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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Sep 05. 2023

낭만 보존의 법칙-미래 편지

-한 뼘 성장하는 교육-

  나는 학생들의 감성적인 글을 좋아한다. 고민이 있고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면서 가치관이 묻어나는 그런 글을 읽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2015 교육과정 개정 방향 중 하나인 ‘교수 학습 방법 및 평가 방법의 개선’ 취지에 발맞추어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가 이루어졌다. 생활기록부 과목별 세부특기사항에 수업과 평가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기 위해 독서 논술, 주제탐구보고서, 발표하기 등의 학생 활동을 하고 있다. 진로를 반영하고, 학업 역량을 드러내기 위해 심층적인 내용이 반영된 학생 활동이 주가 되었다. 


  “10대인 학생들에게 낭만은 곧 오글거림이라는 인식이, 그렇게 낭만이 매도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8년 전 작가가 꿈이 학생이 발표 중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낭만이 오글거림으로 매도되면서 우리 아이들은 낭만적인 표현을 꺼린다. 아니 오히려 놀림거리가 된다. 


  ‘낭만’의 사전적 의미는 감정적이고 이성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낭만 닥터 김사부에서 김사부는 ‘낭만’을 이렇게 말했다. 


  도 원장: 뜻은 가상하다만 너 하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아.

  김사부: 너는 세상 바꿔보겠다고 이 짓거리하냐? 나 아닌데. 나는 사람 살려보겠다고 이 짓거리하는 거야.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그 순간만큼은 내가 마지노선이니까. 내가 물러서면 그 사람 죽는 거고, 내가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노력하면 그 사람 사는 거고.

  도 원장: 미친놈. 아직까지 그 나이에 그런 비현실적인 꿈을 꾸다니.

  김사부: 그것을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고 그러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고 그러고.


 돈보다 이상을 추구하는, 남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비웃어도 자신의 신념대로 기운차게 살아가는 김사부의 ‘낭만’. 



  ‘구르는 돌만 봐도 깔깔대고 웃는다’는 말이 있듯이 가장 감성이 풍부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감성을, 낭만을 꺼린다. 


  우리 세대 사람들은 학창 시절에 늦은 밤 라디오를 들으면서 센티멘탈해져 한 번쯤 눈물을 흘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감성에 젖어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편지를 끄적였으리라. 인생에 대한 서투른 고찰로 한숨도 쉬었으리라. 그 시절 우리는 한 번쯤 낭만주의자이자 철학자였다.      


  지금 고3 아이들을 데리고 낭만적인 활동은 고사하고, 수업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경기도교육청에서는 3학년 2학기에도 수행평가를 40% 하라고 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조금은 감성적인 활동을 수행평가로 계획했다. 바로 초등, 중학교 때 많이 했던 ‘10년 후 나에게 미래 편지 쓰기’이다. 학생들에게 공지했을 때 아이들은 오글거린다고 싫어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쓴 글을 보고 나는 맑은 가을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행복했다. 다시 기운 났다. 수업하면서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에 맥이 빠졌는데 아이들의 생각을 접하고 나니 다시 아이들이 예뻤다. 


  아이들의 글에는 아이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 자신에 대한 질책과 격려, 미래 삶에 대한 소망이 담겨있다. 아이들의 글을 통해 19살 그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담아 본다. 




10년 후 나에게 보내는 편지


  A학생: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남들 따라 좇아가는 그런 행복이 아닌 네가 진정으로 원하고 기분 좋은 그런 행복 말이야. 그리고 지금의 나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아닌 것 같아. 미래의 행복만을 좇다 현재의 즐거움, 기쁨, 경험을 둘러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느낌이 들거든. 그때의 나, 10년 후의 나도 미래의 행복만을 좇아가고 있다면 지금 주위를 둘러보라고 말하고 싶어. 


  B학생: 10년 후의 나에게 ‘수고했다’라는 말도 해주고 싶다. 비록 완벽하게 내가 목표하고 원하는 대로 살고 있진 않겠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 계속 노력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 노력도 쉽진 않을 테니 그 노력에 꼭 수고했다고 말해줄 것이다.


  C학생: 29살의 ○○야, 잘 지내고 있니? 난 19살의 너란다. 

  지금은 공부하랴 친구들과 학교 생활하랴 참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데, 너의 요즘은 어떨지 정말 궁금해. 원하는 꿈은 이루었는지, 좋은 사람들은 많이 만났는지, 가족들은 어떤지 같은 것들 말이야. 지금의 나는 더 성실해지고 싶고, 내 삶을 19살인 지금보다 더 알차게 채워 나가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작은 소망이지만 쉽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지금의 네가 이런 소망을 다 이루고 새로운 소망을 찾는 중이었으면 좋겠다. 또 힘들면 멈출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해. 19살의 나는 늘 주변에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서 기쁠 땐 크게 소리 내어 웃고, 슬프고 힘들 땐 울고 투정 부리는 아이지만 30살을 바라보는 너는 쉽게 그러진 않을 것 같아. 하지만 19살 때의 네가 지금의 너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힘들 때 멈춰가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어른이었으면 좋겠어. 꼭 그러길 바란다. 


  D학생: 난 지금 수능이 두 달 정도 남았고, 이틀 후면 9월 모의평가여서 매우 심란해.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네가 무슨 일 하고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 내가 좋아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과 잘 맞아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니? 나중에 이것을 보면 이때가 좋았다 하면서 말하겠지? 근데 나는 네가 지금보다 더 즐거웠으면 좋겠어. 그리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너의 신념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어. 제발 다른 사람 눈치 보면서 주눅 들지 말고 너의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E학생: 나에게 10년 후는 너무 먼 미래인데 너에겐 나름 10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느껴졌을 것 같아. 그래도 10년 동안 모든 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 

  지금은 수능이 인생의 전부 같고 너무 긴장되고 걱정되기도 해. 근데 이것도 별 거 아니지? 29살이 된 너는 이것보다 더 큰 시련들을 이겨냈을 거라고 믿어. 너에겐 수능이 별거 아니게 느껴질지라도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해서 공부해 보려고. 내가 여기서 하나씩 터득하고 쌓아 올려야 네가 만들어질 테니까




  그대들의 29살 삶이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겠지만, 10년 전 그대들이 쓴 이 편지처럼 기운차게 잘살아 내고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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