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은 교사가 아닙니다. 2-
부재중 전화 13통. 그것이 시작이었다.
퇴근 후 집안 청소를 한 다음 샤워를 하고 나오니까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13통 와 있었다. 그 번호로 전화했다. 전화기 반대편에서 격양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 담임 선생님이죠? 왜 이리 통화하기 힘듭니까? 나 ○○이 아빠인데 일부러 내 전화 피하는 겁니까?
1시간도 안 되는 기다림이 그리도 화가 났을까? 교사인 나도 퇴근 이후에는 사생활이 있는데 이 학부모에게 그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가 보다.
아, ○○ 아버지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우리 아이가 전교생에게 왕따 당하는 것을 알고 있으세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학급에서 ○○이와 어울리는 아이들이 있는데 전교생에게 왕따를 당한다니요?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렇게 학교에서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하는 줄 알았다니까. 나 이거 그냥 못 넘어갑니다. 선생님이 전화받지 않아서 내가 정식으로 학교에 항의 전화했으니 제대로 처리해 주세요. 내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볼 거니까 대충 넘어갈 생각하지 마세요.
○○이는 고2인 우리 반 아이다. 고1 말쯤에 친한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져서 지금은 말도 안 하고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반 아이들 중에서 ○○이와 어울리면서 점심 식사도 같이 하고, 화장실도 같이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학부모의 항의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상황을 잘 못 알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이와 어울리는 아이를 불러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이 너희하고 어울리지 않아?
아니에요. 저희와 어울려요. 왜요?
아니 요즘 ○○이 표정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아~ 요즘 ○○이 엄마하고 엄청 부딪히는 것 같아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고 계속 얘기해요.
그럼 너희 하고는 아무 문제없어?
○○이가 선배하고 사귀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저희랑 잘 어울릴 시간이 없어요. 그래도 같이 밥 먹고, 얘기하고 잘 지내고 있어요.
응. 알았어. 고마워.
상황을 알아보고 2-3일이 지난 방과 후에 학생과 부모, 학교장, 상담 교사, 담임교사인 나 모두 함께 만났다. 아이는 학교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학부모와의 갈등을 얘기했다.
학생 어머니는 아이의 반항을 자기와의 갈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중학생 때까지 공부 잘하고, 말도 잘 듣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180도로 변해 버린 상황을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꾸 고1 때 싸웠던 아이들 탓을 했다. 아이는 그런 어머니에게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도 질려했다.
주말 부부인 학생 아버지는 부인의 말만 듣고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한 것이다. 아이가 전교생에게 왕따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학생 아버지는 사과 한 마디 없었다.
학교 전담 상담 선생님이 학생과 학부모를 일주일에 한 번 상담하기로 했다. 그렇게 이 문제는 잘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와 학부모의 갈등은 지속됐다. 아이와 학부모가 싸운 날이면 학부모가 시간을 상관하지 않고 수시로 나에게 전화했다. 밤 10 시건, 밤 11 시건, 밤 12 시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떤 날은 밤 10시에 시작한 통화가 새벽 1시까지 지속된 적도 있었다. 하소연할 때도 있었고, 나와 학교에 대한 불만을 얘기할 때도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학교 상담 선생님에게 했더니 그 학부모와 통화할 때는 꼭 녹음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사과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학부모와 통화할 때는 아들 핸드폰을 빌려 녹음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한 학기 가까이 그 학부모의 전화에 시달렸다.
출처: 다음 이미지(표지와함께)
그 이후 나는 다시는 사과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도 퇴근 이후 학부모가 통화를 원하면 가슴이 먼저 덜컹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