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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Oct 28. 2023

운전 100일 차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초보운전

    

그러니까 운전면허를 딴 이후 기준,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이라는 걸 켜본 날부터 100일이 지났다. 곰은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는데, 나는 100일간 사람, 아니 제대로 된 운전자가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멀었다. 나는 인간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도 이토록 어려운데, 도대체 어떻게 곰은 종족변화까지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거지?     


아주 처음, 그러니까 차를 한두 번 정도 탔을 때는 도리어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이게 뭐라고 지금껏 두려워했지? 밟으면 가고 밟으면 서는데?'라는 가벼운 심정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이 느낌이 차를 훔쳐 타는 아이들의 느낌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고, 내 옆에 탄 엄마가 공포에 질리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을 자각하면서 운전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처음 한 달은 운전대를 잡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기에 매일 아침 집 앞, 차로 5초 거리 주차장에서 주차연습을 시작했다. 차를 운전해서 움직일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으면 영원히 차에 오르지 않을 것 같으니, 초보운전의 가장 큰 벽이라는 주차연습이라도 하자는 심정이었다. 새벽에 한 시간씩 거의 매일 나가서 연습을 한 결과, 주차 마스터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주차는 여전히 어렵다. 대신 주차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줄었다. 실수를 해도, ‘그래! 난 항상 주차를 못했으니까 괜찮아!’ 정도의 마음?     


5초 거리 주차장까지 가는 것이 익숙해진 후로 집과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주차장으로 주차 연습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주차 연습을 할만한 주차장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지도 어플을 얼마나 봤는지 모른다. 처음엔 무조건 차가 많지 않은 곳이면서 내가 운전해서 갈만한 곳을, 그다음엔 평행주차나 전면주차를 연습해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원래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찾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재미는 있었지만, 정말 엄청난 시간을 거기에 쏟아부었다. 하...  

   

운전을 시작하고 60일 까지는 이 아침 운전 연습을 주 5회 이상 열심히 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데, 핑계를 대자면 요즘은 해가 너무 늦게 떠서.. 일단 밝아야 차선을 보고 주차를 하는데, 요즘은 해가 너무 늦게 뜨니 차선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장롱면허가 운전을 시작한다면 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길잖아.      


그렇게 혼자 연습하고, 직원분의 퇴근길 운전연수의 콤보가 이어졌다. 하루빨리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고 싶었던 나는 장거리 운전을 하면 확 는다는 말에 64일 차 큰 맘먹고 혼자 나름 장거리(초행길 왕복 100km 고속도로)를 도전했다.      


나는 차가 무섭다. 그 이유로 나는 항상 차가 없는 시간에, 차가 없는 곳을 찾아서 운전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 나는 해당 목적지로 꼭두새벽에 출발해 남들이 도착하는 시간에 빠져나오는 코스로 일정을 짰다. 가는 건 그럭저럭 갔는데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초보운전의 초행길. 게다가 일정도 무리한 일정이었다.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판단력 저하로 이어졌다.      


내 실수는 천만다행으로 인명이나 재산 상의 피해를 발생시키진 않았다. 다만 내가 사고를 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운전 시작 이후 유튜브에서 운전 관련 영상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그날 이후 한문철 티브이에 내가 나올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그 정도의 큰 실수였고, 그 사고는 내게 안전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제대로 심어주었다.


운전을 시작했지만 내 차가 없는 까닭에 나는 여전히 뚜벅이와 카풀 생활을 주로 하고 있다. 엄마가 차를 쓰지 않는 날에나, 보통 1-2주에 한번 정도, 차로 출퇴근을 했다. 그렇게 자차로 퇴근을 한 다음날이었을 것이다. 내게 운전을 가르쳐주었던 직원분이 퇴근길, 나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초보운전 티가 너무 나던데요?”

“초보운전인데 초보운전 티를 내야죠?”     


그는 속도가 너무 뒤죽박죽이라고 했다. 꾸준히 60이라도 밟으면 그냥 운전이 느리 사람이구나, 할 텐데. 40을 밟았다가 80을 밟았다가 정신이 없다고. 나보고 꾸준히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그 미션에 의해 70일 차에는 초행길 장거리(왕복 100킬로 국도)를 달리게 되었다. 정말 직진만 하면 되는 코스였는데 그게 어찌나 긴장되던지... 60킬로로 달리고 있는데 체감 속도는 100킬로가 넘었다. 게다가 도로 위에 대형 트럭은 얼마나 많은지... 대형 트럭을 피하려 속도를 높이면 무섭고. 느리게 가면 트럭들에 가려 앞이 안 보여 무섭고...


(여전히 미스터리인 것이, 트럭은 추월하려고 하면 정말 말로 안 되는 속도까지 밟아야 가능한데, 포기하고 느리게 가서 거리를 벌리려고 하면 왜 안 벌어지는 걸까?)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다리가 후들 후둘 떨리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서 에어컨에 손바닥을 말리며 운전을 해야 했다.      


덕분에 그날 이후, 속도를 비슷하게 유지하는 것이 아주 조금은 익숙해졌다. 물론 조금만 정신을 놓거나, 하루 이틀 쉬다가 운전을 하면 50킬로다.. 하.     


조금씩 용기가 생기자 내가 어디까지 달릴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속도가 아니고 거리가.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내 이동시간은 네비에서 말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이 걸렸다. 그리고 내 집중력도 자신이 없었기에 너무 먼 거리는 꺼리게 되었다. 그렇게 지도 어플을 얼마나 보았던가.. 그리고 편도 100킬로 거리의 적당한 곳을 발견했다. 게다가 그곳은 예전부터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출발하지는 못했다. 내게는 수만 가지 단점이 있지만, 그중 운전에 좋지 않은 단점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길눈이 어둡다는 점이다.      


나는 네비를 ‘듣는’것이 어렵다. 지금은 전방주시만으로도 벅차서 네비를 보지 않고 듣기만 하고 있다. 네비는 보통 0. 몇 초가 느리다. 내비가 오른쪽 도로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는 나는 오른쪽 도로와 왼쪽 도로 사이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짝 긴장을 하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우회전이나 좌회전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처음에는 여기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걸어 다닐 때도 항상 지도 어플을 켜고 다녔다. 차는 아무리 느려도 걷는 것보다 빠르다. 그러니 더 많이 헷갈릴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렇게 정신승리할 수 없는 영역도 있으니 바로 내가 엄청나게 우유부단하다는 점이다. 저 차를 추월할 것인가 아니면 따라갈 것인가, 이 차선에서 빠질 것인가 말 것인가, 끼어들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재빨리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는데, 그게 정말 어렵다. 일단 상황자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내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고, 어쩌지?- 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거고. 하.     


이 모든 단점이 빛을 발한 것이 바로 그날이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문득, 굳이 목적지까지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차는 앞으로 가고 있었다. 아, 어쩌지? 그러는 사이, 어느덧 어린이 보호구역에 들어와 있었다. 네비는 어린이보호구역이라고 속도를 줄이라고 하면서 우회전을 말하고 있었다. 바로 앞 작은 골목에서 우회전하라는 거야? 아니면 저기 보이는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라는 거야?      


나는 일단 계기판을 보면서 속도를 줄이며, 여기서 우회전인가 저기서 우회전인가를 판단하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 교차로까지 왔고, 에라 모르겠다, 직진해야지-하고 움직이는데 교차로 맞은편에 멈춰있던 차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저씨는 눈으로 “뭐지? 저 미친년은?”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아, 나 뭔가 저질렀구나!     


고개를 들자 그제야 보이는 빨간불... 어린이보호구역 신호위반 13만 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수는 얼마나 가벼운 실수던가? 내가 잘못 본 것이 신호가 아니라 사람이나 차량이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그래도 이런 실수를 한 나 자신이 어이없고, 돈이 너무 아까웠다. 다들 그러면서 운전이 느는 것이 아니겠냐면 나를 위로했지만 그래도 속이 쓰린 건 쓰린 거였다. 내가 얼마나 시야가 좁은 지 새삼 다시 깨달았다. 어떻게 신호를 못 볼 수가 있냐고!


그리고 100일 차. 아침에 주차연습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늘 다니던 길이었고, 늘 하던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교통량이 적은 곳이라 아침에는 거의 점멸등 혹은 신호등이 아예 꺼져 있다. 교차로 위에 차량이 나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회전을 할 때, 맞은편에서 좌회전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고, 아침시간에는 특히 교통량이 적어 대부분 신호등이 아예 꺼져 있거나 점멸등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 놀랍게도, 차량이 없을 때만 우회전을 했었다. 그래서 솔직히, 우회전이 어렵다=핸들링이 어렵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그 진짜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시골에 산 덕분에 거의 1차로 도로만 타고 있어서 차선 변경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내 고민은 도시에서도 운전을 하려면 차선 변경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는 점이었다. 차가 많은 곳을 운전하는 것도 자신이 없고.... 도시에 가서 운전 연수라도 받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생긴 것이다. 차선 변경이라니... 덧셈도 못하면서 곱셉을 생각하고 있었잖아?!    

 

새삼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생각한다. 도박에는 초심자의 운이라는 게 있다는데, 운전자에게도 그런 게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이런 실력으로도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운이 좋았나? 상대적으로 차가 적은 시골에서 운전한다는 점은 얼마나 큰 장점인가? 물론 도시에서 운전하는 것에 비해서 운전 실력이 좀 늦게 상승할 것 같지만.. 아마 도시였으면 나는 운전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을 테니까.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한동안 운전 관련 콘텐츠를 조금 덜(초반엔 진짜 하루에 n시간씩 미친 듯이 보았던 것 같다.) 보았는데, 다시 열심히 볼 것 같다. 4개월 차 후기에는 긍정적인 내용이 좀 더 많이 담겼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긴장 때문에 어깨가 정말 많이 아픈데(원래 아팠던 어깨가 더 극심하게 아픔), 덜 아프다는 이야기를 적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요즘에도 도로 가운데로 달리기는 잘 안된다.ㅜ(긴장하면 왼쪽으로 붙고, 그 소리를 너무 들어서 고치려고 하다 보니 오른쪽으로 붙고 ㅜ)


앞으로의 공부거리 :

- 커브길/ 우회전 제대로 하기. 운전 상식/규칙 습득/ 차선변경 / 도로 정 중앙으로 달리기(<아직도 이게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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