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 갔다. 7
아들에게 오랜만에 손 편지를 썼다. 인터넷 편지는 매일 썼지만, 손 편지는 아들 생일에 맞춰 오랜만에 썼다. 아들 생일에 맞춰 4월 22일에 면회 가서 준비한 손 편지를 줄 예정이다. 면회 때 외출, 외박은 안 되지만 아들이 먹고 싶다고 한 음식과 아들이 부탁한 물품을 준비하면서 들뜬 하루하루를 보냈다.
10시 30분까지 지정된 장소에 도착해야 민간인 통제 구역 안에 있는 아들 부대에 들어갈 수 있어서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서둘렀더니 너무 일찍 도착했다. 9시 20분에 첫 번째로 지정된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민간인 통제 구역을 지키고 있는 군인이 다가와 여러 가지를 질문하고, 몇 개의 서류를 작성했다.
“10시 30분에 부대에서 인솔 차량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아, 민간인 통제 구역이어서 부대에서 인솔 차량이 나오는구나.’
아들이 있는 부대가 최전방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지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면회할 차들이 하나, 둘씩 왔고, 우리와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10시 30분이 되니 우리를 인솔할 차량이 왔다. 인솔 차량을 선두로 하여 7대의 차량이 민간인 통제 구역 안으로 줄줄이 뒤따라갔다. 길 양쪽에 쭉 붙인 살벌한 반공 구호를 보니 우리나라가 종전 국가가 아닌 휴전 국가임이 체감되었다. 아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한층 더해졌다. 한참을 들어가서야 아들이 있는 부대에 도착했다.
아들이 생활하는 마을이 있는 본관 1층은 4월 22일 날씨에도 온기가 없었다. 삭막하고 썰렁한 분위기 때문인지 나의 몸과 마음은 벌벌 떨렸다. 보안 관련 서류를 작성・제출하고, 간부에게 몇 가지 유의 사항을 듣고서 드디어 아들을 만났다. 4월 초에 일병을 달은 아들의 얼굴과 몸은 군기가 바짝 들었다. 그 모습이 또 왜 그리 짠하던지....
지정된 장소에서 준비해 간 미역국, 회, 고기, 전 등을 꺼내 아들 생일상을 차렸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낯선 장소에서 생일을 맞이한 아들. 내년에도 군대에서 생일을 맞이할 아들. 내년은 두 번째이니 좀 덜 가슴 아프겠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아들 모습을 보니 경직된 나의 마음도 좀 풀렸다. 식사 후 우리는 px에서 커피를 사서 군대 내 카페에 갔다.
아들은 그동안의 군대 생활을 얘기했다. 군대에 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는 아들은 신병교육대에서 그랬듯이 매일 일기를 쓰고, 디자인 그림을 그렸다. 나는 일기 쓰고, 그림 그리는 시간에 아들이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아들은 그 시간이 너무 좋단다. 아들과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 보니 또다시 이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런 낯선 장소에 아들만 혼자 남겨 놓고, 우리만 집으로 올 자신이 없었다. 면회하고 오면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는데 막상 와서 보니 마음이 더 안 좋았다. 따뜻한 봄의 기운이 만연했다면 나의 마음도 따뜻하고 희망적이었을까? 민간인 통제 구역에 있는 아들 부대, 너무 살벌한 반공 구호, 그만큼 삭막하고 썰렁한 풍경은 나의 마음을 꽁꽁 얼렸다.
짧았던 면회를 마무리하고, 아들을 부대에 혼자 남겨 놓고 우리만 돌아오면서 꾹 참았던 눈물이 드디어 터졌다. 아들과의 만남이 행복해서였는지 아니면 아들과 또다시 이별하는 것이 힘들어서였는지 민간인 통제 구역을 나오고 나서 한참 후에 나는 큰 실수를 깨달았다. 아들에게 쓴 편지를 전하지 않고, 도로 가지고 온 것이다.
미쳤어. 미쳤어. 이건 제정신이 아니야.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어?
망연자실하다 아들에게 이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전했다. 생일 전에 편지 내용이라도 전하고 싶어 우선 사진으로 찍어 보내고, 휴가 나오면 실물 편지를 주기로 했다. 아들은 괜찮다고 하는데 내 마음은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