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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Jul 25. 2023

어쩌다, 운전

어느 뚜벅이의 운전 시작기

나는 운전과 거리가 멀었다. 내 친구들은 보통 수능을 끝나고 대학 입학 전에 면허를 땄는데, 나는 그 시기에 따지 못했다. 대학생활 때는 방학이면 학교 게시판 곳곳에 붙어 있는 운전면허 학원의 광고를 보기도 했지만, 그때는 운전의 필요성도 또 학원을 다닐만한 돈도 없었다. 그렇게 면허가 없이, 회사에 입사를 했다.


 시골 생활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가 대중교통의 불편함이다. 많은 직원들이 내게 면허가 있냐고 물었고, 내가 '없다'라고 대답하면 면허부터 따라고 했다.


하지만 운전이, 그렇게 필요한 걸까?


처음 1년은 1시간씩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직원들은 어떻게 그걸 견디냐고 학을 뗐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자주 버스가 와도 한 시간 이상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서서 움직여야 했지만, 이곳 시골에서 버스를 타면 항상 앉아서 오갈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잠도 자고 휴대폰도 하면 시간은 금방이었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 시골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덕분에 사무실과의 거리는 가까우면 걸어서 5분, 멀면 버스로 20분 거리였다. 차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종종 놀러 갈 때나 '차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차를 소유하는 건 너무나 어리석고, '돈지랄'처럼 보였다.


그렇게 무면허로(?) 몇 년을 보냈다. 그 사이 사람들은 나에게 엄청나게 면허를 종용했다. 당시 면허 코스가 무척 쉬어져서, 그냥 시동을 걸고 직선으로 가기만 해도 면허에 합격을 했다. 이렇게 쉬울 때 면허를 따야지! 왜 안 따냐며, 도대체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던 직원의 얼굴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


하지만 차를 사는 순간,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차 할부금. 유지비. 보험료... 최소 월 50은 추가로 나간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내 월급을 50만 원 높일 수는 없고, 그렇다고 소비를 50만 원 줄이는 것도 어려웠다. 그렇다면 빚으로 차를 굴려야 한다는 말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몇몇 사람들은 '그렇게 까지 해야 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내게 운전을 하면 얼마나 편한지,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설명했다. 50만 원 이상의 가치를 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것을 누려본 적이 없기에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기에 도리어 그 좋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 막연한 '좋음'보다 명백한 증거인 '통장잔고'가 내겐 더 가까웠다.


그렇게 나는 면허 없이 시간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운 겨울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퇴사 욕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만두기 전에 면허라도 따라고 했다. 나는 무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직원들 몰래(?)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집에서 운전면허 학원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긴 롱패딩을 입고 뚜벅뚜벅 학원으로 걸어갔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 길거리에서 나를 본 직원이 "겨울에 어딜 쏘다니냐"며 전화를 하기도 했다.


나는 처음 '수동' 스틱으로 운전면허를 따기로 했다. 내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고, 엄마의 뜻이었다. 엄마가 수동 스틱으로 된 트럭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래도 오토보다는 스틱이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딸 거라면 어려운 걸 따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나는 주말을 이용해서 면허증 취득에 도전했다. 학원에서는 꾸준히 해야 실력이 느는데, 너무 드물게 하니 계속 잊어서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실력이 좋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니, 미성년자 시설, 나는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았다. 실제로 보지 않아도 유명한 작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니셜 D는 내가 대충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으로 운전을 엄청나게 잘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였다. 면허를 취득하기 전, 나는 어쩌면 나도 이니셜 D의 주인공처럼, 나도 모르는, 운전에 타고난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 드리프트!, 하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키가 작아서 인지, 그것보다는 사실 긴장한 탓이었겠지만, 트럭에 앉으면 발이 브레이크나 엑셀에 닿지 않았다. 덕분에 앉을 때면 롱패딩을 돌돌 말아 등 뒤에 밀어 넣어야 했다. 그렇게 애써 운전대 앞에 앉아도 나는 시속 30킬로 이상을 달리지 못했다.


속도가 너무 무서웠다. 스틱을 조정하는 것도, 클러치를 밟는 것도 어려웠지만, 제일 어려운 것은 속력을 내는 것이었다. 내가 면허를 딸 때는 다시 면허가 조금 어려워졌던 시기였다. 언덕, S자, T자, 사거리 등 다양한 코스 중에서 내가 제일 힘겨웠던 것은, 마지막 직선 과속 구간이었다.


"너는 속도를 못내. 그러니까 과속 구간은 과감하게 버려."


전 코스에서 약간씩 감점을 당하여 간당간당 하던 나는 매번 과속 구간에서 확실하게 점수를 날려먹었다. 그런 나를 위해 강사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나는 합격을 위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실내주행 시험 당일. 그날은 추웠다. 눈이 많이는 아니지만 약간 내렸다. 나는 긴장한 상태로 운전대에 올랐다. 그런데 그날, 운전이 너무 잘 되었다. 평소 같으면 감점이 일어났을 텐데, 그날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나는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운이 좋으면, 100점으로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차피 합격할 거라면 100점으로 합격하면 더 멋지지 않을까? 흥분으로 머리가 흐트러졌다. 그렇게 흥분한 나는 마지막 과속 구간에서 힘껏(?) 액셀을 밟았다. 속도가 점점 올라갔다. 100점! 100점!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속도 조절을 못했다. 사실 그 순간이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차가 급 정거를 했고, 덕분에(?) 뒷바퀴가 번쩍 들어 올려졌고, 차가 전복될 뻔했다는 것이다. 결국 감독실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놀라 뛰어나왔다. 나는 감독관들의 도움을 받아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내리던 중 보니, 내 손톱이 다 부러져 있었다.


"아이고, 내가 너 안 딴다는 면허를 억지로 따게 하려다가 하나밖에 없는 딸 저 세상 보낼 뻔했네."


청심환을 먹고 누운 나를 보며 엄마는 가슴을 치며 괴로워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사건이 내게 큰 트라우마를 주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나는 스틱을 버리고 오토로 바꾸었다. 중간에 종목을 바꾼다는 것이 자존심도 조금 상하고, 무엇보다 돈이 너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토로 바꾸자 진도는 일사천리로 나갔다. 실내는 금방 합격을 하고, 도로주행을 했다.


시골에 사는 덕분에 도로는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도로주행 코스를 연습하기에 적당했다. 단지 시골 특유의 폭탄(ex. 전동차)이 많다는 점과 내가 길을 잘 익히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도로주행 코스는 두 코스였는데, 한 코스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한 코스가 너무 어려웠다. 제발 시험 칠 때는 내가 편한 코스가 되길! 기도했다.


도로 주행 중에서 가장 지적을 많이 당한 것은 역시나 속력. 그다음은 급 브레이크. 끼어들기 같은 건 상상도 못 했으니 논외.


그렇게 도로 주행 시험 날이 되었다.


그때 도로 주행 시험에는 3명이 함께 했다. 두 명의 수험생(?)과 감독관이 한 팀이었다. 한 명이 운전을 하고, 감독관은 조수석에 앉고, 다른 수험생은 뒷자리에 앉아 관람하는 형태였다. 내 뒤에 앉은 수험생(?)은 그때가 두 번째 도로 주행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가장 친했던 내 친구는 수능을 치자마자 바로 면허를 땄는데, 그 친구는 도로 주행에서 3번 떨어졌다고 했지. 아, 설마 나 도로 주행에서도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그럴 것 같으면서도 그러고 싶진 않았다.


다행스럽게 나는 내가 선호하던 코스가 선정되었다. 나는 도로인 만큼 최대한 욕심을 버리고(?) 열심히 했다. 시속 10킬로와 30킬로 사이에서 안전 서행을 한 결과, 한 번에 도로 주행을 합격했다. 나에게 합격을 외치던 감독관이 내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합격이긴 한데, 운전하실 거면 꼭 도로 연수받고 하세요. 꼭!"


그렇게 나는 공식적으로 면허증 소지자가 되었다. 스틱을 하다가 오토로 갈아타서 그런지, 나는 장내 합격 후부터 '운전 뭐 어렵지 않네!'이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에겐 차가 없었고, 그 말인즉, 그대로 장롱면허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 용기 역시 장롱으로 들어가 버렸다.


비밀스럽게(?) 면허증을 획득 한 덕분에, 이후에도 내 면허소지 유무는 모든 사람들의 흥밋거리가 되었다. 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그래서 그 후 내게 면허가 없냐고 물으면 "비밀"이라고 대답했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그 대답에서 면허 소지를 눈치챘다. 물론 별개 다 비밀이라고, 구시렁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웃으며 "차를 사주면 알려주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을까? 코로나가 터졌다. 차가 없던 이들도 코로나를 기점으로 차를 사고, 운전을 시작했다. 갑자기 '나도 이제 운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문득, 앞으로 부모님이 나이가 더 들 텐데, 그때도 병원을 버스 타고 가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정도는 내가 모시고 가야 하지 않을까?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차가 필요할 것 같았다. (엄마는 코로나 직전에 트럭을 판매하고, 뜻하지 않은 뚜벅이가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차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신차 출고 대기가 무지막지하게 길어졌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고금리. 차 할부이자가 10 퍼센터를 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때문에 나는 경제적인 이유와 함께 조심성이 극도로 부족한 내 성격을 고려하여 중고차라도 사서 운전을 시작해 볼까? 했지만, 엄마는 반대했다. 새 차를 뽑아 조심히 운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중고차를 잘 고를 눈이 우리에겐 없지 않냐는 것이었다.


엄마의 말도 옳지만, 우리 형편에 신차는 너무 과하지 않나? 할부이자 10퍼센트씩 주면서 어떻게 차를 타! 결국 엄마와 나의 의견은 좁히지 못한 상태로 시간만 흘렀다.


그러다가 오빠가 신차를 뽑았다.


오빠는 오래전부터 차를 바꾸고 싶어 했다. 올해 바꿀 생각도 잇었는데, 문제가 생겨서 좀 어렵겠구나-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 주에 차 끌고 갈게."


우리 모르게 오빠가 새 차를 뽑았고, 생각보다 해당 차량이 빨리 나왔던 것이다. 엄마가 가장 반가워했다. 오빠의 차라면 중고차라도 괜찮다는 게 엄마의 생각이었다. 엄마가 차가 오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번에는 나도 운전을 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했다.


나는 면허를 따고 시간이 지나면서, 운전에 대한 내 자신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나는 점점 더 운전이 두려워졌다. 저 위험한 차를 내가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혹시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다. 만약 내가 사고라도 내면 어쩌지? 내가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된다면?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소위 말하는 그 김여사 같은 운전을 나는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언제나 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오빠가 말한 '다음 주'가 되었다. 오빠는 퇴근 후, 늦음 밤에 차를 끌고 내려왔다. 일정상 그다음 날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오빠는 엄마에게 차를 넘겨주기 전, 같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차체가 낮아서 좀 낯서네."

"금방 적응하실 거예요."


운전을 마친 두 사람이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내게 문득, 이 기회에 운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 바퀴 같이 돌자!"


내 적극적인 모습에 오빠는 좀 당황한 듯했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첫 운전을 시작했다.


"어딜 가볼래?"

"우리 사무실?"

"그래. 길은 알지?"

"응."


차를 타고 나가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언젠가 내게 운전을 권유하던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네가 있는 지점 가는 길이 운전 연습하기 엄청 좋잖아. 특히 그 뒷길은 커브길 연습하기 딱이지. 차도 거의 안 다니고."


그 '뒷길'은 현재 나와 카풀하는 직원이 종종 다니는 길이다. 정말 거의 모든 사람이 안 다니는 길. 일단 차량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그 길을 택했다. 비 오는 주말 아침인 덕분에(?) 다행히 정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야! 꺾어야지! 더 꺾어! 여기 빠진다! 붙여! 너 지금 중앙선 침범이거든?"


쉴 새 없이 외치며 와이퍼를 켜고, 사이드 미러를 봐주고, 방향을 지시하던 오빠가 말했다.


"비상등을 켜자!"

".... 비상등은 비상일 때만 켜야 하는 거 아냐?"

"지금 네가 비상이거든? 이게 비상이 아니면 언제가 비상이야?"

"아. 그건, 그렇지?"

"야, 뒤에 차 온다."

"오. 비상등 켜기 잘했는데?"

"말 그만하고 집중하라고!"


쳇. 그렇게 커브길을 지나 목적지 절반정도 왔을 때였다. 오빠가 물었다.


"버스 타고 사무실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20분? 여기까지 보통 10분 만에 오지."

"... 지금 너 집에서 나온 지 30분 되었거든?"

"난 초보잖아. 버스기사님은 베테랑이고."

"... 그래."


결국 40분 만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빠는 쉬지 말고 다시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왔던 길 말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


"예전에 다른 직원이 말해줬는데. 이 길이 좀 멀긴 한데 안전하대. 그래서 그 직원은 이 길만 다닌다고 했어. 여기로 다닐까?"

"여기가 거기나 큰 차이 없는데? 그래도 이 길이 좀 나은 것도 같다. 이리로 다녀."


그러나 나는 운전을 끝가지 완수할 수 없었다. 오빠의 버스 시간 때문이었다.


"이래가지곤 나 집에 못 간다! 차 세워!"


결국 중간에 차를 세워 오빠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그렇게 내 첫 운전은 끝이 났다. 그러나 나의 운전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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