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 갔다. 2-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게 맞다. 면회 가서 아들만 홀로 부대에 남겨 두고 돌아올 땐 짧게라도 집에서 아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소망했다. 그런데 아들과 며칠을 함께하고 나니 더욱더 아들이 그리워졌다. 해주고 싶은 것이 더 많아졌고, 함께하고 싶은 것들로 넘쳐났다. 그런 생각이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다. 무한대로 커진 그리움이 나의 몸과 마음을 뒤덮었다.
아들을 복귀시키고 오열한 나의 마음은 육체를 몽둥이로 두들겨 때리면서 괴롭혔다. 일요일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만 있었다. 출근했는데도 몸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 퇴근이 다가오니 37.9도로 열도 났다. 덜컥 겁이 났다. 작년 코로나 감염되었을 때와 증상이 비슷했다. 아들이 복귀한 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걱정스러운 마음을 한가득 품고,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다. 감기, 몸살이란다. 항생제를 사용하겠지만 목에 염증이 많아서 한동안 아플 것이라고도 했다.
“엄마 목소리 왜 그래요?”
“응. 감기, 몸살이래. 오늘 코로나인 줄 알고 병원에 다녀왔어.”
“큰일 날 뻔했네요. 엄마 코로나 걸렸을 때 많이 고생했잖아요.”
“휴가 나와서 괜히 엄마 때문에 네가 코로나 걸릴까 걱정했어.”
“코로나 걸리면 유격도 안 하고 오히려 저야 좋지요.”
“아, 그런 거였어? 널 위해서는 코로나 걸리는 것이 나은 거였구나?”
“농담이에요.”
“이번 주부터 유격이라고 했지?”
“네.”
아들의 말은 농담을 빙자한 진심이었을 것이다. 군대에서 어떤 훈련, 작전이든 군소리 없이 잘 따르던 아들도 유격훈련은 걱정했다. 유격이 대체 뭔지 전혀 감도 안 오는 나로서는 아들의 걱정이 전염되어 더 큰 걱정을 낳았다.
유격을 시작하는 날 저녁, 아들과 통화했다.
“많이 힘들었지?”
“오전엔 힘들었지만 그래도 할 만해요.”
아들의 목소리에서 힘든 하루의 일상이 느껴졌다. 나이를 이렇게나 많이 먹었는데도 어떤 말로 아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디 아픈 곳은 없어?”
“네. 괜찮아요.”
아들은 어떤 말에도 다 괜찮다고만 대답했다. 오늘 아들의 대답은 모두 ‘괜찮아요.’이나 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다음 날 저녁 수화기 저편에 있는 아들의 목소리는 사정없이 갈라지고 거칠었다. 어제보다 더 소리를 크게 질렀을 것이고, 어제보다 몸을 더 고되게 굴린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거친 아들의 말소리는 오늘도 여전히 ‘괜찮아요.’만 반복했다. 평상시 아들은 일상생활을 공유하고, 자신이 느낀 새로운 감정, 상황을 얘기하는 것을 즐겼다. 수다스러운 나와 쿵작이 잘 맞아 끊임없이 얘기하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말을 아꼈다. 유격훈련하는 내내 아들의 대답은 ‘괜찮아요.’에서 맴돌았고, 나는 묻고 싶은 말을 못 하였다. 그렇게 유격훈련이 무사히 잘 끝났다. 유격훈련을 잘 마친 아들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유격 첫날 오전에 유격 체조를 2-3시간 하고, 5㎞ 뛰는데 힘들더라고요. 평지면 덜 힘들었텐데 산악 지대를 빠르게 뛰어야 하니 좀 힘들었어요. 그래도 첫날은 양호한 것이었어요. 둘째 날은 와, 하체가 완전 박살 났어요. 유격 체조 8번 온몸 비틀기를 하는데 그게 유격 체조 중 가장 힘들거든요. 근데 8번 동작을 하고 마지막 ‘반복 구호’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반복 구호를 계속하는 상황이 벌어져서 끊임없이 했어요. 8번 온몸 비틀기만 몇 시간 했어요. 그리고 5㎞ 뛰는데 정말 다리가 후들후들해서 자칫 다칠 뻔했어요. 첫날 근육통이 있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둘째 날 이후 모두 걸음을 제대로 걷는 병사가 없었어요. 다들 어기적 걸어 다녔어요. 셋째 날은 비가 와서 다행이었어요. 비를 맞으면서 했지만 그래도 가장 덜 고됐거든요. 마지막 날 40㎞ 행군은 침투로 바뀌었는데 저는 매복이어서 다행히 안 했어요.”
“작전에 많이 투입되더니 행운이 있었네.”
“그러게요.”
“힘든 유격훈련 끝내고 추석 연휴를 보내서 다행이다.”
“근데 연휴 때 작전이 있어서 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직 작전 일정이 안 나왔거든요.”
“작전이 있어도 한 번이겠지?”
“유격훈련으로 다친 사람들이 많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추석 연휴 작전이 나왔다. 이런 젠장, 아들은 5일 동안 3번 매복을 나간다. 수, 금, 일. 같은 소대원 중 5명의 병사만 추석 연휴 작전을 주구장창 나간다. 다른 소대원은 추석 연휴 작전 없이 푹 쉬는데 5명의 병사만... 임무가 같은 대원을 데리고 작전 나가면 매복 전 수행해야 하는 훈련을 생략할 수 있어서 그랬단다. 가장 속상할 아들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데 부모인 나는 어른스럽지 못하게 굴었다. 오히려 아들이 나를 이해시키고 안심시켰다.
‘어휴, 나이를 어디 다 × 먹었는지’ 글을 쓰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창피함에 저절로 비속어가 튀어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월 3일에 중대 회식이 있어서 외출을 한단다. 이 부대는 외출, 외박이 없어서 휴가 외에는 부대를 나올 수 없다. 항상 똑같은 산악 풍경만 보던 아들이 외출 소식에 설레고 있다. 비록 군복 입고, 부대 사람들하고 보내는 것이지만 종일 사회에서 지낸다는 것에 기대하고 있다. 아들이 추석 연휴는 반납하지만 이렇게 설레면서 외출을 기다리고 있으니 감사해야겠지. 어떤 상황이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아들,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이 하는 것이 편하다는 아들.
아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아들의 상황을, 도전을 성심성의껏 응원해 주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