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마디: 진정 맛있는 식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서러운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리라. 어린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각자 삶을 꾸려 독립하면 늙은 부부만 남는다. 황혼을 함께하는 부부는 행운이리라. 비록 육체는 늙어가지만, 일상을 공유할 배후자로 인해 마음은 천천히 늙어갈 테니.
아빠가 10년 투병하시는 동안 엄마의 생활은 아빠를 돌보시는 것이 전부였다. 일주일에 단 한 번 가요 교실을 가기 위한 3시간 외출이 엄마 개인에게 부여된 전부의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빠의 죽음 이후 엄마는 유독 외로워하셨다. 주말마다 우리가 엄마 집을 방문해도 평일 혼자만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셨다. 뵐 때마다 살이 빠지시고, 표정에서 슬픔이 묻어나셨다. 그래서 언니, 오빠가 사는 일산으로 이사 왔다. 자식들이 아무리 가까운 거리에서 살아도 엄마의 외로움을 달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가정이 있는 자식들이 엄마께 할 수 있는 것은 유한했다. 엄마가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함께 하는 것’은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자주 엄마를 찾아뵙고 긴 시간을 함께하려고 하지만, 헤어질 때 엄마의 표정은 항상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다행히 우리의 빈자리를 냥이가 채워준다. 냥이를 만난 엄마는 우리를 돌보셨던 그 옛날처럼 냥이를 돌보신다. 냥이 걱정에 숙박여행을 꺼려하실 정도이시니. 코로나로 여행을 가지 못한 여파였을까? 이번 변산 여행은 엄마도 흔쾌히 나서셨다.
2시간 걸려 도착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구슬구슬 내리는 날씨 탓인지 휴게소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옷깃을 여미고 따뜻한 공기가 나오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는데도 덜덜 떨렸다. 따뜻한 국물이 절실했다. 따뜻한 국물이 몸 안에 들어오니 그제야 썰렁한 기운이 사라졌다.
“어휴, 아침을 먹고 왔는데도 이 우동을 다 먹었어. 혼자 먹지 않고 이렇게 다 같이 먹으니 참 좋다.”
자식, 손자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엄마의 외로운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줬나 보다. 예약한 숙소는 생각보다 작았다. 방이 두 개인 룸으로 업그레이하려 하였으나,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조그만 소음에도 잠을 잘 못 주무시는 엄마가 걱정되었다.
“룸이 업그레이드가 안 된대요. 불편해서 어떡해요?”
“지금도 충분히 괜찮아. 오랜만에 너희랑 여행 왔는데 함께 자면 되지. 뭐가 문제야?”
“엄마는 일찍 주무시잖아요. 저희 때문에 잠을 설치실 것 같아서요.”
“맨날 혼자 있다 이렇게 오래 밖에 있었으니 푹 잠자겠지. 설령 잠을 못 자면 어떠냐? 너희랑 이렇게 같이 있는데.”
오늘은 엄마의 표정이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애틋하게 바라보시던 엄마의 눈빛이 오늘은 행복해하셨다. 저녁 식사 후 숙소로 돌아오는데 어둠이 내린 숙소 주변에 반짝이는 불빛이 화려했다. 화려한 불빛이 예쁘셨을까? 여러 각도로 엄마가 사진을 찍으셨다. 엄마의 소녀 같은 모습을 얼마 만에 보는 것일까? 엄마는 오늘 하루가 피곤하셨나 보다. 숙소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무셨다. 엄마의 평온한 숨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도 잠자리를 펼쳤다.
“아니 웬 냥이 소리냐? 냥이야, 왜 그래?”
곤하게 주무셨던 엄마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시면서 냥이를 찾으셨다. 함께하는 여행에서 함께하지 못하는 냥이가 걱정되셨나 보다. 평소 잠꼬대를 하지 않으신 엄마는 꿈이라는 것을 아시고 민망해하셨다. 사랑스러운 엄마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불편한 잠자리를 몇 번 뒤척인 것 같은데 아침이 밝았다. 아침 식사는 변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를 정했다. 백합죽, 백합 칼국수이다.
깔끔하고 개운한 감칠맛이 일품인 백합은 어떤 요리와도 궁합이 잘 맞는 진미식품으로 옛날 임금님 수라상에도 오른 조개이다. 뛰어난 맛을 지녀 전복에 버금가는 조개로, 생산량이 적은 만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갯벌에 묻혀 있지만 뻘 등 불순물을 계속 내뱉는 습성을 지녀 다른 조개류에 비해 뻘이나 모래 같은 이물질이 없는 게 특징이다. 속살은 배꽃처럼 아름답고 향기가 나면서 매우 부드러워 날로 먹어도 그 맛이 일품이다. 은박지에 싸서 구워 먹어도 좋다. 물에 넣어 삶은 우윳빛 국물 맛이 탁월해 기생 황진이도 울고 갈 정도였다고 한다.
백합죽은 탱글탱글한 식감과 고소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조갯살로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처음 한 입은 고소한 참기름 맛이 강하지만, 계속 먹을수록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조갯살에서 나오는 고소한 맛이 우리를 현혹했다. 죽을 싫어하는 조카들에게도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조금 덜어 주었다. 탐탁해하지 않으면서 첫 수저를 떠서 입에 넣던 조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맛있지? 더 줄까?”
“와 진짜 맛있네요? 이모가 맛있다고 해도 죽을 싫어해서 입맛에 안 맞을 줄 알았어요.”
“조금 더 주세요.”
조카들에게 죽을 더 덜어주니 양이 현저히 부족했다. 백합죽을 한 그릇 더 시켰다. 추가한 백합죽도 순식간에 비웠다. 백합죽을 다 먹고, 이번엔 백합 칼국수이다. 칼국수는 국물 맛이 정말 끝내줬다.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지는 신기한 맛이었다. 백합죽과 칼국수를 다 먹었는데도 수저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배가 엄청 부른데도 백합죽과 칼국수의 맛에 취해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엄마도 맛있게 식사하셨나 보다.
“어제도 맛있게 잘 먹었는데 오늘 아침도 배부르게 너무 잘 먹었어. 매일이 어제, 오늘 같으면 좋겠다. 하루가 후딱 지나가고, 이렇게 너희와 함께 있고.”
엄마의 환한 웃음에도 나는 온전히 환하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오늘 아침 백합죽이 엄마의 외로움을 채워주었지만, 내일 아침 엄마의 외로움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맛있는 음식보다 가족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알기에 엄마의 말씀이 아프다. 고소한 오늘 아침 백합죽은 아픔과 반성의 맛이었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 -히포크라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