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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Sep 26. 2023

4박 5일은 너무 짧은 거 아니니? 2

-아들이 군대 갔다 2-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들의 방을 열어 보았다. 침대에서 아들이 곤하게 자고 있다. 주인 잃은 빈방의 쓸쓸함은 오간 데 없이 아들 방은 아들 온기로 가득 차 있다. 아들이 집에 있는 것 만으로 집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집의 공기뿐이겠는가? 세상이 온통 따뜻하게 느껴지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곤하게 자는 아들의 모습만 보고 있어도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아들, 오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퇴근하고 보자.”




  오늘 아들은 약속이 3개이다. 여행을 함께 다니는 ‘고추밭’(남자들만 있다고 카톡방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멤버들과 점심에 만나 함께 식사하고 놀 예정이다. 카페도 가고, P.C방도 간다고 한다. P.C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들은 카페까지만 가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한다고 한다. 내가 퇴근하면 체육관에서 아들을 데리고 가족 식사하러 언니네에 가기로 했다. 

  아들, 체육관에 있어?

  퇴근하면서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친구들하고 노느라 체육관 못 갔어요. 지하철역 5번 출구로 와 주실 수 있어요?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나 보다. 약속 장소에서 아들을 만났다. 차에 타는 아들의 얼굴이 환하다. 

  “재미있게 놀았어? 네가 노느라 체육관을 안 가다니.”

  “그렇지요?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그런가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P.C방에서 오래 있지 않았어요. 카페에서 수다 떠느라 시간 다 보냈어요.”


  마라탕을 포장해서 언니네로 갔다. 마라향조차 싫어하는 나는 가족끼리 한 번도 마라탕이나 마라상궈를 먹으러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아들은 여태껏 한 번도 마라탕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양고기도 마찬가지다. 아들은 양고기를 군대에서 처음 먹었다. 




  “오늘 저녁 식사도 맛있게 먹었어?”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저녁 6시가 넘어서 아들과 통화했다.  

  “오늘 저녁 메뉴 너무 좋았어요. 양고기가 나온 거 있죠?”

  “우와, 너희는 최전방이어서 그런가? 정말 식사는 잘 나오는 것 같아. 맛있었어?”

  “양고기 처음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식사하는 애들에게 맛있다고 했더니 양고기 처음 먹어 보냐고, 밖에서 먹으면 훨씬 맛있다고 그 애들은 별로 잘 안 먹더라고요.”


  나는 이국적인 음식을 잘 못 먹는다. 특히 외국 향신료 향이 나는 음식이나 고기 냄새가 나는 음식은 입에도 못 댄다. 그래서 우리 가족 외식 메뉴는 이 모든 것들이 제외된 상태에서 결정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아들은 양고기조차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 친구들과 식사할 때도 나로 인한 선입견이 아들에게도 덧대어졌는지 양고기를 먹으러 가지 않았다. 남들은 냄새난다고 맛없다는 양고기를 아들은 맛있게 먹었다니... 너무 미안했다. 

  “아들 휴가 나오면 양고기 먹으러 가자.”

  “엄마 양고기 먹을 수 있어요?”

  “양고기 잘하는 데는 냄새 안 난대.”

  “그래요. 근데 이번 휴가는 짧으니까 내년에 좀 길게 나갈 때 가요.”

  “그래. 그럼 이번에는 마라탕을 먹어 보자. 너 마라탕도 안 먹어봤잖아.” 




  마라탕을 포장해서 언니네 갔다. 언니는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돼지갈비찜을 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아들 일정에 맞추기 위해 저녁 식사를 일찍 준비한 것이다. 한상차림을 해서 가족들이 함께 식사했다. 아들은 집밥을 맛있게 잘 먹었다. 

  “마라탕은 그렇게 맛있지 않네요.”

  매운 것을 못 먹는 아들을 위해 가장 순한 맛으로 준비했는데 마라탕은 아들 입맛에 잘 안 맞나 보다. 마라탕을 뺀 다른 음식을 반찬 삼아 아들은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그런 아들을 온 식구가 다 바라보고 있다. 

  “다음 휴가는 언제야?”

  “내년 2월 누나 졸업할 때쯤에 나오려고요”

  “내년이나 나온다고? 어째 휴가 나오자마자 바로 들어가는 것 같아. 제대해야 제대로 보겠어.”

  친정엄마도 매번 짧게 휴가 나오는 아들이 아쉬우신지 연신 아들 손을 만지신다. 아들은 그런 가족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약속 시간이 되어 언니네 집을 나섰다. 




  아들이 복귀하는 오늘이 아빠 기일이다. 아들 복귀일이 토요일이라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아빠 기일과 겹쳤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친정으로 갔다. 언니와 장을 보고 재료들을 다듬다 보니 벌써 아들과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아들을 복귀시키고, 제사 지내러 다시 오기로 했다. 


  4박 5일 휴가는 너무 짧다. 아들이 휴가 나오기 전에 계획한 일정을 다 하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다 지나버렸다. 나보다 아들이 더 많이 아쉬워 보인다. 첫 휴가보다 훨씬 좋았다는 아들. 도시의 공기조차 좋다는 아들에게 최대한 아쉬운 티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그것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연천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부터 나의 말수는 현격히 줄었다. 연천역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들을 한없이 바라보고, 손을 매만졌다. 첫 휴가 때는 저녁 7시 집합보다 40분이나 늦게 군 차량이 왔는데 이번에도 그런 행운이 있기를 바랐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는데 복귀하는 군인들이 많이 보였다. 연천역으로 향하는 차 한 대를 보고 군인들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들도 부리나케 가방을 메고 인사를 했다. 아직 시간은 6시 30분밖에 안 되었는데 순식간에 아들이 멀어졌다. 6시 40분이 되니 아들을 실은 차는 연천역을 떠났다. 언제가 되면 이 이별이 괜찮아질까? 아들이 없는 연천역을 떠나지 못하고 한동안 꺼이꺼이 울었다. 이 나이에도 소리 내서 울 수 있다니 나조차도 신기했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아빠 제사를 지냈다. 아빠 제사를 다 지내고 마무리하는데 마음만 아픈 게 아니라 온몸이 아팠다. 아들을 군에 다시 보내는 것이 힘들었는지, 아들 없는 쓸쓸한 집의 공기가 낯설었는지 나는 3박 4일 동안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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