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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필요성

마음의 반작용

by 강인한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날 나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했고, 저녁이 한참 지나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문서를 고치고 또 고쳤다. 일을 끝마치고 밖으로 나간 순간, 이미 깜깜해져 버린 하늘을 쳐다보자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나왔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그것들을 마음속 깊이 누르고 걸어가다 앞에 있는 빙판을 차마 보지 못하고 그만 미끄러져 넘어져버리고 말았다. 아픔을 느낄 새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나는 아마 그날 밤잠을 못 이뤘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최고의 결과를 얻었고, 나름 그에 다른 보상도 과할 정도로 받았다. 하지만 그해 겨울 내내 나는 폐렴으로 고생했고, 폐렴이 호전될 때쯤 독감이 찾아왔기에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일을 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면서 살아왔다. 누군가 뒤에서 앞으로만 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학교 입시가 인생의 전부였던 학창 시절, 시험이 다가오면 나는 독서실에 끝까지 남아있는 사소한 행동으로 미묘한 희열을 느끼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짓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긴 하지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었겠지.’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나를 존중하지 않고 내가 나를 학대했다. 결과는 좋았지만, 건강은 망가졌다.


이런 악순환에 대해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항상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까지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어 져요. 무리를 하면서 까지요.’라는 식으로 말을 했던 것 같다. 내 말을 조용히 듣던 상대는 하나의 행동을 나에게 추천해 주었다.


“주말 하루정도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는 건 어때요?”


이 행동이 효과가 있을까 내심 의심했지만, 그래도 한번 따라보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여유가 넘치는 하루를 살아봤던 적이 손에 꼽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은 주말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해가 질 때까지 잠을 잤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다 먹었다. 아쉬울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그렇게 하루를 끝마칠 무렵 내 마음속에서는 인지하지 못했던 한 거지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 푹 쉬었으니까 그래도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해볼까? 매일 이렇게 쉬는 것도 안 좋으니까…’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그거 저항이에요.”

“저항이요?”

“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변하지 않아요. 무언가 변하고 싶을 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굳은 결심으로 초반은 빠르게 변하는 듯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거기에 대한 저항력은 커져만 가요. 쉽게 말하자면 작용 반작용 같은 거죠. 그 저항을 무시하면 할수록 우리의 결심은 이룰 수가 없어요.”


단순히 쉬고 싶은 마음은 좋지 못한 생각인 줄 알았는데,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마음은 전혀 다르게 해석되었다. 나를 위한 변화는 저항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모든 변화에는 저항이 따른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면, 언제까지고 맛없는 음식을 계속 먹을 수는 없다. 가끔씩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또 힘을 내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변화에서 나오는 저항을 무시한다면 목표를 이루기가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저항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을 단순하게 나약한 생각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변화를 서두르다가 넘어진 그날처럼, 때론 멈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일지 모른다. 변화로 인한 저항이 찾아온다면 어느 정도 받아주고, 다시 또 힘을 내서 천천히 변화를 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지키며 변화해 나가는 안전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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