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간관계는 좁디좁다. 평소 낯을 가리는 탓도 있지만,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는 담을 쌓아 버리는 성격 탓도 있다. 싫어하는 사람과는 말도 잘하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다가가지 못하니 인간관계가 점점 좁아질 수밖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이가 주는 뻔뻔함이 생겼다. 나와 성향이 맞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만 가는 학교생활에 조금은 즐거움을 찾고 싶었다.
“어휴, 학교 가기 싫다.”
“가야지. 네가 선생님인데.”
이 피로회복제 광고처럼 아침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다. 날이 갈수록 업무가 폭주하는 환경을 내가 바꿀 수는 없어도 출근하는 내 마음은 내가 바꿀 수 있으니 바꿀 수 있는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친한 선생님에게 말해서 같은 학교 선생님들과 소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마음 편하게 만나,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은밀히 섭외했다.
“우리 함께 놀아볼래요? 가까운 곳에 놀러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어때요?”
PBL를, 인성교육을 고민하는 전문적 학습공동체가 아니라 순도 100% 놀기 위해 만든 모임이었다. 학기 말이 다가오니 업무는 더욱 폭증했다. 정말 학교에서 농담 한 마디 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온 에너지를 다 쏟고, 집에 오면 뻗기 바빴다. 그래도 마음만은 몸처럼 지치지는 않았다.
드디어 우리는 10명의 멤버로 첫 모임을 가졌다. 회비를 모아 차를 빌려 을왕리로 놀러 가기로 했다. 우선 사전 회비를 모아 차를 렌트했다. 학교에서는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어 카톡으로 모임 준비했지만, 우리는 당일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출발했다.
차 안에서 신나는 노래에 맞춰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서 깔깔대는 동안 우리는 그 옛날 풋풋했던 대학생으로 돌아갔다. 차 안에서 수다를 떠는 것이 전부였지만, 우리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했다.
1시간 30분 걸려 사전 예약한 을왕리 조개구이 식당에 도착했다. 다들 배가 너무 고팠기에 우선 넉넉하게 음식을 시켰다. 조개구이만 먹으니 좀 허한 것 같아 해물칼국수, 해물라면까지 시켜서 배부르게 식사를 완료했다. 식사 후 우리는 왕산 해수욕장에 가서 소녀들처럼 모래사장을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서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 순간을 영원히 추억했다. 우리의 낮과 밤은 다른 어느 순간보다도 아름다웠다.
을왕리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김포 커피숍으로 갔다. 으리으리한 커피숍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정말 크기도 크기지만 휘황찬란하게 화려했다. 룸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서로의 얘기를 했다. 학교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각자의 고민, 집안 얘기들을 공유했다. 담임교사는 담임대로, 부장 교사는 부장대로, 다들 업무로 버거워했다. 다들 작년보다 올해가 몇 십배는 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다. 슬프게도 내년에는 또 올해보다 몇 십배 더 힘들 거라는 것을.
이 힘듦을 이겨내는 방법도 우리는 알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우리는 이 힘든 현실을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로, 우리의 아름다운 지금 이 순간으로 우리는 또 힘을 얻을 것이다.
커피숍을 나올 때 우리의 첫 모임을 축복하듯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아직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다. 모르는 여러 사람 앞에서 강연하는 것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래서 여태껏 성격 탓을 하면서 그런 상황을 회피해 왔다. 그런데 한 번 용기를 내어 회피하고 싶은 상황에 먼저 다가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소중한 결실을 얻게 되었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이다’라는 이 말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