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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Nov 13. 2023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감각은 신체 기관을 통하여 안팎의 자극을 느끼거나 알아차리는 것 또는 그런 능력을 말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오관(五官)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각(知覺)은 무엇인가? 지각은 감각 기관을 통하여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 또는 그 작용에 의하여 얻어지는 표상(表象)이다. 


  나는 팔에 큰 상처가 있다. 대학교 때 강의를 다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름 노을이 어스름하게 깔리는 무렵이었던 것 같다. 집 근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초록색 신호에 길을 건넜다. 그런데 걷다 보니 횡단보도 바닥에 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그 길에도 빨간 피가 선명하게 떨어져 있었다. ‘응? 뭐지?’하고 내 몸을 살피니 왼쪽 팔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동안 인지하지도 못했는데, 빨간 피를 보는 순간 갑자기 너무 아프면서 무서웠다. 피가 흐르는 팔뚝을 부여잡고 울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손수건으로 지혈해 주면서 도와주셨다. 

  “어휴, 가방이 다 긁혔어요.”

  어느 한 분이 옆면이 쭉 긁힌 내 가방을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방 안 지갑은 사라졌다. 주변 분들이 택시도 잡아 주시고, 택시비도 대신 내주셔서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다. 그러나 그때는 놀라고, 다쳤다는 핑계로 제대로 감사의 인사도 못했던 것 같다. 병원에 도착해서야 집에 전화했다. 응급실에 황급히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놀라셔서 동그래진 눈동자로 서둘러 나를 찾는 상기된 아빠의 얼굴. 응급실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꼭 안아주셨던 아빠. 스물한 살 아이는 아빠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을 했다. 그 상처가 아직도 선명하게 팔에 남아 있다.     


  감각, 지각 얘기를 하다 뜬금없이 뭔 얘긴가 싶으실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신기한 것이 칼로 팔이 긁힐 때 왜 난 인지하지 못했는 지이다. 분명 아팠을 텐데.... 살짝 긁힌 것이 아니라 꽤 많이 긁혀 그 상처가 아직도 깊게 남아 있는데... 그런데 칼로 긁힌 순간 나는 통증을 전혀 못 느끼고 있다 팔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나서야 아픔을 느꼈다. 그럼 감각은 무엇이란 말인가? 


  데카르트는 자신의 감각을 통해 받는 정보와 같은 감각적 지각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비자발적으로 자신에게 오는 것임을 인정했다. 이것으로부터 그는 이러한 지각이 자신의 마음 외부에 있는 무언가에 의해 야기된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는 그것을 외부 세계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해석했다. 데카르트는 자신을 속이지 않을 자비로운 신을 믿었기 때문에 비록 잠재적으로 기만적일 수 있지만, 그의 감각에 의해 전달되는 정보는 현실에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추론에 따르면, 신이 이러한 감각 지각이 외부 세계의 물질에 의해 발생한다고 믿는 성향을 갖도록 그를 창조했다면 실제로 외부 물질세계가 존재하는 경우임에 틀림없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감각 인식의 일관성과 질서를 끊임없이 속는 마음을 창조하지 않으시는 신의 자비와 일관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감각 경험이 현실의 신뢰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믿음을 갖게 되었다.


  요약하면 데카르트는 그의 감각 지각이 그의 마음 외부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 야기되기 때문에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을 속이지 않으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믿었고, 따라서 그의 감각이 제공하는 정보의 신뢰성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https://contemplate-world.tistory.com/5 인용


 이번 바칼로레아 수업 논제는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이다. ‘감각’이란 단어의 정의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논제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토의 방향이 천차만별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이 논의하기 앞서 조언을 하지 않고, 우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A팀: 저희는 두 명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우선 한 명은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유로는 똑같은 현상을, 똑같은 사물을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특징에 따라 사람마다 인식하는 것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색약이나 색맹이 있는 사람들은 색을 다르게 인식합니다. 감각을 믿을 수 있다고 한다면 하나의 색에 대해 사람마다 인지하는 색은 다를 것입니다. 그러면 사실이나 진실, 진리라는 말은 의미 없는 말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감각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대상, 듣는 대상, 느끼는 대상 등은 객관적인 존재이고 사실입니다. 그것을 자신의 이익 등에 맞게 사람이 인지해서 오류가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오가 태양의 흑점 이동 등 객관적인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지구가 태양 중심을 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뒷받침했지만, 과학의 발목을 붙잡는 그 당시 보수적인 기독교 세력에 의해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즉 그 당시 사람들이 망원경 등을 통해 관측한 자료를 믿었다면 천동설이 아니라 당연히 지동설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각을 믿을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B팀: 저희는 둘 다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여러분은 뷰티 인사이드 영화를 아시나요? 보신 분도 있겠지만, 모르시는 분을 위해 간략하게 줄거리를 얘기하겠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바뀌는 남자 주인공이 있습니다. 이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점점 빠져듭니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자신의 비밀을 얘기합니다. 남자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여자는 정말 자고 나면 변하는 남자를 보고 나서야 남자의 말을 믿습니다. 그러나 매일 변하는 남자를 보면서 여자는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헤어지지요. 그러나 남자와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여자는 다시 남자를 찾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둘의 해피엔딩을 암시하면서 끝납니다. 여기서 여자가 감각을 믿어 남자와 사귀었지만, 그 감각으로 인해 즉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힘들어하고 헤어집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진 것은 감각이 아니라 두 사람의 추억, 남자의 진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가 결국 믿은 건 감각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C팀: 저희는 처음 얘기했을 때는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얘기를 하면서 감각을 믿을 수 있다로 바뀌었습니다. 처음 저희가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얘기한 이유는 같은 상황이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실에 있으면 엄청 시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 시끄러움에 불편함을 느끼는 친구도 있지만, 전혀 인식조차 못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외모만 초점을 맞추어 사람을 볼 때 어떤 사람은 호감을 표하지만, 어떤 사람은 호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감각은 믿을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다 저희는 감각의 정의를 살펴보았습니다. 감각이 다섯 가지 감각 기관(感覺器官). 즉 눈, 귀, 코, 혀, 피부를 이른다면 인지, 지각과 구별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감각의 정의를 한정해서 논의를 하니 처음 얘기했던 것과 다르게 논의 방향이 흘러갔습니다. 앞에서 저희가 얘기했던 예들은 어떠한 현상에 대해 인간이 인지한 것이므로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학문적으로나 일상생활에서 진리나 진실, 사실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사실이라고 믿는 기준은 뭘까?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것, 경험으로 추론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결국 감각이 진리, 진실, 사실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감각을 믿을 수 있다고 최종 결론을 내었습니다. 




  이것이 바칼로레아 수업의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좀 더 현명한 사실에 접근하게 해주는 것. 

  평가만을, 진학만을 위한 수업이 아닌 오늘은 우리 아이들의 생각의 폭을 조금은 확장시키는 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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