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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Aug 05. 2023

혼자 운전을 하다

어쩌다, 운전

내일(글을 작성하는 지금 기준으로는 오늘)은 오빠의 차가 우리 집에 온 지 20일 째였다. 그동안 나는 14번 차에 올랐다. 그 중 2회는 오직 주차 연습만 했고(주행은 하지 않았다.), 운전을 한 13회 중 2회는 오빠가, 9회는 엄마가, 1회는 회사 선배가 함께 했다. 그러니까 내 주된 운전 메이트 겸 선생님은 엄마였다.


엄마는 좋은 선생님이었지만, 단점도 있었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엄마는 나를 너무 걱정한 나머지 과하게 놀란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지난번 사고 위험(?)에 처했던 이후, 엄마의 반응은 더 심해졌다. 게다가 베테랑인 엄마가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자꾸 엄마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서로의 판단이 다를 때면 트러블이 생겼고, 엄마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내 옆에 타고나면 무척 힘들어하시고 나날이 좀비가 되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나를 심란하게 했다. 평소에도 그다지 효녀는 아니지만 그래도 불효녀까지는 아니었는데, 최강 불효녀가 된 기분이었다. 딸 운전연수 하다가 엄마가 과로사했다고 뉴스에 나올까 두려웠다.


그래. 이제는 혼자 타야 할 때야!


"토요일에 차 내가 쓸게. 혼자 운전해 보려고."


오빠의 차는 현재 엄마의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에게 차를 주면 엄마는 회사 차로 출근을 해야 했다. 엄마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주말에 타지 않으면 결국 야간 주행밖에 연습 방법이 없다. 첫 혼운을 야간주행을 하고 싶진 않았다. 엄마는 알겠다며 차키를 넘겼다.


그러나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어도 돌아서면 그냥 다음에 할까? 아직은 너무 초본데? 길에 나가서 민폐가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미루면 또 한참을 미룰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먹었을 때, 혼자 운전을 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토요일이 되었다.


여기는 시골이라 그다지 차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출근 시간만큼은 항상 복잡하다. 그래서 나는 주말 아침 일찍 출발할 생각을 했다. 설마 주말 아침에 일찍부터 출발하는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예상치 못하게 산책까지 하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는 아침 6시 늦어도 7시에는 출발하려고 했는데,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7시, 씻고 챙기니 8시 조금 안 되어 있었다.


아, 생각보다 늦었는데? 설마, 이 틈에 도로에 차가 증가한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산책이라는 정말로 일상적인 행위 덕분인지 마음이 도리어 편안해졌다. 그렇게 내 첫 혼자 운전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내가 가장 많이 가 본 우리 회사를 거쳐 차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관광지였다. 그러니까 회사를 거쳐 관광지에 도착하는 것이 1차 목표. 거기에서 주차연습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회사에 들려서 주유를 하는 것이 2차 목표. 최종적으로 집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이 3차 목표였다.


어제 엄마가 신경 써서 주차를 해 놓은 덕분에 주차장에서 어렵지 않게 차를 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골목길에서는 마주 오는 차량을 만나지 않았다. 몇 가지 행운이 겹쳐서 도로에 오를 수 있었다. 아직까지 도로 진입 시 속도 조절이 능숙하지 못한데, 이번에도 엑셀을 너무 늦게/약하게 밟아, 잠시 도로에 서 있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그 사이 차가 한 대도 오지 않았다. 진짜 다행.


그러나 첫 신호등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파란불. 직진과 좌회전의 동시 신호였다. 나는 직진을 하려고 진행 중이었는데, 앞 차가 멈춰있었다. 나는 설마 하다가 천천히 속력을 줄이다가 놀라서 급정거를 했다. 차가 휘청했다.


왜 안 가는 거야?


생각지 못한 사태에 결국 처음으로 빵을 해보았다. 빵을 먹기만 하던 내가 빵을 하다니!! 그러나 그 차량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트럭이었는데, 내가 빵을 하자 가운데 앉은 사람이 나를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차는 출발을 하지 않았다. 뭐야? 다시 한번 빵. 그 차는 깜빡이도 비상등도 넣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빨간불이 들어왔다. 뭐야? 초보운전인가? 아니, 나도 초본데? 도대체 뭐지??


결국 다음 신호에 트럭은 움직였다. 나와 같은 직진이었다. 순식간에 나와 거리가 벌어진 걸 보면 초보운전은 아닌데, 어째서 그렇게 멈춰있었던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초반에 고생을 해서인지, 아주 다행스럽게도 도로 위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덕분에 나는 어려움 없이 차를 몰 수 있었다. 나는 속력을 내려고 애썼다. 최근 70킬로까지 밟은 기억이 있어서 인지, 오늘은 50킬로까지는 편하게(?) 올릴 수 있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 운전할 때만 해도 30킬로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저번 주부터 40에서 50킬로를 기본 속도로 하고 있었고, 지금은 노력하면 60-70은 밟을 수 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4차선 직선코스를 벗어난 순간 내 속력은 다시 30킬로와 40킬로 대로 떨어졌다.


그래. 안전하게 가는 게 중요하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뒤로 소시지처럼 줄줄 붙어 있는 뒷 차량들을 보면 마음이 심란해졌다. 보내주고 싶지만, 아직 내 실력으로는 보내주기도 힘들었다. (보내주려다가 사고가 날 뻔한 이후 일단 내 페이스로 가기로 했다.) 게다가 여기는 갓길 대신 자그마한 도랑이 있었다. 잘못 비켰다간 그대로 바퀴가 빠질 수 있었다. 나는 홀로 미안합니다를 외치며 전진했고, 차량들은 하나둘 나를 추월해 갔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횡단보도가 나오거나 마을 앞을 지나갈 때는 속도를 급격하게 줄인다. 남들이 뭐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욕이 사고보다는 덜 무서웠다. 무엇보다 나는 초보다. 그것은 반응속도가 느리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라도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저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튀어나올지도 몰라, 저 커브 앞에서 차량이 튀어나올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운전을 했다. 아, 이게 바로 방어운전인가?


그렇게 회사까지 통과했다. 우하하하, 되는구나! 뿌듯함도 잠시. 이제 내 앞에 남은 것은 꼬불꼬불 커브길 X오르막길이었다. 지난번 여기를 엄마와 30킬로, 20킬로 대로 서행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40킬로로는 올라가야지! 여기를 커브길이라서 추월도 어려운데, 최소한 그 정도 속도는 내어주어야 교통에 방해가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나는 30킬로 대로 달리고, 아니 기어가고 있었다. 흑..


그렇게 열심히 기고 또 기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의 텅 비어있는 주차장이 나를 반겼다. 관광지인 덕분에 주장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거기서 위치를 옮겨가며 나는 주차 연습을 했다. 아직은 무서워서 나는 차량이 아예 없는 곳에만 주차가 가능하다. 언젠가는 빽빽한 차 사이에 능숙하게 주차할 날이 오겠지? 그렇게 기대하며 처음으로 평행주차도 해보았다. 평행주차를 하는 곳이 없어서, 그냥 일반 후진 추자 하는 공간 3개를 물고 해 본 거라 잘 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해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거지.


두세 칸을 옮겨가며 연습을 하는데 주차장에 차가 하나 들어왔다.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할 시간인가 보다. 시계를 보니 8시 40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아, 그래. 관광객이 들어오면 이건 이제 민폐지. 이제 돌아가자. 그렇게 마음먹고 화장실에 들어가던 중, 갑자기 이 관광지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와, 내가 여길 혼자 왔다고?


직원들이랑 점심시간에 밥 먹으려나 가끔 왔던 이곳에, 나 스스로 왔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지. 잘했어. 잘했어. 그렇게 스스로를 응원하며 다시 차에 올랐다.


조심조심 도로에 올라탔는데, 오르고 보니 내 뒤에 바로 차 두대가 붙었다. 분명히 없었는데, 언제 차가 온 거지? 저 차들이 빨리 온 건지 아니면 내가 보지 못한 건지 알 수 없지만, 후회가 되었다. 저 차들이 내 앞에 갔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내리막길 X커브길. 더욱 긴장하고 운전을 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시속 2-30킬로 안팎이란 소리다. 아, 미안해요. 보내주고 싶어도 보내줄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한 차량이 나를 앞질러 갔다. 혹시나 그다음 차량도 나를 앞지를까 긴장하며 뒤를 살폈는데 그 차는 나를 계속 뒤따랐다. 꽤나 커브길인 까닭에(게다가 한쪽은 거의 절벽이다.) 추월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운전 베테랑에게 시속 30킬로로 가는 초보운전을 견디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참 대단하다 싶었다. 고마움은 당연하고.


그리고 한참만에 그 커브길에서 내려와 직선 도로를 만났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깜빡이를 넣고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자 그 차가 부드럽게 나를 앞질러 갔다. 멀어져 가는 그 차를 보고 생각했다. 나도 나중에 저런 운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회사 주유소로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긴장했지만, 때마침 차가 한 대도 오지 않았다! 나는 안도하며 차를 들이밀었다. 나는 아직 회사에 운전 사실을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내가 면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 회사에 몇 안된다. 이상하게 운전한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운전을 잘 못해서 그런가? 나는 부디 내가 들어갔을 때 내가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직원 B가 나오길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인물, A가 나왔다.


내가 타는 차는 선팅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서 내부가 훤히 보이는 편이었다. 내리쬐는 미친 듯이 뜨거운 햇빛에 얼굴을 찌푸리던 A는 나를 발견하고 놀란 얼굴을 했다.


"뭐예요? 면허 있으셨어요?"

"무면허예요."


내 대답에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했다.


"장롱이었어요?"

"무면허라니까?"

"2종?"

"네. 아, 아니 3종!"

"뭐예요. 그게."


그러는 사이, 기름 배달을 나갔던 직원 B가 돌아왔다. 그는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에게 주말에 용기가 나면 혼자 운전을 해서 올 예정이라고 이미 말해준 상황이었다.


"왔네요?"

"왔죠."

"왔는데, 시원한 거라도 먹고 가요."

"아, 제가 사 왔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제가 아직 카페가 있는 시내까지는 운전을 못해서.."


내 말에 A와 B가 기가 막힌 얼굴로 웃었다. 나는 B가 내미는 음료수를 마시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된 내용은 내 운전과 관련된 거였는데, 나는 며칠 전 그에게 고속도로 연수를 부탁했었다. 내 운전 선생님인 엄마는 고속도로를 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B가 말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오늘 가볼까요?"

"괜찮겠어요? 저야 좋긴 한데... 오늘 주말인데 시간 괜찮으세요? 또 당직해서 힘들 텐데?"

"언젠가는 갈 거잖아요. 말 나온 김에 해야죠."


그의 말에 나는 A를 바라보았다.


"그럼 너도 같이 가자."

"네에?? 싫어요. 전 오래 살고 싶어요!"


A는 격하게 거절했다. 나는 최대한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쳇. 결국 나는 B와 약속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주차를 걱정하는 나에게 B는 로드뷰를 띄어주며 집 근처 주차할 곳을 알려 주었다.


"음. 근데 저 평행주차 안 해봤는데요?"

".... 그럼 공중 주차장 가세요. 좀 걸어."

"네."


그러는 사이, 주유소에 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주유를 위해 나가고, 나 역시 차에 올랐다. 그리고 왔던 길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떠날 때보다, 집으로 돌아올 때 마음이 더 편한 건 왜일까?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집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기에 긴장을 풀면 안 되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한층 편해진 느낌에 오는 길에는 80킬로까지 밟아볼 수 있었다. 오예!


그렇게 집 근처에 도착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집으로 향했다. 주말 아침이니까 사람들이 다 외출을 했을 것 같았다. 피서를 갔겠지! 그러니까 주차장이 비어 있겠지! 예상처럼 주차장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자리 바로 옆에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것도 몹시 큰 차. 다행인 것은 비싼 차나 신차가 아닌 것 같다는 것 정도? 그걸로 용기가 생겨서 나는 차를 움직였다. 그리고 주차도 성공했다!


그러나, 차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애써 노력하면 내릴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그러다간 저 차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냥 조수석으로 내려야 하나? 아니면 차를 앞으로 더 빼놔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결국 후진으로 차를 빼고 조수석 쪽으로 바짝 붙여 수정 주차를 하기로 했다.


삑삑 거리는 알람음에 맞춰 오른쪽 뒷 범퍼를 긁어먹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지만, 만약 긁어먹어도 남의 차를 긁어먹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심정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한 덕분에 옆 차와 추가로 2센티 정도의 거리를 더 획득할 수 있었다. 배에 힘을 주고 내릴 수 있었다. 하.


그렇게 나의 첫 혼운이 끝났다.


일단 사고가 없어서 너무 다행이다. 그리고 이제 혼자 운전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겨서 너무 좋다. 엄마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기쁘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것은 그저 앞으로 가고 세우는 것뿐. 상황을 판단하고, 차폭을 알아서 내가 갈 수 있는 길과 없는 길을 판단하는 건 아직도 요원하다.


아. 사고 없이 운전을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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