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 갔다 2-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완전 코 맹맹이 소리야.”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오늘 매복 나가는 거야?”
“당연하지요. 요즘 부대에 코로나가 돌아서 작전 나갈 사람도 없는데...”
7개월을 아픈 곳 없이 잘 버티던 아들이 감기에 걸렸다. 7월부터 부대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2주일에 3번 정도 작전 나가던 아들이 일주일에 2번 꼬박꼬박 작전 나가고, 불침번도 1-2번 서고 있다. 작전만으로도 무리였을 텐데 체력 단련에, 이발병, 물자 관리까지 하느라 당연히 무리가 됐을 것이다. 요령 부리면서 대충 하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부모이고 어른이라는 일말(一抹)의 이성으로 겨우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통화를 마쳤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조심히, 제발 아무 일 없이 잘 다녀오기를 기도하는 것이리라.
매복 다녀온 아들이 부대에 돌아와 취침하고 일어날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 아들이 전화했다.
“왜 벌써 일어났어?”
“몸이 아파서 약 먹으려고 일찍 일어났어요. 몸살, 감기인 것 같아요.”
아들의 목소리가 안 좋았다. 코 맹맹이 소리만이 아니라 목소리가 갈라졌다.
“열은? 코로나 검사는 했어? 목소리가 영 안 좋아.”
“열은 없어요. 자가진단키트 했는데 아쉽게도 한 줄이에요.”
“다행이네. 근데 뭐가 아쉬워?”
“코로나 걸리면 5일은 쉴 수 있잖아요.”
쉬고 싶은 마음이 큰가 보다. 한 번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아들이 코로나에 걸려서 푹 쉬기를 바라고 있다니. 그 마음이 짠해서 아들의 말에 별다른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들은 약 먹고 2-3일 쉬어서 그런가 감기, 몸살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매복 다녀온 지 3일 만에 또 작전을 나갔다. 한 번 작전을 나가기 위해서는 해당 시간에 딱 작전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날에 행동화며 사격 등 여러 훈련을 소화해야 했다.
작전을 다녀온 아들과 다음 날 통화 하자 회복하던 아들의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통화하기 힘들 정도였다. 통화 대신 카톡으로 얘기하니 머리도 아프고, 다시 몸도 아프단다. 군의관에게 다시 약을 받아 왔단다. 휴, 할 수만 있으면 내가 대신 아파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이었다.
2-3일 쉬면 좀 나아졌다가 작전을 나갔다 오면 다시 도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아들은 아픈 와중에도 불침번을 섰고, 여전히 매복, 수색 작전을 나갔다.
한 달 가까이 아들은 감기, 몸살로 고생했다. 이쯤 되니 나조차도 차라리 아들이 코로나에 걸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엄청 고생했던 나는 아들이 군대에서 홀로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플 것 같았다. 그래서 아들이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를 바랐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한 달 내내 약을 먹으면서 작전 나가 고생하는 아들을 보니 몸이라도 쉴 수 있는 게 나았다.
더위가 기승부렸던 여름의 뒤끝이 돼서야 아들을 괴롭혔던 감기, 몸살이 끝났다. 한, 두 명씩 코로나 감염자가 부대 내 발생한다고 했지만, 부대 내 일정은 빈틈없이 진행되었다. 아들의 몸이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자마자 소대 초동(初動)이 돌아왔다. 하루, 이틀, 사흘... 이번 초동은 무난하게 잘 지나가는 것 같았다.
“비상 없이 잘 지내고 있어?”
“네. 별일 없어요.”
“다행이다. 이제 유격만 잘 넘어가면 큰 고비는 넘기는 거네.”
“그렇지요.”
바로 어젯밤에 이런 통화를 했었다. 가을이 오면 아들이 소화해야 할 유격 걱정을 하면서 평온하게 아들하고 통화했다. 그리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출근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핸드폰을 꺼내 충전기에 꽂았다. 카톡 메시지가 왔다. 아들이다.
새벽에 실제 상황이 발생해서 출동 나갔다 왔어요. 다행히 큰일은 아니었어요. 오전에 연락 안 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가슴이 벌렁거렸다. 실제 상황이라니.... 새벽에 아들은 왜 출동했는지... 떨리는 손으로 아들에게 톡을 보냈지만 바로 연락이 안 되었다. 별일이 아니었다는 아들 연락에도 오전 내내 핸드폰만 쳐다보았다. 오후에 아들과 연락이 되어 상황을 알게 되었다. 생각도 못한 일이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 군대라는 곳인가 보다. 군대도 모르는 내가 수색 대대 임무, 그곳에서 생활하는 아들의 생활을 가늠하는 것도 쉽지 않으리라.
다치지 않고 유격만 잘 지나면 되는 줄 알았다. 최전방이다 보니 혹독한 겨울에 대한 걱정을 미리 사서 했다. 어리석게도 고비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군대에서 고비는 매 순간이다.
좀 더 큰 고비가 있고, 더 큰 고비가 있을 뿐이다. 고비가 아닌 군대의 순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