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강아지를 기를 순 없잖아.
“개 사료를 좀 사다 둬야겠다.”
“... 네?”
일을 하고 있었던 까닭에 차장님의 말씀은 뒤늦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방금, 개 사료라고 했지? 갑자기 개 사료? 사료를 판매하는 농협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무실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말은 앞으로 사료도 판매하자는 건가? 근데 그런 거라면 구매계랑 의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강아지가 생겼어.”
“... 네? 강아지요?”
“어. 동네 이장님이 우리 보고 키우라고 강아지 주고 갔거든.”
그의 말이 이해가 되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말이 이해되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농협 출입구에 목줄을 차고 있는 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개는 어떻게 케어하지? 누가 먹이를 주고? 누가 똥을 치우지? 그 냄새는 어떻게 하지? 개 알레르기라도 있는 고객이 오면 어떡하지? 개는 낯선 사람을 보고 짖는데, 우리는 매일 낯선 사람이 오는데? 개가 짖어서 고객이 놀라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혹시나 난폭해서 고객을 물기라도 하면 그건 더 큰일 아닌가? 생각할수록 좋은 점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 입에선 비명이 터졌다.
“우리가 개를 어떻게 키워요!”
내 강한 반말에 차장님은 좀 놀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는 더 속이 터졌다. 아니, 정말로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차장님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말했다.
“주고 갔는데 어떡해? 지금 계단 밑에 데려다 뒀으니까, 보고 와.”
아, 보고 오라고 할 때부터 예상했어야 하는데! 출입구에 두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 이게 진짜 무슨 상황이람. 나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차장님이 말씀하신 사무실 뒤쪽 계단 아래로 갔다. 거기에는 커다란 상자가 하나 있었고, 그 안에는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힘없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니, 귀엽긴 한데...
이 더운 날 여기 있는 강아지가 너무 불쌍했다. 물론 원래 주인인 이장님도 밖에서 길렀을 테니까 이 정도 더위는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기 집에서 더운 거랑 버려진 동네가 더운 거는 다른 느낌이니까. 아, 얘를 정말 어쩌면 좋냐.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쏭쏭이! 그 강아지는 이제 쏭쏭이가 알아서 키워!”
개를 주고 간 이장님이셨다. 나는 개를 이렇게 주고 가는 게 어디 있냐고, 얘를 어떻게 농협에서 키우냐고 소리쳤지만 이장님은 허허 웃으며 그대로 도망치듯 떠나가버렸다. 아아악!!
**
“아, 진짜 개 어떻게 할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기르냐고요!”
“H가 강아지 좋아해. H가 보면 데려갈 거야.”
내 씩씩거림을 보고 있던 직원이 말했다. 그 말에 내 마음은 조금 누그러졌다. 기를 사람이 있으면 뭐.... 나는 어서 H가 와서 자기가 데리고 간다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H가 강아지를 보며 기뻐할 걸 상상하면서, 동시에 H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해서 이 불편한 책임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H에게 배달 끝나면 사무실로 좀 들어오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러던 사이 점심시간이 되었다.
“우리 점심도 먹어야 하지만 강아지도 뭐 먹어야 하지 않아요? 뭐 주죠?”
하지만 내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를 기르자고 했던 차장님 역시 묵묵부답! 아니, 이래 놓고 개를 기르자고 한 거야? 역시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어! 나는 다시 한번 절대로 사무실에서 개를 기를 수 없다고 다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젖 뗀 지 2주 정도 되었다고 했지? 그럼 우유는 먹겠지!
그래서 마트로 가서 우유 작은 걸 하나 사서 강아지에게 갔다. 그 사이 몇 번 왔다 갔다 해서 그런지 강아지는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어이구... 겨우 이 정도에 꼬리를 흔들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냐. 나는 종이컵을 잘라 최대한 납작하게 만든 그릇에 우유를 비워 상자 안에 넣어주었다. 강아지는 슬쩍 눈치를 보더니, 혀를 우유에 가져갔다. 아, 다행히 먹는구나.
그러나 내 평화로운 마음은 얼마가지 못했다. 배달에서 돌아온 H는 강아지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긴 했지만 입양에는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전 안 돼요.”
“왜!”
“저 이런 개를 너무 많이 데려가서.. 아버지가 더 이상 못 케어하신데요.”
“아...”
“그냥 쏭쏭 님이 기르시는 건 어때요?”
“... 나?”
“네!”
“....”
솔직히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파트에서 어떻게 기르냐? 무엇보다 난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사람이야. 네가 보기엔 내가 다른 생명체를 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 그건 그렇죠.”
그렇게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강아지, 어쩌지?
**
그러나 점심시간 후, 나는 더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그건 바로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것! 그러니까 주말이라는 말이다! 주말! 직원들이 출근을 안 하는 주말! 토요일은 주유소 근무자가 챙긴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일요일이었다. 만 하루 이상을 저 강아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이 땡볕에 박스에 갇혀서 견뎌야 한다.
강아지 죽는다고!!
그러나 다급한 건 나뿐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다들 허허, 어쩌냐, 하고 뒷짐만 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강아지 주인 찾아주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째. 단체 카톡방을 활용한다.
가장 먼저 강아지 사진을 찍었다. 정성을 들여서 찍어야 했는데, 바쁘고 더워서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뭐, 잘 찍고 싶어도 똥손이라 불가능했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급하게 두장을 찍어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몇 개의 카톡방에 올린 결과, 한 명에게서 긍정적인 답이 왔다. 과거에 주변에 강아지를 찾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해보고 답을 준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미 H에게 믿음을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오로지 그 답변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2시가 넘은 상황이었다. 그에게 연락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어쩌면 답이 안 올 수도?), 그가 관심이 없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저 개는 저대로 방치되는 거였다. 그래서는 안되지!
그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나는 두 번째 방법에 도입했다.
두 번째. 고객들에게 물어본다.
“혹시, 강아지 기를 생각 없으세요?”
나는 손님들에게 강아지를 권유했다! 물론, 아무에게나 권유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강아지를 좋아할 것 같고, 강아지를 잘 기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에게 골라 질문을 던졌다. 평소 상품권유를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정말 별로인 사람,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에겐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강아지 입장도 고려해야 하니까! 그러나 아무리 권유해도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했다. 아....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H가 왔다.
“강아지 주인 찾아줬어요?”
“아직. 이러다가 쟤 죽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냥 네가 데리고 가라고!”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그러나 신경이 쓰이긴 했는지, 저대로 두면 강아지가 너무 더울 것 같다고 주유소로 잠시 대피를 시키겠다고 했다.
아..., 모르겠다.
잠시 후, 할머니 고객님 한 분이 오셨다. 그녀는 인상도 좋고, 실제 성격도 굉장히 좋은 분이셨다. 음. 내가 봤을 때는 강아지를 좋아하실 것 같은데.... 나는 거래를 하면서 강아지 기를 생각이 있는지 여쭤볼까 말까를 한 10번 정도 고민했다. 하지만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녀의 나이가 만 78세였기 때문이다. 본인의 몸도 건사하기 힘들 나이. 괜히 짐까지 던져주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갔다.
강아지는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했다.
나는 일반 주택에 사는 지인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방문했던 고객 중 의사를 묻지 않았던 이들을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강아지를 기르는 데 적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물어보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 생각이 잘못된 거였으면 어쩌지? 그 사람들이 나사람에게는 별로지만 강아지한테는 좋은 주인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뭘 그리 다 안다고 골라서 질문을 던졌을까? 그냥 다 물어볼걸. 그렇게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H에게 전화가 왔다.
“강아지 주인 찾았어요!”
... 뭐? 찾았다고? 깜짝 놀란 내가 되물었다. 어떻게? 내 격한 반응에 H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특유의 허세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다급한 나는 그런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진짜 어떻게 주인을 찾았는지, 누가 주인이 되었는지 털어놓으라고 재촉했다.
“x 할머니 알죠?”
“??.... 알지?”
방금 전 내가 강아지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그 할머니 성함이 x니까.... 설마....?
“그 할머니가 강아지 보시고 데려가셨어요!”
“헐, 사무실에 오셨을 때 여쭤볼까 하다가, 할머니 연세 많으셔서 말씀 안 드렸는데! 아니, 그런데 강아지를 어떻게 보신 거야? 주유소 간다는 말씀은 없으셨는데?”
“제가 강아지 마트 포스기 옆에 올려뒀거든요!"
"... 뭐?"
포스기 옆에 강아지를 둔 것을 뭐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그가 말을 이었다.
"할머니께서 계산하시면서 보시더니 너무 예쁘다고 하시면서 관심 보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데려가도 된다고 하니까, 강아지보고 ”우리 집에 갈래? “ 하고 물어보시더니 그대로 데려가셨어요!”
그렇게 강아지는 주인을 찾아서 떠났고, 우리는 평화롭게 주말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퇴근하는 길.
“몇 시간이라도 데리고 있어서 그런가, 가고 나니까 뭔가 허전하네요.”
H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상하게 좀 섭섭한 마음이었다. 고작 몇 시간, 정확히는 몇 분(..) 정도 얼굴을 본 것뿐인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은 왜 이렇게 쉬운 것인지... 그래도 잘 갔다. 더 오래 데리고 있었으면 정을 더 많이 주었을 거고 주인 찾아주기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강아지도 훨씬 더 고생했을 거고... 잘 된 거다. 정말.
부디 할머니와 강아지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를 기도해 본다.
추신.
그 뒤로 음모론이 하나 제기되었는데, 그것은 차장님이 정말로 사무실에서 개를 기를 생각으로(!) 이장님한테 개를 받아왔다는 거다! 그 증거로는
첫째, 예전부터 그 이장님이 친한 직원들에게 개를 기를 생각이 없냐고 묻고 다녔다는 점이다. 그도 농협에서 개를 기르지 못하는 것은 인지하고 있어서 직원들 개인에게 접근했던 건데, 굳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농협에 떠맡길 리 없다는 거.
두 번째는 차장님이 과거에도 타 사무실에 근무했을 때, 고양이를 사무실에서 기른 적이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내가 주말에 강아지 굶어서 죽을까 봐 얼른 주인을 구해야 한다고 말을 동동 굴릴 때 “하루 정도는 굶어도 괜찮다. 안 죽는다.”라고 한 점이다. 이미 주말에는 굶길 생각을 하고(!) 데려온 것이 아니냐고...
차장님의 성격을 생각하니 너무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정말로 까딱 잘못했으면, 사무실에서 개를 기를 뻔했다.... 소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