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의 법칙

-고민의 시작2-

by 휘리

재혁이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착하여 연년생으로 남매를 키우는 사촌 언니의 힘듦을 덜어준 기특한 아이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잘하고 혼자 놀기도 잘했던 재혁이는 수학, 과학 분야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뛰어난 학업 능력을 보여 4~5학년 때부터는 지역교육청 영재 기관에 선발되어 영재 교육을 받았다.

중학교 입학 때 재혁이가 전교 1등을 하자 재혁이 부모인 사촌 언니네 내외는 아이의 뛰어난 학업 성적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과학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재혁이 교육에 다방면으로 투자하면서 열혈 학부모가 된 것이다. 재혁이가 100점을 받지 못하면 호되게 혼내는 등 칭찬보다 채찍질을 가하는 날이 많았고, 채찍질의 강도도 나날이 강해졌다. 그렇지만 재혁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학원도 잘 다녔기 때문에 섣부르게 사촌 언니에게 조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재혁이는 중학생 2학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나야, 재혁이가 집을 나갔어.”

사촌 언니에게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 왔다.

너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어스름한 저녁에 부리나케 사촌 언니네로 향했다. 언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경찰에 신고하고 있었다. 경찰은 아이가 스스로 가출한 것이기 때문에 신고 접수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응하여 언니의 걱정이 더해진 상황이었다.

중간고사를 망친 재혁이가 혼날 것이 두려워 집을 나갔단다. 자기 물건과 돈 등을 챙겨 나갔다는 말에 내 머릿속도 하얘졌다.

우선 언니와 재혁이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재혁이의 가출을 대놓고 얘기하기 조심스러워 에둘러 재혁이와의 통화만 묻었다. 여러 명에게 통화하던 중 한 명의 친구가 마음에 걸렸다. 부모가 여행을 가서 혼자 있다는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는 재혁의 가출 소식을 전했다.

“수완아, 오늘 재혁이 학교에서 이상한 점 없었어? 재혁이가 집을 나갔는데 핸드폰도 꺼져 있고 너무 걱정돼서.”

“... 저에게 특별하게 말한 거 없는데요....”

“너무 미안한데 혹시 너에게 전화 오면 아줌마에게 연락해 줄래?”

“... 네...”

재혁이 가출 소식에도 당황하지 않는 아이에게 뭔가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물에 빠진 놈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수완이네 집을 물었다.

“수완아, 너희 집 무지개 아파트지? 정말 미안한데 몇 동 몇 호인지 아줌마에게 얘기해 줄 수 있어?”

“... 왜요?...”

“재혁이가 갈 만한 곳이 없어서 혹시 너희 집으로 가지 않을까 해서. 너희 집 근처를 찾아보려고.”

“... 205동 1002호예요.”

“수완아, 고마워. 재혁이에게 연락 오면 꼭 좀 아줌마에게 전화 줘.”

전화를 끊자마자 언니와 나는 수완이네 집으로 향했다.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밖의 풍경이 마음을 더욱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205동 근처 놀이터를 둘러보지만 재혁이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205동 10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서 내렸다. 복도식 아파트인 무지개 아파트는 우리가 이용한 엘리베이터 반대편에도 한 개의 엘리베이터가 더 있었다. 언니는 그대로 수완이네 쪽 엘리베이터에 있고, 나는 반대편 엘리베이터로 갔다.

엘리베이터는 15층에 머물러 있었다. 근데 위층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무서움보다 재혁이에 대한 걱정으로 무작정 위층으로 올라갔다. 11층에 올라가자 모퉁이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서서히 다가가자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재혁이가 있었다.

“재혁아,”

재혁이는 나를 보자 도망가려고 했다.

나는 얼른 재혁이의 팔을 잡고 아이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다 괜찮으니까 도망가지 않아도 돼.”

“......”

재혁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사촌 언니가 뛰어와서 재혁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렇게 재혁이를 찾았다.


집에 온 재혁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사촌 언니도 아무 말이 없었다.

“재혁아, 왜 집을 나갔어? 무슨 일이야? 네가 얘기를 해야 해결할 수 있지.”

조심스럽게 재혁이에게 말을 건넸다.

“.... 맞기 무서워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시험 못 봐서.... 아빠가 말한 평균에 못 미쳐서...”

사촌 언니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럼, 말을 해야지. 집을 나가면 어떻게? 너를 위해서 공부하라는 거지. 네가 공부하지 않으니까 아빠가 매를 드는 거 아냐?”

“재희는 80점만 받아도 칭찬하면서 나는 95점을 받아도 혼나잖아.”

조용히 있던 재혁이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야 네가 잘하니까 그렇지. 100점 받을 수 있는 애가 실수하니까”

“그래서 후회해. 나도 공부를 잘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90점 받으라고 해서 90점 받으면 100점 받지 않았다고 혼나고, 문제집 하나만 풀라고 해서 열심히 문제집 풀면 2개 3개 풀라고 하고”

재혁이의 말에 더 이상 사촌 언니도 말을 하지 못했다.


흥분한 재혁이를 데리고 재혁이 방으로 들어왔다.

“시험 못 봤다고 맞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너 찾아다니면서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네 마음 알았으니까 엄마도 아빠도 안 그럴 거야.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알았지?”

재혁이 방을 나온 나는 사촌 언니와 얘기를 했다.

사촌 언니는 재혁이를 찾아다니면서 재혁이에게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그 마음 그대로 재혁이가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재혁이의 방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중학교 입학하면서 거칠어진 말과 행동을 보였던 재혁이는 점점 게임에 빠져들면서 더욱 거친 말과 행동을 했다. 그럴수록 사촌 언니와 끝없이 부딪혔다. 그렇지만 가출 전까지 자기의 속마음을 전혀 얘기하지 않던 재혁이는 사촌 언니와 많이 싸웠지만, 다행히도 자신의 감정을,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얘기했다.


가끔 재혁이를 볼 때마다 재혁이의 눈빛과 얼굴이 사납게 흔들렸다. 재혁이의 방황이 유년 시절, 초등학교 시절 참았던 자신의 감정을 뒤늦게 다 뿜어내는 것이라고 사촌 언니는 애써 위안을 하면서 재혁이의 방황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재혁이의 방황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멈추었다.

군대까지 무사히 잘 다녀온 재혁이의 지금 얼굴은 유년 시절 순했던 재혁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재혁이의 방황을 보면서 사촌 언니 내외는 부모로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만, 그 힘든 시간을 잘 참아냈기에 지금 재혁이의 평온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 시간이 없었으면 재혁이도 사촌 언니 내외도 더 좋았겠지만, 그 시간 덕분에 더 큰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방황의 시간을 다 보낸 재혁이는 간간이 그때 일을 스스로 얘기한다.

“유치원 때는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엄마, 아빠가 하라는 것을 열심히 했어. 초등학교 때도 그랬지. 내가 상장을 타오면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하는 거야. 그럴 때 엄마, 아빠가 맛있는 것 사줘서 동생이랑 다 같이 먹는 것이 너무 좋아서 공부도 열심히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엄마, 아빠가 좋아하지 않고, 자꾸 화를 냈어. 동생은 나보다 공부를 훨씬 못했는데도 칭찬하고, 나는 한 개만 틀려도 혼나는 거야. 속으로 엄청 부당하고 생각했는데 엄마, 아빠가 무서워서 말을 못 했어. 그리고 중학교 때 다녔던 영재 수학 학원도 개 양아치 같았어. 40개~50개 문제를 빨리 잘 풀면 먼저 보내준다고 해서 쉬지도 않고 열심히 풀었거든. 근데 빨리 보내주지 않고 나머지 시간 동안 문제를 더 주고 풀라고 하는 거야. 그런 경우가 몇 번 반복되면서 깨달았지. 열심히 하는 것은 손해 보는 거구나.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더 이상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이.”

재혁이 말에 나 스스로도 창피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착한 학생들에게 나도 저렇게 부당하게 했을 것이다. 지키지도 못하는 약속들로 학생들을 기만하기도 했을 것이다. 학생들의 능력을 내 마음대로 재단해서 그 틀에 가둬 놓았을 것이다.


비단잉어의 하나인 코이는 환경에 따라 성장하는 크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작은 어항에서 기르면 5~8센티미터밖에 자라지 않고,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센티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리고 강물에 방류하면 1미터가 넘게 성장한다고 한다.

아이들을 조그만 어항에 가둬 놓고 말로만 크게 자라라고 하지는 않았는지, 입시를 핑계 대면서 눈앞의 이익만을 쫓게 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반성해 본다.


*이름과 지명은 실제가 아닌 가명을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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