그 정도 이상한 사람은 세상에 많고 많았다.


하지만 꼰대를 외치는 마음속 목소리는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확실하게 이상한 사람을 피할 수 있는 건 사실이잖아? 다른 회사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난다는 보장이 있어? 좋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네가 뭘 그리 잘 알아서 그렇게 말해?


"그리고 지금 너 일 힘들다고 하지만 시간 지나면 일은 금방 익숙해져. 너 처음에 마트 볼 때 엄청 힘들어했잖아. 그런데 너 지금 지난번에 나한테 그랬지? 마감은 이제 발로도 한다고. 조금 더 시간 지나면 지금 일도 발로 한다고 말할 수 있을걸?"


하지만 누군가에겐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다. 남들은 다 할 수 있어도 나는 죽어도 못하는 일.


"그만둔다고 해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 그만두는 게 났지 않아? 너 지금 딱히 뭔가 다른 일이 하고 싶은 건 아니잖아. 돈은 벌 거잖아. 그런 거라면 여기가 그래도 괜찮을걸?"


돈은 다른 곳에서도 벌 수 있잖아? 꼭 여기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 여기에 있어도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니었다.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반박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10년 전의 나의 목소리였다.


**


나는 지금 10년 전, 내가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들었던 그 말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나도 쉽게 한 말은 아니었다. 나도 고민할 만큼 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왜 책임자라는 사람들이 내게 저런 뻔한 이야기를 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형식적인 이야기! 내가 몰라서, 그런 생각을 안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나?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뻔한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다니...


"너보다 그 소장이 먼저 그만둘 거야. 명퇴 얼마 안 남았어. 그냥 가만히 기다려도 넌 이기는 거야.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면, 머지않아 원수의 시체가 떠내려 온다고 하잖아."

"제가 그 사람을 물에 집어던지면 안 되는 거예요?"


H의 눈이 이글거린다. 그의 눈빛에서 그의 상처와 분노가 느껴진다.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나였어도 틀림없이 저렇게 말했을 테지. 단지-


"그만두기 전에 다 말하고 그만둘 거예요. 그 사람이 어떻게 했지. 절 얼마나 괴롭혔는지. 그래서 그 사람 버릇을 제가 꼭 고쳐버릴 거예요!"


아-


마지막 이어지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나도 똑같이 했던 생각. 저 버릇을 꼭 고쳐버려야지, 저 거지 같은 마인드를 뿌리 뽑아야지! 내가 뭔 짓을 해서라도 바꾸고 만다! 하는 마음.


하지만 이제 안다.


절대 그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소장은 퇴직이 얼마 안 남은 사람이다. 평생을 저런 심보로 살아왔다. 그런 사람이 고작 한 명의 퇴사와 고발로 바뀐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걸 알기에 사람들도 그냥 넘어가는 거지. 어쩔 수 없는 걸 아니까....


하지만 화가 나는 건 사실이다. 왜? 평생 그렇게 편하게 살았다고, 더럽게 살았다고, 끝까지 그따위로 살아도 되는 권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선하고 성실하게 산 사람은 무슨 죄란 말인가?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바뀌어야지! 언제까지 옛날에, 자기 편하던 대로 살려고 하는 건가? 돈을 받으면 그만큼 일을 해야지!


그렇게 생각이 들지만, 이상과 내 머리는 그렇게 말하지만... 한숨이 나온다. 안다. 저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을. 결국 생각은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그 수없는 반복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변했다.

좋은 쪽으로 바뀐 건 아니다. 나쁜 쪽에 가까워졌다. 예전처럼 울면서 괴로워하거나 그냥 사직서를 던지지 않는다. 대신 뻔뻔하게 입을 턴다. 소장님이 안 한다고요? 그럼 저도 안 해야지! 제 일이 아닌데 왜 제가 해요?라고 뻔뻔하게 대답하는.... 그래서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는...


하지만 '나처럼 해라'라고는 말 못 하겠다. 과거의 나였어도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지금의 나도 자주는 못하니까. 무엇보다 H는 하지 못할 테니까.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이제 겨우 4개월 차인 H에겐 불가능한 일. 성격에 따라 20년 차도 불가능한 일.


결국 식사 자리는 함께 식사하던 이들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응원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누구도 쉽게 그만두라고도, 참으라고도 말하지 못한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지만, 그 모든 건 사실 본인의 파단과 적성의 영역이기에..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뭐가 되든 잘 선택해서 결정해라."

"그래. 난 아까도 말했듯이 퇴사해도 좋고 안 해도 좋아. 대신, 그만두면, 그만두기 전에 따로 밥 한 끼 하자. 점심시간 말고."


H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의 식사자리는 파했다.


**


H를 볼 때마다 10년 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저렇게 힘들어했는데... 10년 전 어리고 착했던(?) 내가 그의 위로 겹쳐 보인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어째서 내 입에선 이런 고리타분한 옛날 말만 나오는 걸까? 진심인데, 난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는데... 왜 이렇게 형식적이고 틀에 박히고 고리타분한 조언만 나오는 거지? 난 좀 더 열리고? 공감되고? 그를 격려할 수 있는 그런 말이 하고 싶은데?


아!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뜩였다.


그런가. 그때 나를 말리고 위로하던 선배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정말 진심으로 나를 위로하고 응원했던 걸까? 그저 내가 몰랐던 것뿐일까? 그들도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어떻게든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 꺼낸 말이었을까?


이렇게 또 선배들의 마음을 깨닫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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