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랏말싸미 Jan 22. 2024

애피타이저

프롤로그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절대 미식가(美食家)는 아니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을 느낀다. 버지니아 울프의 ‘사람은 식사를 잘하지 않으면 생각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사랑도 잘할 수 없고 잠도 잘 이루지 못한다.’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음식은 삶의 원동력이자 사랑이다. 음식은 우리의 허기짐을 채워준다. 음식이 육체적 허기짐만이 아니라 정신적 허기짐도 채워준다. 혼자 여유롭게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도 물론 행복하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음식 만드는 솜씨가 없기에 그 행복한 순간을 위해 유명한 맛집을 찾아가고, 여행지를 고를 때에도 음식을 우선순위로 고려한다. 이런 음식에 대한 욕망은 어린 시절부터 유명했다.


  삼 남매 중 막내인 저는 오빠와 언니가 있다. 두 살 많은 언니는 어릴 때부터 마르고 약해서 항상 보호의 대상이었다. 그런 언니는 저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철없고 욕심 많았던 어린아이였지만 몸이 약하고 예쁜 언니를 장난꾸러기 아이들로부터 보호했다. 남자아이들이 언니를 짓궂게 놀리거나 괴롭히면 여지없이 그 아이들과 씩씩거리면서 몸싸움했다. 저보다 한두 살 많은 남자아이와 싸워 이길 정도로 저는 어릴 때 덩치가 좋았다. 그래서 언니를 괴롭히는 아이들로부터 언니를 지킬 수 있었다. 이렇듯 언니는 저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네 살 많은 오빠는 상황이 다르다. 엄마가 오빠에게 밥을 더 많이 주고, 맛있는 것을 더 줬기에 항상 오빠를 경계했다. 엄마가 밥상을 차리시고, 우리가 밥상에 둘러앉으면 저는 가장 먼저 오빠 밥을 봤다. 오빠 밥이 저보다 많다 싶으면 여지없이 떼를 썼다.


  “저도 밥을 더 달라고요.”

  “어휴, 쪼그만 게 욕심만 많아서. 지금 밥 다 먹으면 더 줄게.”

  “우걱우걱”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하겠다.”

  “다 먹었으니까 밥 더 주세요.”


  오빠보다 밥을 더 많이 먹은 저는 오빠보다도 덩치가 좋았다. 종갓집 맏며느리이신 외할머니께서는 본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시고, 딸만 네 명 낳으셔서인지 항상 아들에 대한 열망이 있으셨다. 그래서 국민학교 방학 때 외갓집에 놀러 가면 항상 아쉬운 눈으로 저를 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어휴, 저것이 고추를 달고 나왔어야 하는데...”


  이렇듯 어릴 때부터 먹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식탐은 좀 줄었지만,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망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왜 그리 먹는 꿈을 자주 꾸는지... 아직도 꿈에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행복하게 먹는 꿈을 꾼다. 그런 꿈을 꾼 날 아침은 왜 또 그리 행복한지.

  누군가는 식탐과 성욕이 연관성이 있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식탐이 애정결핍에서 오는 증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어릴 때는 단지 먹는 것을 좋아했다면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러기에 식탐이 애정에 대한 갈구일 수도 있다. 애정을 갈구하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겠지. 그럼, 언제 행복할까? 따뜻한 휴일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 한 잔에, 여행지에서 거하게 차려진 음식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에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순간을 더듬다 보니 그 어딘가에는 항상 맛있는 음식이 있다. 그 음식에는 가족들의 화목함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뒤늦은 후회가 있다. 그리고 애틋한 그리움이, 어리석음이, 지난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 먹었던 김치랑 전어 맛이 잊히지 않아요. 잔갈치를 반으로 갈라 바싹 말린 것을 양파 썰어 넣고 쌀뜨물 부어 자작자작하게 조려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지요. 근데 갈치회는 여수에 살면서도 못 먹어봤어요. 뱃사람들은 배 위에서 갈치를 갓 잡아 올려 막걸리에 적셔 먹곤 했지요. 그래야 꼬들쏘들 해지거든요.
  “내가 뭐든 잘 먹고 맛있게 먹는 편인데 개고기는 안 먹어요. 죽을래 먹을래 선택하라 하면 먹겠지만 키우던 개 생각이 나서요. 닭고기도 별로 안 좋아해서 자주 먹지 않죠. 한때는 동탯국이랑 콩자반만 보면 고개를 돌렸어요. 난 하숙 생활을 오래 했는데, 그 하숙집 밥상에 제일 많이 오르는 게 동탯국이랑 콩자반이었거든요. 인스턴트 음식도 안 먹어요. 혐오하지요. 시간에 쫓겨 라면 같은 걸로 끼니를 때우게 되면 막 짜증이 납니다. 된장찌개 한 그릇이라도 맛과 향을 음미하며 여유롭게 먹고 싶은데 그야말로 먹는 게 아니라 ‘때우는’ 게 되는 거니까요.”  -허영만 작가, ‘식객’ 중


  이번 브런치북에서는 이런 지난날 우리의 삶을, 그리운 사람이 담겨있는 음식과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안의 행복한 순간을 담고 싶다. 그러나 우리 삶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다. 우리 삶에는 슬픔도, 후회도, 풀리지 않은 고민도 항상 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과 순간이 나쁘기만 한 건 결코 아니다. 이런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고,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을 만들기 때문이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가장 행복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정성이 가득 담긴 한 그릇의 음식은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된다. 맛있는 식사와 사람들을 통해 당신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시길 바란다. 맛있는 수다로 에너지를 충전하시고, 추억 여행을 떠나 보시기를. 

그럼, 지금부터 함께 식사해 보실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