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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Feb 05. 2024

굴보쌈으로 즐기는 어른의 맛

오늘의 한마디 : 삶의 축적이 다양한 맛을 발견하게 한다. 


  굴을 좋아하게 되는 나이는 몇 살부터일까? 날이 추워지는 11월부터 1월까지 굴 맛이 절정이어서 겨울이면 어김없이 굴을 찾게 된다. 굴국밥, 굴튀김, 굴전도 좋아하지만, 본연의 굴 맛을 느끼기에는 생굴만 한 것이 없다. 젓가락 사이에서도 느껴지는 탱글탱글한 식감. 입안에서 느껴지는 향긋한 굴 맛. 노로바이러스와 비브리오에 쉽게 오염되어 미국 공익과학센터가 가장 위험한 음식 4위에 선정했다고 하지만 12월만 되면 꼭 생굴을 먹는다. 그러나 20대 초반인 조카와 아들은 생굴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기는커녕 굴 향도 싫어한다. 그래서 제철 굴 맛을 보기 위해 굴보쌈으로 메뉴를 정했다. 군대에 간 아들은 함께하지 못하는 식사 자리를 친정어머니, 조카들과 함께 했다. 군대에 간 아들이 눈에 밟히는데도 굴보쌈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눈치 없이 가벼웠다. 

  “으윽 굴 향”

  “빨리 레몬을 굴에 뿌려요.”


  음식이 나오자 먼저 조카들이 한 마디씩 했다. 보쌈 향과 어우러진 굴 향이 더없이 식욕을 자극하는데 조카들은 이 맛있는 냄새가 싫다고 난리다. 레몬을 굴에 뿌렸더니 레몬향이 굴 향을 덮었다. 이 굴이 얼마나 맛있고, 영양가 많은데... 


굴에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다. 비타민A, B1, B2, B12, 철분, 동, 망간, 요오드, 인, 칼슘, 아연 등이 많다. 참굴의 경우 먹을 수 있는 부분 기준 100g 당 인이 115mg, 철분이 75mg이다. 굴의 당질의 대부분은 글리코겐인데, 이 성분은 소화 흡수가 잘 되어서 어린이나 노약자, 환자 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식품으로 권장된다.
옛날부터 빈혈과 간장병 후의 체력회복에 좋은 강장식품으로 여겨져 왔다. 한방에서는 땀을 흘리지 않게 하고 신경쇠약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기며, 뇌일혈과 불면증에 좋다고 한다. 굴껍데기는 간장 및 장질환과 두통에 가루 내어 달여 먹으면 특효가 있다고 한다.


   하긴 대학 전까지 나도 굴을 먹지 않았다. 지금 아이들처럼 굴 향조차 싫어했다. 어릴 때부터 먹성 좋고, 식탐 많아 못 먹는 음식이 없었던 나도 굴만은 냄새 맡는 것도 싫어했다. 굴에 얽힌 기억 하나. 명절날 큰집에 가면 생굴과 오징어 숙회가 하얀 접시에 함께 있었다. 언니, 오빠, 나에게 생굴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오징어 숙회도 찬밥 신세가 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고, 굴을 좋아하시는 아빠 쪽으로 접시를 옮겨주셨다.


  “이 맛있는 것을 왜 안 먹니? 딱 한 번만 먹어봐.” 


  아빠는 매번 옮겨진 접시에서 굴 한 개씩 집으셔서 우리에게 주셨다. 오빠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아빠가 주신 굴을 먹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린 나와 언니는 굴을 올린 밥과 함께 엄마께 굴을 넘겼다. 굴에서 나는 비린 향을 감당할 수 없었다. 냄새만으로도 이렇게 역겨운데 도저히 목구멍으로 굴을 넘길 엄두가 안 났다. 매년 반복되었던 이런 번거로움이 스무 살이 되니 해결되었다. 더 이상 굴 향이 비리고, 역겹지 않았다. 굴 향이 해결되니 굴 맛도 궁금했다. 언니는 여전히 굴 향도 싫어했지만, 식탐 많은 나는 스무 살이 넘어 도전했다. 처음 먹은 굴 맛은 신세계였다. 식욕을 자극하는 상큼함과 비린 맛이 아닌 신선한 바다의 깊은 맛이었다. 감탄사가 절로 날 정도로 맛있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굴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보쌈김치에 수육을 싸서 먹었다. 나는 굴과 수육을 보쌈김치에 싸서 먹었다. 두껍게 자른 수육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얇게 저민 수육이 아쉬웠다. 그래도 보쌈김치에 먹는 수육과 굴은 배가 불러도 멈출 수가 없었다. 굴은 반이 넘게 남았는데 고기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고기 더 먹자. 괜찮지?”

  “고기가 터무니없이 부족해요.”

  “오늘따라 더 맛있어요.”


  대자를 주문했는데도 고기가 부족했다. 평소 식사량이 적은 친정어머니께서도 오늘따라 맛있게 식사하셨다. 고기는 항상 먹을 때마다 부족한 신기한 음식이다. 추가한 고기까지 싹 다 비우니 배가 볼록했다. 볼록한 배를 두드리면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처음처럼 가볍지 않았다. 위장이 음식으로 가득해서만은 아니다. 아들 없이 맛있게 먹은 식사가 미안해서였다. 그래서였나보다. 저녁 아들과의 통화에서 자꾸 약속을 하게 된다. 


  “오늘 저녁 식사 맛있게 했어?”

  “네.”

  “뭐 먹었어?”

  “음. 미역국에 제육이요. 그런데 엄마, 신기하게 오늘 굴 미역국이 나왔는데 맛있는 거 있죠? 저 굴 싫어하잖아요. 근데 맛있었어요.”

  “정말? 굴이 맛있었다고? 그럼 너 휴가 나오면 우리 굴 먹으러 가자. 네가 좋아하는 고기도 먹고.” 

  “그래요.” 


  군대 가기 전에 고기 미역국만 먹었던 아들이었다. 굴은 굴전이나 굴튀김 하나 둘 정도만 먹고, 생굴은 극도로 싫어했던 아들이었다. 굴의 향을 오직 비리다고만 느끼는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굴 미역국을 맛있게 먹었단다. 이제 굴의 맛을 알 정도로 어른이 된 것인가? 스무 살이 넘어 지금 군 복무하는 아들이 당연히 성인이고, 어른인데도 나는 아직 품 안의 아이로만 생각하나 보다. 아니면 이미 부모 품을 떠난 자식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굴보쌈으로 시작한 맛있는 수다가 오늘은 어른의 입맛으로 종착지를 삼나 보다. 오늘의 굴맛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맛이다.  


잘 식사하지 않으면 잘 생각하고, 사랑하고,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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