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마디: 60가지 음식에는 60가지의 즐거운 이야기가 있다.
한상 거하게 차려진 밥상을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면 혹시 음식을 잘하는 사람으로 오해하시겠지만, 음식을 참 못하는 사람이다.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물이 형편없다. 슬프게도 가족들은 제가 요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TV 프로그램을 보고 음식을 따라 하겠다고 하면 얼른 외식을 권한다. 이런 것들이 핑계가 되었을까? 직접 음식을 하는 수고를 가차 없이 내팽개치고, 맛집을 찾아다닌 것이. 예능을 보다 인천 60첩 밥상 횟집이 눈에 들어왔다.
황복을 비롯하여 복어 종류는 예부터 한, 중, 일 미식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왔다. 여러 가지 연유로 현재 중국에서 회를 먹지 않지만 황복이 올라오는 계절이면 그 맛에 빠져 관직도 마다했다는 소동파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 역시 황복의 미식 역사는 길고도 깊다. 복어 육은 다른 어종보다 지방질 함량이 적고 미네랄이 풍부하다. 담백한 맛을 내며 여기에 쇠고기 중간 정도의 쫄깃함은 씹을수록 감칠맛을 증가시킨다. ‘나비가 날아가듯’ 얇게 써는 이유는 육질 때문으로 복어가 비싸기 때문에 얇게 써는 것은 아니다. 자연산의 경우 눈을 감고 씹으면 솔향을 느낄 수 있다. -식객 중-
허영만 작가님처럼 미식가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입이 그리 고급스러운 편이 아니어서 복어 회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어 튀김을 좋아한다. 복어 회만이 아니라 다른 회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가 맛있는 집을 찾기보다 곁들이는 음식이 많이 나오는 식당을 찾는다. 저의 입맛 수준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짐작하실 것이다. 60첩 밥상 횟집이 한눈에 들어온 것은 ‘회’ 때문이 아닌 60첩 밥상이라는 것도 눈치채셨을 것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마련이다. 이곳이 연안부두 근처라는 것을 알았다. 연안부두를 가본 적이 없다. 저에게 연안부두는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에서 추격전이 벌어진 곳이라는 것이 사전 지식의 전부이다. 연안부두는 어떤 곳일까?
대청도・연평도・덕적도・이작도・백령도 등 서해안 일원의 100여 개 섬 지역과 제주도 등을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여객선이 드나드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과 중국의 여러 도시로 출항하는 여객선을 탈 수 있는 국제여객터미널 일대를 연안부두라 한다. 인천의 관문인 연안부두는 1960년대 후반에 급증하는 무역량을 소화하기 위해 인천 내항 개발을 하면서 나온 흙으로 바다를 매립하여 조성된 곳이다.
연안부두에는 여객터미널뿐 아니라 해양 광장・종합어시장・횟집 거리・해수탕 거리・유람선 선착장・남항부두 등이 모여 있어 수도권 시민들의 주말 나들이 코스가 되고 있다. 유람선 선착장 바로 앞에 조성된 해양 광장은 약 9,900㎡의 나무 바닥 광장과 야외무대 돌고래 조형물, 음악 분수대, 체력단련 시설로 꾸며져 있다. 연안 종합 어시장은 싱싱한 생과 젓갈류를 구입하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면적 약 9,200㎡ 규모에 500여 점포가 입점해 있으며, 횟집 거리에는 인천수협회 백화점, 연안회 플라자 등으로 대규모 횟집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그럼, 이제 연안부두로 떠나 볼까? 점심 식사에 맞춰 여유롭게 출발했다. 맛있는 음식 때문인지, 가족과 함께해서인지 설렘이 앞섰다. 출발과 동시에 차 안은 시끌벅적하고, 차 안의 수다는 현재를 거슬러 과거로 우리를 이끌었다. 오전의 따가운 햇살은 오늘 추억에 덤이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언제나 좋기만 한 것은 없다. 1시간 거리가 교통체증으로 2시간으로 늘어났다. 사고는 아니고 평일 터널 공사로 인해 차가 엄청나게 막히었다. 출발의 설렘은 스멀스멀 불평과 불만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 대학 졸업을 앞둔 성인이어서 그런가 차 안 분위기를 바로 즐거운 수다로 바꿨다. 그 덕분일까? 다행히 2시간 넘는 운전이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바다가 보였다.
바다 근처 항구에 큰 배와 드넓은 주차장에 수없이 많은 새 차. 연안부두였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풍경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자동차 밖 풍경을 감상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떠나는 길이 즐거운 것은 이런 낯선 풍경이 주는 행복감도 한몫한다. 항상 보는 풍경이 아닌 낯선 풍경이 지루한 일상에 생동감을 줬다. 교통체증으로 살짝 힘든 고비도 있었지만, 다행히 출발했을 때의 즐거운 기분 그대로 식당에 도착했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우리의 배꼽시계는 배고픔을 호소했지만, 음식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빠르게 사진을 찍고 정말 가족 모두 허겁지겁 음식을 탐했다. 꿈틀거리는 낙지탕탕이를 한입에 넣자 참기름에 목욕한 탱글탱글한 낙지의 식감이 배고픔을 더욱 자극했다. 신선함이 물씬 풍기는 가리비와 조개, 꼬막을 발라 먹다 보니 따뜻한 조개탕이 또 눈에 들어왔다. 감칠맛이란 이런 것이라는 존재감을 뽐내는 조개탕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다 성에 안 차 그릇째 국물을 들이켰다. 쫄깃쫄깃한 소라의 맛에 빠지고, 고소한 새우의 맛에 빠지면서 정신없이 허기를 달래다 보니 한 상 가득하게 차려진 음식이 금세 동났다. 빈 그릇이 많아지는 찰나 드디어 메인인 모둠회와 랍스터가 나오고, 새우튀김, 생선찜, 낙지호롱이, 탕수육, 메밀전병 등으로 다시 상 꽉 찼다.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약간 물컹한 식감 때문인데, 물컹한 식감이 전혀 없고 쫄깃쫄깃함이 가득했다. 마늘과 참기름 양념이 추가된 쌈장에 회를 2-3개 넣고 쌈을 싸고 입안에 넣으니 여태껏 먹었던 음식의 맛을 뛰어넘는 광어회의 풍미가 입안을 사로잡았다. 회의 참맛을 알게 된 날이었다. 쫄깃함의 정수를 보여주는 지느러미. 그 지느러미 맛이 지금도 생각나 침이 고였다. 왜 사람들이 회를 좋아하는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회 접시가 서서히 비어져 갈 때 우리는 먹기 좋게 손질된 랍스터를 공격했다. 버터 없이 랍스터를 쪘는데도 신선함 때문인지 버터를 머금은 것 같은 고소함에 감탄이 절로 났다. 촉촉함과 고소함을 머금은 랍스터를 서로 사이좋게 나눠 먹고 집게살을 마지막으로 먹었다. 촉촉함과 고소함이 백미였던 랍스터가 집게살에서는 탱탱함이 그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두 번째 상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가는데 2시간 넘게 걸렸는데 먹는 시간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매운탕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식사했다. 이렇게 포만감이 가득 드는 느낌과 그 포만감을 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편안하게 일상 얘기를 공유하는 이 시간에 ‘행복’을 느낀다. 평소 먹었던 회가 이곳에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신선함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곳에서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이 음식들이 핸드폰 캘러리에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에도 맛있는 행복으로 추억되겠지. 오늘 60첩 밥상의 맛은 교통체증도 막지 못한 힐링의 맛이었다.
잘 먹는 기술은 결코 하찮은 기술이 아니며, 그로 인한 기쁨은 작은 기쁨이 아니다. -미셀 드 몽테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