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나의 첫사랑이다. 나의 첫사랑은 짝사랑이었고, 대가 없이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한 적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짝사랑은 나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꿈이 되었다.
“○○아”
등굣길 학교 근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내 이름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 키도 크시고, 외적으로 멋진 국어 선생님은 당시 학생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셨다. 당연히 인기도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많으셨다. 매일 아침 교무실 선생님 자리는 꽃과 초콜릿, 편지 등으로 넘쳐났다. 수많은 편지 안에 내 편지도 있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알고 있으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답장 써 놓았으니까 오늘 선생님에게 오렴.”
다정하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나를 보고 있으셨다. 내 이름을 알고 있으시다는 것만도 감동인데 답장을 써 주셨다니...... 피곤한 등굣길이 설렘의 길이 되었다. 너무 놀라 대답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그 일 덕분에 나는 교사를 꿈꾸게 되었다. 꼭 국어 교사가 되어 선생님과 같은 교단에 서고 싶었다. 철부지 고등학생의 짝사랑은 그렇게 꿈이 되었고, 현실이 되었다.
18살의 어린 여학생은 이제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시간을 살아온 나는 철없던 짝사랑을 지나 몇 번의 스치는 사랑도 하고, 깊은 사랑도 하였으며,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했다. 뜨거웠던 사랑이 익숙함으로 변하는 경험도 하고, 맹목적이었던 짝사랑보다 더 맹목적이고, 숭고한 모성애도 경험하고 있다. ‘숭고한’이란 말보다 더 잘 사랑을 수식하는 말이 있을까?
탯줄도 떼지 않은 상태로 들판에 버려져 죽어가던 갓난아기를 어미 개가 체온을 나눠주어 목숨을 구한 사실이 공개돼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인도 차티스가르주 뭉갤 리에 위치한 한 마을 들판에서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것으로 보이는 갓난아기가 새끼 강아지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아기 울음을 들은 주민이 이상함을 감지했다가 이 모습을 발견하고는 경찰에 신고했다. 아기는 탯줄이 달려 있었던 상태였고,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갓난아기가 새끼 강아지들 사이에 있었던 것은 어미 개가 들판에서 죽어가던 갓난아기를 보고, 자신의 우리에 데려와 새끼들과 함께 돌본 것은 아닌지 추측된다고 한다.
https://www.animalplanet.co.kr/contents/?artNo=24312 인용
숭고한 사랑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대체 사랑이 무엇일까? 다음 백과사전에서 플라토릭 러브를 검색해 보았다.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 순수하고 강한 형태의 비성적(非性的)인 사랑을 말한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용어의 의미는 플라톤의 '대화' <향연> 편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은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즉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진정한 플라토닉 러브란 마음과 영혼을 고무시키고, 정신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영어 표현으로서 플라토닉 러브를 처음 사용한 것은 윌리엄 대버넌트가 지은 '플라토닉 러버스'(1636)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덕목과 진실의 근간에 있는 최선의 사랑에서 유래된 것이다. 짧은 기간 안에 플라토닉 러브는 영국 왕궁에서 특히 찰스 1세의 아내인 헨리에타 마리와 그 주변에서 유행하였다. 플라토닉 러브는 캐롤라인 시대의 몇몇 가면무도회의 테마로 유행하였으나 정치, 사회적 압력으로 쇠퇴했다.
하지만 우리는 숭고한 사랑만 접하지 않는다.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운 범죄를 접할 때가 많다.
수원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30대 생부 B 씨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시체유기 혐의로 먼저 구속기소 한 데 이어 이날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또,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위반(아동학대치사),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시체유기 혐의 등으로 20대 생모 A 씨를 구속기소 했다.
B 씨는 2018년 4월 ○○광역시 한 모텔에서 생후 88일 된 여아가 보챈다는 이유로 얼굴에 이불을 덮어 놓고 방치했는데 사망하자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A 씨는 B 씨의 범행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A 씨와 함께 숨진 아기의 시신을 전남 지역의 한 야산에 묻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출산 후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예방접종 및 영아에게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 등 방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1103134400061?input=1179m 인용
대체 인간은 얼마만큼 더 잔인할 수 있을까? 눈을 의심할 정도의 끔찍한 사건, 사고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인간의 성선설을 믿는 나로서도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의심을 품게 된다. 오늘 바칼로레아 수업은 성선설도 성악설도 아닌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 논제 앞에서 어떤 논리를 펼칠지 사뭇 기대된다.
A팀: 저희는 두 명 모두 사랑이 의무일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랑은 의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의 감정이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첫눈에 반한다고 말하지요. 네. 첫눈에 반할 수 있습니다. 첫눈에 반해 당연히 미친 듯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미친 듯이 사랑했듯, 실수도 사랑을 했듯 모든 사랑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길어야 3년 정도라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사랑하듯이 사랑의 유통기한 또한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적용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이별은 일방적인 통보일 때가 많습니다. 뜨거웠던 사랑이 혼자 식었다고 연인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의무여야 한다는 것은 꼭 연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얼마나 패륜적인 범죄가 많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사랑은 의무여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B팀: 저희는 우선 논제에 주목했습니다. 논제는 ‘사랑은 의무일 수 있는가?’입니다. 의무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사랑도 감정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기쁘고, 슬픈 감정 등은 어떤 현상을 보고 저절로 생기는 감정입니다. 기쁜 감정이, 슬픈 감정이 의무일 수 없습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의무와 책임을 배웁니다. 사회 규범, 예의 등도 태어나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생명체가 태어남과 동시에 저절로 알게 되는 것과 공동체 안에서 습득하는 것을 구분했습니다. 이렇게 구분해 보니 ‘사랑이 의무일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을 교육을 통해 습득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합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감정조차 습득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의미 없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두 명은 모두 사랑이 의무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C팀: 저희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우선 한 명은 사랑은 의무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현상에 대해 모든 사람이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보편적인 감정을 느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하루가 다르게 사회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 여러 이유로 적응하지 못하고 돌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보편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랑도 당연히 해야 할 감정, 즉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 각인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의무일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사랑은 의무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낄 때 ‘저 사람을 사랑해야지.’하고 작정하지 않습니다. 저절로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지요. 여기서 저절로, 본능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의무와 연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부모의 사랑이든 모든 사랑은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의무일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만큼 사랑의 역사도 깊을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가 사랑에 관한 수많은 명언을 쏟아냈다. 그래도 사랑은 아직도 미스터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의 논의도 이견(異見)이 많았다. 아이들의 논의를 들으면서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와 ‘의무여야' 하는가?을 고민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사랑이 의무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