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고고씽

by 휘리

쉼이 필요한 시기이다. 3월부터 정신없이 달려온 학교 일정은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든 담임교사는 더 이상 갈아 넣을 영혼도 없을 정도인데 이 시기에 더한 극한을 경험한다.


1, 2학년은 중간고사 끝나자마자 담임교사들이 두려워하는 수학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로 4년 멈춘 수학여행이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못한 학생들을 위해 본교는 올해 1, 2학년이 모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작년 설문조사에서 학생 및 학부모가 거의 만장일치로 찬성하여 올 초부터 바쁘게 수학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2학년 학생들은 50명 넘는 아이들이 가지각색 이유로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다.


3학년 9월은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이때 고3 담임교사는 아파도 아플 수 없는 시기이다. 수시 관련 생활기록부 마감, 수능 원서 작성, 학생과 학부모 수시 상담 및 접수 등등 대학과 입시 관련하여 너무나 중요한 일정이 많다. 이렇게 바쁜 시기이지만 수시에 응시하지 않고 정시만 응시하는 학생들은 2학기부터 학교 자체를 등교하지 않으려고 한다. 출결로 1년 내내 담임교사 속을 썩이지만, 이 시기가 되면 정말 미쳐 날뛴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반 학생이 저에게 친구와 카톡 캡처한 것을 보냈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잘못 보냈다고 바로 삭제하긴 했는데 고의성이 다분해서요.”


이 학생은 3월부터 하루도 제대로 등교하지 않고 지각, 조퇴를 반복했다고 한다. 2학기가 되자 3일에서 5일까지 연속 질병을 핑계로 등교하지 않고 서류도 제출하지 않아 애를 태웠단다. 더구나 잘못하면 출석 일수가 부족하여 유급될 상황이 발생할 여지가 있었단다. 상황이 심각하여 학부모가 관리자들과 상담할 지경에 이르렀단다. 이런 상황에서 담임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얼마나 많이 연락했겠는가? 고3 담임교사가 그 바쁜 8, 9월에.... 아이는 담임교사의 수고에 미안해하기는커녕 정말 싸가지가 그렇게 없을 수 없을 정도였단다. 아이에게 3일 이상 질병 결석한 서류를 재촉하는 연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톡 캡처가 왔단다.


A: 담임이 계속 연락하고 지랄이야. 미친 × 이야.

B: 학교 안 온다고?

A: 노 서류

B: 담임 유난이야

A: 왕 재수 정말. ××. 미친 ×.


정말 두 눈을 의심했단다. 순식간에 메시지가 삭제되었지만, 충격적인 내용이어서 잊히지 않는단다, 아이에게 “죄송 잘못 보냈어요.”라는 연락이 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의도적으로 보낸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단다. 얘기를 듣는 우리도 두 눈과 두 귀를 의심했다.

그 아이에게 학교와 교사는 어떤 의미일까?




몸도 마음도 지친 우리는 유년으로 떠나는 힐링 시간을 갖기로 했다. TV에 나온 초등학교 앞 분식집을 가서 해맑았던 소년, 소녀 시절을 추억하기로 했다. 우리는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20~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분식집이 있는 골목이며, 벽에 빼곡히 적혀 있는 낙서며, 모든 음식의 가격이 그 옛날 그대로였다.


2023년 9월 25일 ○○, ○○, ○○, ○○, ○○, ○○, ○○ 다녀가다.


우리도 한쪽 벽에 직업인이 아닌 우리의 이름을 남겼다. 저렴한 가격 때문인지 음식의 양이 적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음식을 주문했다. 조그만 분식집에서 20개가 넘는 메뉴를 시켜서 정말 배 터지게 먹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마음과 생각은 국민학생으로 돌아갔지만, 식탐은 변함없이 어른이었다. 그 옛날 배가 볼록 나온 국민학생 마냥 우리의 배는 사정없이 나왔다. 운동이 시급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테마파크로 갔다. 아이들 전용 테마파크는 놀이기구며 모래 놀이터며 모두 다 아기자기했다. 모래 놀이터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모래의 질감을 만끽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고운 모래의 간질간질한 느낌은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추억을 충분히 떠올려줬다. 아이처럼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깔깔거렸다. 모래가 옷에 들어가고, 얼굴에 묻어도 상관없었다. 맨발로 모래를 느끼는 것이 부족했을까? 우리는 손으로 고운 모래를 만지면서 아예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래 놀이터에서 실컷 논 우리는 이번에는 매달리는 기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타잔처럼 매달리고, 서로 놀이기구를 밀어주었다. 서로 밀어주자 속도감에 생각보다 무서웠다. 무서움과 비례해서 우리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 순간만큼 우리는 학교의 오만가지 일로 찌든 교사가 아니라 웃음소리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이었다. 비가 한두 방울 내렸지만, 우리의 철없는 놀이를 막지 못했다.


예쁜 노을이 하늘을 물들일 때쯤 우리는 사전에 찜한 카페로 향했다. 풍경이 잘 보이는 자리를 잡았다.

“한 개씩 뽑아 보세요. 오늘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한 선생님이 테이블에 여러 개의 봉투를 펼쳤다. 저마다 한 개씩 가졌다. 봉투를 열어보니 행운의 메시지와 함께 네 잎 클로버가 예쁘게 코팅되어 있었다.

행운1.jpg

“앞으로 다들 행운이 가득할 겁니다.”

정말 행운이 가득할 것 같았다. 아무리 주변 상황이 우리를 힘들게 할지언정 이 행운의 부적이 모두 다 막아줄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실컷 놀았던 오늘. 해맑고 순수했던 그 시절 우리를 추억하면서 너무나 교사가 되고 싶었던 그 시절 우리의 꿈도 더듬어 보았다. 오늘 우리의 만남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계절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힘을 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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