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은 젊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내 몸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소멸해 갈 것이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면 나는 어떤 것들을 떠올리고 느끼게 될까라는 사소한 생각 말이다.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면 나는 무언가 남기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예를 들면 글 한 편을 더 쓴다던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득 차있는 식당 한쪽 벽면에 내 이름을 작게 쓴다던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소에서 사진을 한 장 찍어서 남기는 사소한 행동들을 하곤 했다. 그렇게 무언가를 남기고 나면 마음속 어딘가 안심이 되었다.
운이 좋다면 100년 언저리, 그렇지 못하다면 그보다 짧은 것이 인생인데 나는 짧고 굵게 스쳐가는 삶보다 세상을 얕고 길게 살아가고 싶었다. 100년이란 긴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흘러 내 몸을 구성하던 것들이 썩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내가 한 행동들과 남긴 것들은 썩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미래를 살아갈 누군가가 과거에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나는 조금이라도 더 존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신념에서 시작한 생각은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잊힌다는 것은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할까. 그렇다면 나는 잊히는 게 두려운 사람이다. 우리는 남아있을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무언가이다. 어쩌면 나는 이 세상에 내가 있어야 하는 마땅한 이유를 증명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호랑이도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데, 이 세상에 남아있을 가치를 증명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나를 점점 옥죄여왔다.
나는 남고 싶은 사람이다. 한적한 도로 위에 누군가 무심코 버리고 간 쓰레기일지라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더라도, 계속해서 이 세상에 남아있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신체적 죽음이 아니다. 이 세상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야말로 진정한 죽음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어쩌면 큰 욕심일지도 모른다. 터무니없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니까. 하지만 그런 불확실성으로 오히려 내가 할 행동은 명확해졌다. 더 열심히 살아가고 진심으로 인생을 마주하는 것. 작은 후회가 들면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 사람들과 마주하고 그들의 머릿속에 좋은 기억이던 나쁜 기억이던 내 이름과 얼굴. 작은 목소리 하나까지 각인시키는 것. 결국, 그 모든 것은 인생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기 위한 것.
그렇게 이 세상에 무언가를 남겨놓으면, 나는 만족할까.
아닐 것이다. 무심코 버리고 간 길가의 쓰레기도, 시간이 지나면 썩기 마련이고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나라는 사람은 결국 잊히기 마련이다. 자연의 순리는 작은 빗방울 하나에도 완벽함이 깃들어 있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도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기 위한 행동의 근원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