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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Aug 20. 2023

다른 사람의 차를 운전해 봤다.

처음으로 혼자 운전을 시도한 날, 내 목적지는 당연하게도(?) 사무실이었다. 회사에서 주유하면서 만났던 직원 중 한 명은 그날 저녁 내게 고속도로를 체험하게 해 주었다. 약 20분 정도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혼자서라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경험을 시켜주신 P.      


그 P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감 중이던 나는 정신없는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대리운전할 생각 있어요?”

“... 네?”

“퇴근길 대리운전, 안 할 거예요?”

“! 할래요!”     


뒤늦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P가 알겠다며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그날따라 마감이 길어졌다. 기다리고 있는 P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죄 없는 직원들에게 화를 내고(!) 마감을 하고 차로 달려갔다. 자신의 차량 조수석에 앉아 있는 그는 무척이나 어색해 보였다.     


“아니, 대리운전기사가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 됩니까?”

“아이고, 사장님. 죄송합니다.”

“일단 출발하시죠.”     


P의 차는 오래된 승용차였다. 내 차(=엄마 차=우리 차)도 꽤 오래된 편이긴 했지만, 이 차는 더욱 오래되었다. 의자 위치를 손으로 조정해야 했으니까. 낯설구나. 낯설어. 보통 때보다 반 가까이 앞으로 나온 의자를 본 P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의자를 너무 당기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안 당기면 브레이크에 발이 안 닿는 기분이라서….”

“.... 다리가 짧구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시동은 열쇠로 걸었다. 스마트키로 꾹 눌러 시동을 거는 것에 익숙하던 나에겐 키를 돌리는 것조차 낯설었다. 차 시동을 끌 줄 몰라, 시동을 꺼달라고 부탁한 동생이랑 싸웠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어느덧 스마트키에 익숙해지다니.     


천천히 기어를 주차에서 후진으로 바꾸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뚜벅이 시절 종종 사람들이 핸들이 가볍다거나 엑셀이 잘 안 나간다는 같은 말을 하는 걸 들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냥 상징적인, 그러니까 은유에 가까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두 번째 차를 몰면서 나는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P의 차는 정말 핸들도, 브레이크도, 엑셀도 모두 가벼웠다. 내 차는 두 손으로 있는 힘을 주어 핸들을 돌려야 했는데, P의 차는 한 손으로만 움직여도 핸들이 매끄럽게 돌아갔다. 액셀도 브레이크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잘 나가니까 도리어 불안해졌다. 이대로 어디론가 날아가 부딪칠 것 같았다. 게다가

     

“저 P 님의 차를 그렇게 얻어 탔지만, 이렇게 차가 큰 줄 몰랐어요.”

“이 차가 생각보다 좀 커요.”     


오빠는 분명히 내 차는 소형차라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 크게 느껴져서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화가 났다. 여길 어떻게 지나가라고! 하지만 P의 차를 타니, 내 차가 얼마나 작은지 제대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는 내 차로 운전을 하면 항상 중앙선에 너무 붙는다는 말을 들었었다. 하지만 P의 차로 운전하니 같은 기준을 적용했음에도 도리어 바깥쪽으로 붙었다. 큰 차는 이런 느낌이구나. 대신 땅에 붙어 있는 면적이 커서 그런지 안정감이 들었다. 조그마한 정 삼각형에 올라타 있다가 넓은 사다리꼴에 올라와 있는 기분?     


아직도 많이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단 내 차에 적응한 상태였다. 그러나 다른 차를 타니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다시 왕초보가 된 기분. 조작 버튼이 어디 있는지 몰라 계속 물어야 했다. 요즘 새로 나오는 차들은 사이드가 발에 있기도 하고, 버튼으로 기어를 조작한다고도 하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첫 번째, 타인의 차 운전이 끝났다.     


그 후로 나는 틈만 나면 직원들의 차량을 노리게 되었다. 운전할 기회가 생기면 하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아무도 내게 운전대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러다 운전 4주 차, 정확하게 운전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점심을 먹던 중, 어김없이 나의 운전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운전을 시작한 이후, 나는 운전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대화의 화두는 자주 내 운전이 되곤 했다. 그리고 냉면을 점심으로 먹고, 사무실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아, 운전 제가 하면 안 돼요?”

“그래! 그럼 한번 해봐!”     


항상 웃음으로 넘기던 C가 자신의 차량을 넘겨주겠다고 했다! 앗싸! 나는 들떴고, C는 조금 안전한 곳까지 가서 차량을 넘겨준다고 했다. 그가 간 곳은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낡은 도로 앞이었다. 그러니까 그곳을 오가는 차들도 당연히 없었다.     


C가 뒷좌석으로 가고, 나는 운전석으로 앉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P가 C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리는 건너서 넘겨주지 그랬어요?”     


아무래도 P는 좁은 다리가 걱정스러운 듯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C의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C의 차는 P와 같은 승용차였지만, P의 차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실제로 큰 것인지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게다가 C는 나보다 체중은 두 배, 키는 20㎝ 이상 컸다. 자동차의 모든 세팅이 그런 C에게 맞춰져 있으니, 모든 것이 더 크게만 느껴졌다.     


C의 차 핸들은 P의 차만큼이나 가벼웠다. 쫄보인 내가 엑셀은 밟지도 못하고 다리를 빠져나오려는 순간, 저 멀리서 차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멀어서 가도 되겠다.”     


불안한 마음에 내 몫 이상으로 양쪽 도로를 살펴주던 직원들이 도로 진입을 허가했다. 낡은 다리는 도로보다 높은 위치였고, 바로 도로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는 내리막길에서 90도로 도로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속도가 두려운 나는 브레이크를 살짝 밟으며 좌회전을 위해 핸들을 돌렸다. 그런데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 어? 어? 하는 순간 차가 앞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차가 그대로 앞으로 박게 생긴 상황. 직원들이 모두 당황했다. 차는 아주 느리게 움직였고 나는 더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스럽게도(?) 차는 멈추었다. 물론 엄청나게 위험하고 애매한 위치에서. 그러던 사이 멀리 떨어져 있던 나는 어느덧 내 옆에 도착해서 멈춰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보이지도 않는 상대방 운전자의 마음이 귓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 흑흑 죄송합니다. 제가 초보운전이라 죄송합니다. 나는 거의 랩 하듯 마음의 소리를 웅얼거렸다. 초보운전, 진짜 어쩌면 좋니?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생각해 보니까 이 차는 남의 차다. 그러니까 초보운전이라는 글씨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대방 차주는 초보운전이라는 연약한 필터링도 없이 나를 생각하고 있을 거였다! 아, 내가 바로 그 유명한 김 여사가 된 것인가?! 나는 진땀을 흘리며 주위 직원들의 조언으로 겨우 차를 도로의 정상 위치에 돌려놓을 수 있었다. 다행히 친절한 운전자는 빵도 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 주었다. 흑흑. 감사합니다.     


이제야 겨우 마음을 놓은 P가 뒷좌석 C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이제 C 님은 송에게 절대 차 안 넘겨주겠는데?”     


어딘가 초탈한 것 같은 C의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내 심장은 두근두근. 나는 변명하듯 진심을 말했다.     

“브레이크가 너무 안 들어요!”     


엄청나게 핑계 같지만 분명 사실이었다. 정말 브레이크가 너무 안 들었다.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반응 임계점이라고 해야 할까? 평소의 내 차라면 충분히 속도가 감속되었을 그 지점까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내 차라면 급정거가 되었을 듯 그 지점까지 밟아야 차가 반응을 했다. 변명하자면 적응도 하지 않는 낯선 차를 내리막 커브 길에서 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차마다 정말 다르구나.     


내 차 핸들이 무겁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두 대의 타인의 차를 몰아본 후에야 무거운 편에 속한다는 걸 알았다.      


엄마는 핸들이 가벼운 이유가 차주가 차를 잘 길들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엑셀 반응속도가 좋은 차를 기름 냄새만 맡아도 가는 차라고 하는 것도. 차마다 반응이 다 다르다는 것도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 다른 사람의 차를 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게 차종에서 오는 크기 차이뿐만 아니라 이런 디테일한 구석에서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아마 이제는 함부로 다른 사람 차를 타보겠다고 조르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직은 낯선 차에 바로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반응속도가 좋지 않으니까. 잘못하다간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남들이 먼저 차 열쇠를 주는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실력을 쌓아야지.     


이 자리를 빌려, 소중한 차량을 빌려주고 운전까지 봐준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얼른 베스트드라이버가 되어서 은혜를 갚겠습니다./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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