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아프다. 마음이 아픈 학생들이 정말 많다. 심리적, 정신적 고통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학생들이 한 해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약으로 병을 고치듯이 독서로 마음을 다스린다.
라는 말을 믿으면서 자율 시간에 ‘느리게 책 읽기’ 시간을 준비했다.
첫 수업 시간에 이 수업의 취지와 방법을 설명하면서 학생들에게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어려운 책보다는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정하기를 당부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활동을 의미 있게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싶은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진로와 관련 있는 책을 선택했다. 대부분 어려운 과학 서적이나 AI 관련 서적, 베스트셀러인 어려운 인문학 서적 등을 선정했다.
그래서인지 1, 2교시에 수업이 든 반은 10분을 독서하기가 힘들었다. 충분한 수면 시간을 갖지 못하는 대한민국 고등학교 학생들은 1, 2교시 수업 시간에 책이 수면제라도 되는 듯 정말 정신을 못 차리고 졸았다. 깨우면 겨우 책을 읽는 학생도 있었지만, 깨워도 깨워도 정신을 못 차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래서 독서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우선, 학생들이 선택한 책을 흥미로운 책으로 바꿔보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30권 정도 되는 책 카트를 준비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불편한 편의점’,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시간을 파는 상점’, ‘스스로 행복하라’, ‘아기 판다 푸다오’, ‘방구석 미술관’ 등의 책이었다. 졸면서 독서하는 학생들에게 책 카트 책으로 바꿔서 독서해 보기를 권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다음 방법은 독서하는 공간을 바꿔보는 것이었다.
교실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독서하는 것이었다. 다음 수업을 위해 멀리 나가지는 못하고 학교 운동장을 독서 공간으로 삼았다.
구령대에 모인 후 출석 확인했다. 교사인 내 시선에서 벗어나면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어서 구령대 기준으로 뒤편은 못 가게 하고, 앞 운동장, 옆 공간에서만 마음대로 자리를 잡아 독서하게 했다. 벤치에서 누워서 독서해도 되고, 삼삼오오 모여서 독서해도 된다고 했다. 위험하거나 사고 위험이 없다면 학생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독서할 수 있게 했다.
교실을 벗어난 아이들은 1, 2교시에도 자는 아이가 없었다.
벤치에서 꽃봉오리를 보면서 조용히 독서하는 아이, 독서하면서 하늘을 보는 아이, 책 내용을 공유하는 아이들 등등 아이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제각각 독서를 했다. 교실을 벗어난 아이들은 비록 운동장이었지만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독서하면서 주변을 살피는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아이들에게 여유를 준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독서를 잘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면서 간간이 독서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한 시간 내내 학생들이 독서하는 공간을 다니면서 독서하는 학생들을 살폈다. 잔소리하지 않아도 내가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딴짓하는 아이들이 잠시나마 독서에 집중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반별로 차이가 났다.
교사인 내가 지도하지 않아도 한 시간 내내 정말 독서를 잘하는 반이 있었고, 내 눈치를 살피면서 살살 딴짓을 많이 하는 반도 있었다.
그러나 무기력하게 한 시간 내내 잠만 자는 아이는 어느 반도 없었다. 학생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독서하는 경험을 갖기를 바란 나는 독서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을 혼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한 시간에 한, 두 장만 책을 읽었어도 그것만으로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체육 시간하고 겹치는 경우 독서하는 아이들의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독서하지 않고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거나 남학생인 경우는 합류하여 축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다른 대책을 마련했다.
사전에 시간표를 확인하여 체육 시간과 겹치는 반은 학교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다행히 우리 학교 바로 옆에 작은 공원이 있어서 크게 무리는 없었다.
다만,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많은 것 빼고는.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독서하는 효과를 본 나는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고, 관리자들의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주일에 걸쳐 준비하고, 독서 공간을 학교 옆 공원으로 바꿨다. 학교와 주택가 사이 길게 펼쳐진 공원은 벤치도 많고, 한눈에 아이들이 보여 교사인 내가 관리하기가 운동장보다 훨씬 수월했다.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학교 구령대에서 출석 확인을 하고, 교사인 내가 학생들을 인솔해서 뒷문을 이용해 공원에 갔다. 이동 거리가 멀지 않아서 학생들이 다른 길로 이탈할 가능성이 없었고, 실제 이탈한 학생들도 없었다. 아이들은 횟수가 반복될수록 독서를 좀 더 잘했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아이들도 혼자 독서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다.
한 학기에 걸쳐 이루어진 수업 동안 독서 습관이 잘 잡힌 학생들은 2~3권 책을 읽었고, 딴짓을 하면서 내 눈치를 보던 학생들도 최소한 한 권의 책은 다 읽었다.
기회가 된다면 교실에서 벗어난 수업을 교과 수업에도 적용해서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일들이 많다. 교사 혼자 25~30명 되는 학생들을 관리, 지도하기가 어렵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한다고 해도 반드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러니 교사는 안전하게 교실 안에서만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도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종일 아이들이 머무르는 공간은 교실 한 칸의 크기가 전부다.
아이들의 생각의 크기를 교실 한 칸에 구겨 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은 우리 아이들에게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의 병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