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르친 제자가 나를 삼키려 한다.”
이 문장은 단순한 스승의 절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겪는 본질적인 고독과 상실에 대한 선언처럼 들린다. <승부>는 바둑이라는 정적인 판 위에서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가장 역동적이고 격렬한 전투를 담아낸 영화다. 그리고 그 전투는, 외부의 누구도 아닌 ‘가장 가까운 존재’에 의해 촉발된다.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려 할 때, 스승은 도대체 무엇을 마주하게 되는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품고 있다.
조훈현과 이창호,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승부>는 천재와 천재 사이의 간극을 탐색하는 드문 영화다. 바둑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모든 감정은 무채색으로 표현된다. 절규는 없다. 고함도 없다. 대신, 하얀 돌과 검은 돌이 수놓은 반상 위에서 감정은 격렬히 요동친다. 그리고 영화는 이 과정을 집요할 만큼 세밀하게 따라간다.
조훈현은 시대를 통째로 움켜쥔 인물이었다. 그는 기술 이전에 기풍으로 상대를 압도했고, 바둑이라는 게임의 한계를 직관으로 넘어섰던 인물이다. 그런 그의 세계에, 아주 조용히, 아주 단단히 침투한 인물이 있다. 이창호다. 정적인 얼굴, 침묵의 기세, 흐트러짐 없는 자세. 이창호는 조훈현과는 정반대의 스타일로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그의 바둑은 싸우지 않으며, 싸움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무섭다.
스승의 입장에서, 제자의 등장은 기쁨이자 위협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가 어느 순간 자신을 무력화시키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것은 일종의 ‘존재의 부정’이다. <승부>는 바로 이 지점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이창호가 자신의 방식대로 두기 시작할 때, 조훈현은 괴로워한다. 그 바둑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 바둑이 자신을 위협한다는 사실로. 그리고 결국, 그 바둑이 자신을 이길 것이라는 예감으로.
영화는 이 관계를 피상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단순한 승부의 전복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의 깊은 심연으로 내려간다. 스승이 제자에게 밀렸을 때, 그가 마주하는 감정은 단순한 질투나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구축한 체계의 붕괴, 자신이 믿었던 시간의 배반이다. 이창호의 바둑은 조훈현의 그것과 너무도 달랐고,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같은 도장을 다니며, 같은 손에서 기술을 익혔건만, 이창호는 스승을 흉내 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바둑을 두었고, 그 바둑이 결국 조훈현을 넘어섰다.
여기서 우리는 ‘천재를 키운 천재의 외로움’이라는 이중 구조를 마주하게 된다. 조훈현은 말 그대로 시대를 창조한 인물이었지만, 그가 길러낸 다음 시대의 인물은 그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고립시킨다. 이창호가 강해질수록, 조훈현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쓸모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비정한 정서다.
그렇다고 해서 <승부>가 조훈현의 비극만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이창호의 고통도 조명한다. 누구보다 빠르게 정점을 향해 달려가야 했던 소년. 한 번도 넘지 못할 것 같았던 산을 넘었을 때, 그 산이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한 제자.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질문을 던진다. “정말 이렇게 넘어도 되는 걸까?”
제자에게 패한 스승이 겪는 감정은, 종종 아버지에게 밀린 아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 <승부>가 감동적인 이유는, 이 영화가 승부 그 자체보다도 관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넘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가까운 존재일 때, 우리는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다독이게 되는가. 영화는 이 모든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어떤 대답도 강요하지 않는다.
조훈현은 결국 다시 일어선다. 그것이 진짜 스승의 길이라는 듯이. 하지만 그 일어섬은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제자에게 져도, 스승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스승은 승부에서 패할 수 있지만, 스승이라는 존재는 패배할 수 없다. <승부>가 이 말의 무게를 보여주는 방식은 과장되지 않고, 그렇기에 더 설득력 있다.
이병헌의 연기는 압권이다. 단순히 조훈현을 따라 한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고통과 고독을 체화해낸다. 유아인 역시 이창호의 내면을 말 없이 표현한다. 절제된 표정과 눈빛, 그 침묵 속에 쌓인 응축된 감정이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배우들의 연기는 마치 한 판의 바둑처럼 정교하게 엇갈리며, 밀고 당기고, 결국 서로를 인정하게 만든다.
영화 속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던진 마지막 한 마디가 오래 남는다.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다. 다음이 있으니까." 이것은 단순한 스포츠맨십이 아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태도다. 관계에 대한 자세이며, 세대에 대한 사유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가르치고, 또 누군가에게 배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르침은 반드시 넘어섬이라는 형태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내가 가르친 제자가 나를 삼키려 한다.”
이 문장은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계승에 대한 진실이다. 그리고 <승부>는 이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진실을 담담하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보여준다.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서로를 완성시켜간다. 바둑은 결국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어떻게’ 이기고, ‘어떻게’ 지는가에 대한 싸움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더라도 품위 있게, 이기더라도 고개를 숙이며. 그것이 진짜 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