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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Sep 20. 2023

대대 공모전에서 1등 했어요.

-아들이 군대 갔다 2-

 “대대 공모전 서평 부문에서 1등 했어요.”

  “정말 잘 됐다. 엄마가 잘 썼다고 했지? 네 글 검토하면서 엄마는 기대하긴 했는데. 그래도 정말 좋다.”

  “헤헤. 휴가도 받아요. 1등 작품은 사단 공모전에도 출품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은 바쁜 와중에도 대대 공모전에 출품한다고 ‘사랑의 이해’ 서평을 썼다. 비록 수필 공모전 결과는 안 좋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들 글을 좋아한다. 


 <사랑의 이해>는 모순적인 상황을 인물들에게 부여한다. 상수와 수영은 재산적, 사회적 우위와 열세의 위치를 경험한다. 상수는 수영에게서 우위의 위치를 가지고, 미경에게서 열세의 위치를 가졌다. 상수는 우위의 상황에서는 이해득실을 따지고, 열세의 상황에서는 자존심을 따진다. 수영은 종현에게서 우위이고, 상수에게서 열세였다. 수영은 우위일 때는 확신을 주는 것에 지쳐갔고, 열세일 때는 확신을 바랐다. 이들의 관계는 생명체거주가능영역에서 약간 벗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만 더 따뜻하거나 차가웠다면 사랑이라는 생명을 피였을 텐데 아주 조금의 차이가 그들의 사랑이라는 생명의 꽃을 피우지 못하게 막았다. 이렇게 저자는 사랑이 얼마나 힘든 것이고, 사랑에 이해득실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도서관 연등하면서 소설 쓰고 있어요. 소설도 검토해 줄 수 있어요?”

  “요즘 작전도 많고 감기, 몸살로 몸도 아프면서 무슨 또 글을 써. 좀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써도 되잖아.”

  격려보다는 잔소리가 앞섰다. 남들 쉴 때 같이 쉬었으면 좋겠는데 자꾸 쉬는 시간을 쪼개서 무언가를 하는 아들에게 요즘 부쩍 잔소리를 하게 된다. 

  “할 만하니까 하는 거예요. 봐줄 거지요?”




  20대 나는 창작과 거리가 멀었다. 국어교육과여서 그런지 동기, 선배 중에는 창작 동아리에 들어가 소설이나 시를 창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창작은 나와 거리가 먼, 아니 눈곱만큼도 관련이 없다고 확신했다. 


  교직 생활하면서 국어 교사여서인지 학생들의 작품을 접하고, 평가할 경우가 많았다. 창작할 줄도 모르면서 감히 타인의 글을 평가한다는 것이 굉장히 불편했다. 그래도 창작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교사는 잘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굳이 책임감에 글까지 쓰고 싶지 않았다. 창작 활동은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평탄하게 살아온 내가, 경험이 많지 않은 내가, 틀에 박힌 사고로 창의적이지 않은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임신하고,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갑자기 변했다. 


  임신하고 다섯 달 정도 지나고 나서였을까? 느닷없이 소설을 쓰고 싶었다. 정말 느닷없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한 번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소설이라니...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설령 창작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어도 스스로 단 한 번도 인지하지 못한 욕구였다. 나는 그렇게 스물아홉 늦가을에 느닷없이 단편 소설을 썼다. 


  첫 단편 소설을 순식간에 완성했다. A4 13쪽 분량을 2-3일 만에 완성했다. 사유의 깊이 없이 써 내려간 단편 소설이 6편이나 되었다. 나는 내가 쓴 단편 소설들이 그렇게 훌륭할 수가 없었다. 출산 이후에도 나의 열망은 식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창작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다. 유명한 소설가가 되고 싶은 열망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출산 이후 몸을 회복한 나는 공모전에 출품하고, 여러 출판사에 구애의 메일을 보냈다. 벌써 내가 신경숙 작가, 양귀자 작가, 김형경 작가가 된 것처럼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의 상상이 망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참히 깨진 망상 때문인지 나의 글쓰기는 20년 가까이 멈췄다.




  아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 소설을 창작했다. 처음 아들의 시를 접하고, 잊고 있던, 20년 전 창작했던 그때가 떠 올랐다. 생각 없이, 고민 없이 써 내려간 글들. 부끄러웠다. 그 글들로 구애를 한 것이 창피했다. 그래서 섣부르게 다시 글을 쓸 용기가 안 났다. 그런데 공부하는 틈틈이 소설을 쓰는 아들을 보고 20년 전 내려놓은 펜을 다시 들었다. 아들의 글이 나에게 거울일 때가 있다. 때로는 채찍질일 때도 있다. 


  “엄마는 누군가 소원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하면 무슨 소원을 빌 거야?”

  “음.. 필력(筆力). 필력을 달라고 할 것 같아. 필력은 천부적인 재능 같아서.”

  “오우, 당연히 돈이나 젊음일 줄 알았는데.”


  양귀자 작가의 「모순」을 읽으면서 작가의 글을 구사하는 힘을 절실히 느꼈다. 20년 전에는 조앤 롤링의 창의성에 감탄하고 열망했다면 지금은 문장을 구사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을 찬양하고 존경한다. 

     

  “늘 머릿속에는 구상이 몇 개씩 비축되어 있어요. 발효의 시기가 끝나면 하나씩 꺼내서 쓰지요. 항상 제 나름의 그물을 치고 있는데, 거기에 걸려드는 부분이 경험과 만날 때 어떤 영감을 부여한다고 할까요?”     


  박완서 작가의 말을 곱씹어본다. 아들 바보인 나는 아들의 글에서 박완서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예술적인 아빠의 재능과 창작 활동이 태교가 된 엄마의 영향이 커넥톰으로 아들의 창작 활동으로 연결되기를 소망해 본다. 군대에서 ‘보이저호와 창백한 푸른 점’ 소설을 탈고한 아들에 자극받아 지금 나는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 20년 전의 그 소설들보다는 덜 부끄럽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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