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어떤 세상을 꿈꾸세요?”
“음... 나는 세상이 정의로웠으면 좋겠어.”
“정의로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성실하게, 착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가치 있게 존중받는 세상, 하나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이 존중받아 그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법이 적용되고,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 아닐까?”
“어휴 선생님, 그런 세상이 어디 있어요?”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오겠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책으로 독서 멘토링을 하는 중에 학생이 질문했습니다. 저의 대답에 아이는 그런 세상의 존재를 직접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에 회의를 품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세상의 존재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 세상을 꿈꾸면서 많은 사람이 희생한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 역사를 접하면서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능 세대가 아닌 학력평가 세대입니다. 고등학교 때 이광수의 ‘무정’,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 학력평가에 자주 출제되는 작품을 달달 외우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학, 학과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진학하고 알았습니다. 그들이 대표적인 친일 작가였다는 것을 말이지요. 졸린 눈을 비비고,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진리라고 믿고, 간절히 공부했는데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지식을 축적했다고 믿었는데 지식도 뭣도 아니었습니다. 스무 살에 가치관 혼란으로 방황했습니다. 뒤늦은 사춘기가 왔는지 대학교 1학년 때 강의도 들어가지 않고,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많은 사건과 작가들을 접했습니다. 그전에는 항상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는데, 스무 살에는 강요된 답이 아닌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꿈꿀까요? 항상 대학 입시 때가 되면 여지없이 들려오는 뉴스들이 있습니다. SKY가 점령한 세상. 그런데 요즘은 의대가 모든 것을 잠식했습니다. 인문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이라는 말이 반영하듯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성과, 실용주의・물질주의 중시로 인문 교육을 등한시합니다. 그래서 이번 바칼로레아 논제를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로 정했습니다. 이번 바칼로레아 수업은 다른 때보다 더 뜨겁게 불타올랐습니다.
A팀: 저희는 두 명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즉 철학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철학은 힘이 없습니다. 지금은 AI가 일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고, 자율 주행 자동차가 등장하는 시대입니다.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향하는 시대입니다.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과거의 얘기입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옛날에나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핵이라는 무지막지한 무기가 있어서 한 방이면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하루가 다르게 과학 기술 발전으로 세상은 변해 갑니다. 이런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문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말에는 저희도 동의합니다. 중요하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과학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철학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B팀: 저희는 논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철학의 정의를 정리했습니다. 저희는 철학은 세계와 인간 삶의 근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데카르트가 말했듯이 철학은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한계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지한다면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할 것이고, 그러면 발전을 도모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이 삶의 근본이라고 저희가 정의한 근거는 철학은 어느 한 국가에 국한한 학문이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철학자에 의해 발전해 왔고, 철학을 근거로 수학, 미술, 의학 등의 여러 학문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철학이 우리 삶, 사회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근거로 저희는 두 명 모두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C팀: 저희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한 명의 친구는 철학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과학 기술 발전으로 세상은 점점 과학이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대학 입시에서도 수학, 과학 선택 과목 가산점을 주고, 취업에서도 이과 계열이 훨씬 유리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도 문과 계열보다 이과 계열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문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실은 추상적인 철학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철학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다른 한 명의 친구는 철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장에 앞서 ‘바꾼다’는 의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바꿈으로 전제했습니다. 세상은 분명 과학 기술 발전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윤리와 책임을 동반하지 않은 과학 기술 발전은 끔찍한 지옥과도 같을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하지 않은 과학 기술 발전은 아름다운 지구를 우리로부터 빼앗을 겁니다. 결국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철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철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이들의 논쟁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생기 있고, 논리적인 아이들의 사고를, 다른 친구의 주장을 존중하면서 생각을 나누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바칼로레아 수업을 쓸데없는 논쟁을 하는 수업이라고 치부할 것입니다. 항상 정해진 답, 눈에 보이는 정답만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인생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눈에 보이는 성과와 물질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한다면 알 수 없는 인생 앞에 아이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느낄 것입니다. 고민하고, 고뇌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사고는, 인생은 그만큼 더 넓어질 것입니다.
오늘은 아이들의 뜨거운 논쟁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은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