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마디: 소통하는 고민은 생각의 폭도, 시야도 넓힌다.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에 대한 고민이 컸다. 계획적으로 아이를 출산한 것이 아니기에 부모로서 부담감과 책임감이 컸다. 여러 육아서를 보면서 아이에 대한 과도한 욕심만 커져갔고, 그럴수록 반성과 후회하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가 어떻게 컸으면 좋을까?’ 스스로 질문하니 답은 하나였다. 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가 높은 아이로 성장하는 것. 그때부터였다. 여러 학원을 보내는 대신 아들을 데리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여행을 다녔다. 주말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참 열심히 다녔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친정아버지와 남편의 투병으로 지친 삶의 모습을 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그리도 바쁘게 다녔나 보다. 아이들을 위해 다녔던 그 시간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덕분에 힘든 시간을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잘 버텼던 것 같다. 그것이 지금까지 여행을 가는 원동력이다.
이번 여행지는 변산이다. 아들 휴가에 맞춰서 계획한 여행이었는데 아들이 휴가를 나오지 못했다. 아들 없이 가는 숙박여행은 처음이기에 이번 여행은 그리 신나지 않았다. 출발부터 아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서해안 고속도로까지 정체구간이 노란 코스, 빨간 코스가 군데군데 보였다. 휘날리는 눈발을 벗 삼아 막히는 도로를 천천히 운전했다. 그래서인지 1시간 예상했던 화성휴게소까지 2시간 걸렸다. 화성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식사하고, 다시 출발했다. 뒷자리 가족들은 잠을 자는데 보조석의 조카는 나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나의 조금 울적한 기분을 눈치챘나 보다. 농담 섞인 장난이 이어지다 일상의 얘기로 이어졌다. 일상의 얘기가 오가다 조카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이모는 원래 교사가 꿈이었지요?”
“그렇지.”
“그래서 좋아요?”
“음... 처음엔 엄청 좋았어. 교사 외 다른 꿈은 없었으니까. 왜 이런 질문을 다 할까?”
“이번에 졸업해서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요.”
“대학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도 높고, 토익 점수도 좋잖아. 근데 왜?”
“음.... 요즘 취업이 어렵잖아요. 그러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렇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청춘은 고민과 두려움이 많다. 어리다고만 생각한 조카들이었는데 어느덧 취업을 앞둔 청춘이 되었다. 운전으로 깊은 얘기를 할 수 없었지만, 처음 접한 조카의 고민에 생각이 많아졌다. 조카와 수다를 떨다 보니 순식간에 변산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한 시간 휴식을 취한 후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여 ‘채석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강을 구경하고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구슬비가 내렸지만, 1.5㎞의 층암절벽과 어우러진 바다가 운치 있었다. 모래사장을 밟으면서 층암절벽 가까이 다가가 경치를 감상하고, 오늘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일렁이는 파도 때문인지 아름다운 층암절벽 때문인지 낭만적인 분위기에 우리는 취했다. 한껏 운무에 쌓인 경치를 감상한 후 우리는 숙성 돼지고깃집으로 향했다.
돼지고기: 가장 좋은 돼지고기는 연한 분홍빛이 돌고 살은 단단하며 결이 곱다. 또한 내부에 지방이 대리석 무늬로 고루 산재되어 있고 바깥층이 단단한 흰 지방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기의 약 30%는 요리용 신선육으로 소비된다. 나머지는 베이컨이나 햄으로 훈제하고, 소시지 제조에 쓰이거나 라드를 만들기도 한다. 돼지는 선모충병에 감염되기 쉬워서 기생충 사멸을 위해 조리할 때 밝은 회색이 되도록 완전히 익혀야 한다.
차 안에서 휴게소 간식으로 군것질하여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해안 산책길을 걷고, 모래사장을 걸었지만 아직 우리의 배는 든든한 상태였다. 그러나 삼겹살은 그 모든 것을 이겼다. 쌈을 싸고 잘 익은 고기와 콩나물, 양파를 곁들어 한 입 먹는 순간 배는 공복으로 리셋되었다. 묵은 김치를 구워 고기와 함께 싸 먹었다. 분명 가족 모두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둠 고기를 한 판 더 추가해서 먹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우리 가족은 오롯이 고기와 밥으로 배를 채웠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졌을까? 차 안에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다시 화두에 올랐다.
“졸업하고 공부하는 것이 부담되지?”
“... 제가 하고 싶은 분야를 준비해야 하는지, 아니면 합격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해야 하는지 고민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분야는 채용 인원도 적고, 공부할 과목도 많아 합격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그럴 바에는 합격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도전하는 것이 나을 것도 같고요.”
“어느 선택을 해도 후회는 분명할 거야. 이모도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후회할 때가 종종 있거든. 젊을 때 다른 관점으로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누군가는 배 부른 소리 한다고 하겠지만, 철석같이 믿은 것이 아닐 때도 있거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지만, 젊을 때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
“그렇겠지요? 몇 년 공부했는데 안 될까 봐 두렵거든요. 그때 다시 처음부터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네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60년 이상 남았다고 생각해 보면 5-6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고, 무의미한 시간은 더욱더 아닐 거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40년 한다고 생각해 봐. 끔찍하잖아.”
“서른 살 전에 합격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서른 넘어서도 괜찮겠지요?”
우리의 대화에 큰 조카도 끼어서 한 마디 했다.
“나는 졸업하면 스물일곱이야. 서른 초반에 취업하면 땡큐지.”
“지금 마음 같아서는 원하는 곳에 취업만 하면 걱정 없겠어요.”
“지금 시간이 정말 너희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날 때이니까 하고 싶은 일 잘 준비해서 도전해 봐. 고민되고 두렵겠지만 지금을 즐겨야 취업 후 30대 때에도 즐길 수 있고, 도전할 수 있어.”
2024년 2월에 졸업하는 조카와 2025년에 졸업하는 조카 모두 졸업 이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가 얼마나 두렵겠는가? 일상을 함께 공유한다고 생각했는데 조카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본 것이 처음이었다. 변산에서의 밤이 더욱 특별한 건 고민을 나누었기 때문이리라.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일지라도 함께 하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다.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변산의 밤. 오늘 숙성 돼지고기 한 판은 조카들의 도전을 응원하는 대견한 맛이었다.
좋은 음식은 좋은 대화로 끝이 난다.
-조프리 네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