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군대 갔다 2-
매복 작전을 수행하느라 추석 연휴를 다 보낸 아들은 중대 외출만 오매불망 기다렸다. 입대 후 소대원들과 함께 처음 부대 밖으로 외출하는 아들은 전날 통화에서 그 설렘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선임들도 처음 하는 행사란다. 아들만 설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병사들도 다 들떠 있단다. 오전 8시에 나가서 오후 5시에 복귀하는 외출에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 마냥 신난 아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들떴다.
당일 10시가 되자 카톡으로 사진이 수십 장 전송되었다. 푸르른 공원에서 개구진 표정과 행동을 하고 있는 병사들 모습이었다. 그 속에서 아들도 한없이 장난꾸러기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군대 가기 전 아들은 장난도 잘 치고, 실없는 농담도 잘하였다. 의젓하긴 했어도 그 또래에 맞는 행동을 했다. 그런데 군대 간 이후 변한 모습에 아들이 낯설 때가 많았다. 휴가 때는 그나마 덜 한데 면회 가서 아들을 보면 정말 내 아들 같지 않았다. 장난꾸러기 모습은 오간 데 없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군인의 각이 딱 잡힌 아들. 통화할 때도 실없는 농담은 1도 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에 낯섦을 느끼기도 하지만 짠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 아들은 내가 알던 해맑은 나의 아들이었다. 아들에게 톡을 보냈다.
“사진을 보니 신났는데?”
“네. 엄청 즐겁고 신나요.”
“뭐가 그리 즐거워?”
“부대를 벗어난 자체가 즐겁지요. 그리고 여기 공원에 꽃도 많고 푸른 잔디도 많아서 더 좋아요. 제가 사진 찍는 걸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소대원들과 같이 장난스럽게 까불면서 사진 찍으니까 너무 좋아요.”
신난 웃음을 담뿍 머금고 있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또 사진이 전송되었다. 이번엔 더 신나고, 장난스러운 병사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소대원들과 함께 즐기면서 21살의 모습으로 돌아간 아들 모습에 덩달아 나의 행복 지수도 한없이 상승했다.
점심 식사로 무한리필 고깃집을 갔단다. 중대가 같은 식당으로 가서 북적북적하게 식사를 했나 보다. 원래 시끄러운 곳을 기가 빨리는 것 같다고 싫어하는 아들인데 오늘은 그 북적북적 함조차 좋았단다. 시끄러움이 오히려 기분을 더 신나게 했다나.... 오늘은 무엇을 하든 아들에게 모든 것이 다 행복하나 보다. 부대에서 양념한 고기만 먹던 아들은 여러 번 접시를 채워 배부르게 잘 먹었단다. 평소에도 양념 고기보다 구이를 좋아하는 아들인데 공원에서 신나게 뛰어놀았으니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아들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오전 10시 이후로는 아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기특한 아들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사진을 보냈다.
오후가 되자 이번엔 4컷 사진을 찍는 영상과 사진이 전송되었다. 가발도 쓰고, 선글라스도 쓰면서 제각각 군복 위로 개성을 뽐내고 있는 병사들. 병사들 틈에 아이 두 명이 보였다.
“웬 아이들이야?”
“간부님 아이들이에요. 엄청 귀여워요.”
“함께 하는 거야?”
“원래 오늘 공휴일이라 간부님은 쉬는 날이잖아요. 그런데 일해야 하시니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것 같아요. 담임 선생님이 공휴일에 반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 나온 거지요. 아이들이 우리를 잘 따르고, 말도 잘 들어요. 소대원들과 4컷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어요. 거의 미쳐서 다양한 모습으로 많이요. 4컷 사진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썼어요. 원래는 카페 갔다 4컷 사진 찍고 P.C방에 가려 했는데, 사진 찍느라 P.C방은 안 가기로 했어요.”
“다행이네. 너는 P.C방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네. 오늘은 모든 게 정말 다 좋아요. 입대 전 친구들과 부산 여행 다녀온 만큼 즐거워요.”
아들은 대학 입학 후 중학교 친구들 9명과 처음 가평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부모 없이 친구들과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코로나로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아들은 친한 친구들과 처음 가는 여행에 기대도 했지만, 걱정도 했다. 장소 결정, 숙소 예약, 음식 준비 등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준비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행 준비하면서 친구들끼리 의견 충돌도 있었고, 이기적인 몇 명 친구의 모습에 실망도 했다. 그런데 여행 후 아들은 만족감만 100%이다. 아들은 기억으로 남을 친구들과의 여행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몇 날 며칠에 걸쳐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뮤직비디오로 정성스럽게 편집해서 친구들과 공유했다. 그 친구들 모임이 남자만 있다고 ‘고추밭’이다.
입대를 코앞에 둔 1월에 아들은 고추밭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9명의 친구 중 이미 입대한 2명을 뺀 7명의 친구와 다녀왔다. 부산은 이미 가족들과 다녀온 곳인데도 신기해하면서 즐거워했다. 태종대, 아쿠아리움, 서점 등 여기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곳을 다니면서도 신기해했다. 밤에 부산 앞바다에서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와 부산에서 먹은 회를 지금도 간혹 말하는 아들을 보면 역시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들은 친구들과 가평 여행을 다녀온 후 가평 여행을 인생 여행으로 꼽았는데 부산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인생 여행이 부산 여행으로 바뀌었다.
아들은 제대 후 고추밭 친구들과 여행을 이미 계획하고 있다. 제대 후 복학하기까지 계획을 이미 빽빽하게 짜 놓은 아들은 하루하루 그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 듯했다. 그런데 오늘이 부산 여행만큼 즐겁다니....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 될 것 같다.
오후 5시가 되어 부대로 복귀한 아들과 저녁에 통화했다. 아들은 여전히 들뜬 목소리였다. 아들만 들뜬 게 아니라 다른 병사들도 여전히 들뜬 마음인가 보다. 병사들의 시끌벅적함이 고스란히 핸드폰 너머 나에게 전해졌다. 나와 통화하면서도 아들은 동기들과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빨리 통화를 끊어 주었다.
생각지도 않은 특별한 하루를 마음껏 즐긴 아들을 보면서 이런 행사를 마련해 준 부대 관계자분들에게 감사했다. 공휴일에 소대원들을 인솔하면서 종일 고생했을 간부님들에게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공존했다. 얼마나 고생스러운 행사였음을 알기에 두 개의 마음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도 이기적인 나의 마음은 이런 깜짝 이벤트가, 병사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이런 행사가 더 많아지길 희망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 참 이기적인 부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