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랏말싸미 Sep 23. 2023

4박 5일은 너무 짧은 거 아니니? 1

-아들이 군대 갔다 2-

  아들 휴가는 이번에도 4박 5일이다. 하루에 2-3개씩 약속을 소화하면서 엄청 바쁘게 첫 번째 휴가를 보냈던 아들. 다음 휴가는 좀 더 여유롭게 보내길 바랐으나 이번 휴가도 틀렸다. 휴가 나오는 당일만 빼고 아들은 첫 번째 휴가보다 더 바쁘게 지낼 예정이다. 


  휴가 나오는 당일 연가를 사용해 점심시간 외출을 해서 아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집에서 군복을 갈아입고 나온 아들은 내 아들이었다. 면회 갈 때마다 내 아들 같지 않은 낯선 아들의 모습. 군복 입고 각 잡힌 말투와 표정, 행동.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아들은 나라의 아들이었다. 부대가 아닌 사회에 아들이 있다. 활짝 웃는 아들을 꼭 안았다. 길거리에서 벌이는 주책맞은 엄마의 환영을 다행히 아들이 받아 주었다. 


  우리는 단골 가게에 들어갔다. 나의 입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이야기하느라 더 바빴다. 단골 가게 사장님은 아들의 짧은 머리를 보고, 아들이 휴가 나온 것을 알아채셨다. 아들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시면서 아들의 남은 군 생활을 응원해 주셨다. 카페에서 아들과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더 달콤한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나의 행복한 시간은 유한했다. 학교에 돌아와서 핸드폰을 충전하면서 비로소 이상함을 인지했다. 점심 식사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적게 결재되었다. 바로 가게에 연락했다.


  “점심 식사 가격 결재가 잘 못 되었어요.”

  “군인 아들 점심은 제가 사주고 싶었어요. 모든 식사값을 받지 않고 싶었는데 그러면 분명 안 된다고 하실 게 뻔하니까 일부러 그렇게 했어요.”

  “그러시면 매번 제가 죄송하지요. 갈 때마다 서비스도 주시면서.... 죄송해서 식사하러 못 가겠어요.”

  “아닙니다. 그 정도는 다른 손님들에게도 하는걸요. 부담 갖지 마시고 편히 오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들에게도 꼭 전할게요.”


  휴가 나올 때 친구 아버지가 아들을 집까지 바라고 주셨다. 친구 아버지, 단골 가게 사장님. 세상에는 정말 좋으시고, 감사해야 할 분들이 많다. 감사함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오늘은 아들과 익선동 가는 날. 10여 년 전 익선동에서의 좋은 추억을 아들과 나누고자 잡은 일정이었다. 익선동에는 좁은 골목마다 한옥으로 예쁘게 꾸며진 가게들이 즐비했다. 자기 나름의 개성을 맘껏 뽐내는 가게들 앞에 점심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좁은 골목에서 레트로 감성이 느껴지는 이 거리를 아들도 좋아했다. 사전에 방문할 맛집을 찾아놓아 일사천리로 메뉴까지 순식간에 주문했다. 사람들이 블로그에서 극찬한 맛집. 그러나 생각보다 가게 안 인테리어며 음식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익선동의 예쁜 추억이 빛바래 지려 했다. 짧은 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다시 골목을 구경했다. 핫한 익선동에는 골목마다 사람들로 붐볐다. 


  세련미를 풍기는 카페 건물로 들어갔다. 반 계단씩 올라가면서 층마다 인테리어를 달리 한 카페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중간중간 전시되어 있었다. 아들은 작품에 관심을 보이면서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았다. 인테리어만 마음에 쏙 든 것이 아니라 커피도 빵도 마음에 쏙 들었다.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 있을까? 아직 한낮에는 더위가 느껴지지만, 언뜻언뜻 느껴지는 가을 문턱 앞에서 우리는 익선동의 정취를 만끽했다. 역시 익선동을 오길 잘한 것 같다. 




  익선동에서 낭만적인 추억을 한 아름 안고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갔다. 군대에서 작전 아니면 영화 연등을 빠지지 않았던 아들은 휴가 때 영화를 많이 보고 싶어 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정말 재미있었어요. 근데 관람객 수가 아직 400만 명이 안 되었다니 아쉽더라고요.”

  어제 친구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온 아들은 감탄하면서 영화평을 쏟아냈다. 오늘 볼 오펜하이머에 대한 기대도 하늘을 찔렀다. 아들의 설렘은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20여 년 전, 남편과 늦은 시간 관람한 영화 데이트 외에 나는 평일 늦은 시간에 영화를 관람한 적이 없었다. 나의 설레는 마음과 다르게 3시간의 긴 관람 시간으로 영화 초반은 살짝 졸 수도 있을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3시간이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나와 아들은 영화에 집중했다. 과학자로서 오펜하이머의 욕심과 인간으로서 오펜하이머의 고뇌, 파멸을 객관적으로 균형감을 유지하면서 보여주는 감독의 능력에 감탄했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판단, 평가를 관람객 스스로 하게 만드는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왜 영화에 대한 평이 갈리는지 모르겠어요. 앞부분이 지루하고 어렵다는 평을 보았는데 전혀 아니던데... 이 영화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생 영화예요. 와~ 정말 재미있어요. 또 보고 싶을 정도예요.”

  아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얼굴은 생기가 넘쳤다. 우리는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한참 나누었다. 


  아들은 도시의 풍경조차 좋다고 말한다. 똑같은 하늘이고 공기인데도 사회에서 보는 하늘과 공기가 더 좋다고 말한다. 사회에서의 하루 아니 한 시간 한 시간이 아깝다고 말한다. 휴가 동안 하는 모든 것이 행복하단다. 


  나도 아들이 군대 가기 전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요즘 많이 깨닫고 있다. 항상 그 자리에 당연히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 그러나 당연히 그 자리에 항상 있는 것은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 항상 반복되는 만남에 그 모든 것들의 감사함을 몰랐다. 


  어느덧 아들의 두 번째 휴가가 이틀밖에 안 남았다. 

48시간도 안 남은 아들의 휴가지만 아들이 그 시간 동안 더 많이 즐기고, 행복하고, 기뻤으면 좋겠다. 내년 7월 30일까지 시간이 눈 깜짝할 속도로 빨리 흐르길 항상 바랐는데... 이 이틀만은 아주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