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의 병원일지-
“냥이가 밥을 잘 안 먹어. 하루에 한 번씩 사료를 주는데 어제부터 거의 먹지 않아 사료가 그대로 있어. 얘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걱정이 가득 담긴 전화가 왔다. 초기 신부전으로 사료를 레날 사료로 바꾸면서 입이 짧은 냥이가 사료를 잘 먹지 않을까 걱정했다. 천만 다행히 우리 냥이는 레날 사료를 잘 먹었다. 두 달 넘게 바뀐 사료를 잘 먹던 냥이었는데... 몸이 더 안 좋아졌는지 걱정이 됐다.
“엄마, 모레 냥이 재검사하는 날이니까 그때 수의사에게 얘기해 봐요. 그 외에 다른 일은 없죠?”
“얘가 간식이 먹고 싶은지 아침에 나를 보고 애처롭게 우는데 조금이라도 주면 안 되는 거지?”
“애처로워도 어쩔 수 없어요. 재검사 이후 수치 봐야죠. 그전까지는 엄마, 절대 간식 주지 마세요. 알았죠?”
“냥이를 위해서 그래야 한다니 알았다. 절대 안 주마. 아침, 저녁으로 약도 잘 먹고 했으니 좀 나아졌겠지?”
10월 9일 냥이의 재검사날이다. 아침에 언니와 함께 엄마네를 방문했다. 전날 자정부터 금식한 냥이는 벌써 우리를 경계했다. 언니가 아무리 코를 대도 언니의 코를 핥아주기는커녕 얼굴을 외면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예 우리를 피해 거실에 있던 냥이가 서재로 갔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냥이의 경계심만 부추겨서 병원에 데려가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엄마께서 냥이를 몇 번 부르자 냥이가 우리를 경계하면서 거실로 살금살금 나왔다. 엄마께서 냥이가 좋아하는 담요로 냥이를 감싸 케이지에 넣으셨다. 케이지에 들어간 냥이는 병원에 가는 것이 무서운지, 외출이 두려운지, 아니면 모든 것이 억울한지 울부짖음이 시작되었다.
“냥이야, 병원 가서 검사해야 아야 안 하지.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옆에 있을 거니까 안심해.”
엄마의 다독임에도 냥이의 울부짖음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그치지는 않았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야옹거림을 반복하는 냥이를 데리고 차에 탔다. 케이지 바로 옆에서 엄마는 연신 냥이를 안심시키셨다. 엄마의 다독임과 냥이의 울부짖음이 차 안을 채우고, 그 소리가 차 안을 가득 점령할 때쯤 다행히 우리는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는 우리만 있어서 빨리 진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휴, 많이 나빠지지만 않아도 좋을 텐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수의사의 낮은 넋두리 소리가 들렸다. 쿵 내 심장이 내려앉았다. 간식을 주지 않고 약을 잘 먹이면 냥이의 상태가 좋아질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는 무지의 산물이었던 것인가? 차 안에서 그렇게 울부짖었던 냥이, 병원에 도착하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케이지에서 벌벌 떨고 있는 냥이, 냥이를 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냥이의 진료가 시작되었다. 진료실에 케이지를 들고 들어가 수의사 앞 테이블에 냥이를 꺼냈다. 냥이가 좋아하는 담요에 싸서 냥이의 앞다리만 뺐다. 그곳에서 검사에 필요한 피를 뽑았다.
“애기가 정말 순하고 착해요. 이제 다 됐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동안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 모든 과정을 조그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오직 벌벌 떨면서 감내하고 있던 냥이는 케이지를 가져오자 얼른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서는 그렇게 케이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던 냥이 었는데 병원에서는 얼마나 빠르게 케이지 안으로 들어가던지... 냥이가 감내하고 있는 무서움, 두려움이 우리에게도 느껴졌다.
그새 우리만 있던 병원에 다른 고양이 가족이 와 있었다. 남매인 두 마리 고양이는 케이지 안에서 집사에게 연신 뭐라고 하고 있었다. 집사가 케이지 안에서 한 마리 고양이를 꺼내 품에 안았다. 야옹거렸던 고양이는 집사의 품에서 안정을 찾았는지 조용해졌다. 우리 냥이와는 다르게 애교가 많은 고양이인 것 같았다. 집사에게 떨어지려 하지 않고, 집사의 품에 꼭 안겨있었다. 냥이의 검사 결과가 나오는 동안 이 아이들의 진료가 시작되었다. 집사 품에 안긴 고양이가 먼저 아무 탈 없이 진료를 받았다. 그 후 케이지 안에 있던 고양이를 진료 테이블에 꺼내 놓으니 이 아이는 진료를 거부하는 듯 야옹거리면서 발버둥을 쳤다. 집사가 품에 안은 고양이를 케이지에 넣고, 발버둥 치는 고양이를 수의사와 함께 잡으면서 진료를 겨우 마쳤다.
“그래도 오늘은 얌전하네요. 잘했어. 레오.”
레오라는 아이는 의사 표현이 분명한 아이인가 보다. 진료받기 싫은 마음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냥이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아직까지 케이지 안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아마 집에 가는 길에 연신 엄마에게 하소연하겠지. 자기가 얼마나 무서웠고 아팠는지 엄마에게 끊임없이 얘기할 것이다.
“냥이 보호자 들어오세요.”
냥이 피검사가 나왔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수의사 얼굴을 살폈다. 냥이의 초기 신부전을 말하던 그런 경직된 얼굴이 아니었다. 수의사는 피검사 결과지에 빨간 볼펜으로 숫자를 썼다. 숫자를 쓰는 표정에 웃음이 보였다.
“한 번 나빠진 신장이 좋아지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나빠지지만 않아도 다행인 거죠. 근데 여기 보세요. 지난번에 2.14에서 2.00으로 좋아졌어요. 정상 범주가 0.8~1.8인데 정말 다행이에요.”
그제야 언니도 나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도 약은 계속 먹어야 한단다. 사료도 레날 사료만 먹고. 그리고 내년 1월에 다시 검사를 하기로 했다.
“선생님, 냥이가 사료를 예전만큼 안 먹어서 그러는데 일주일 한 번 정도 간식 줘도 되나요?”
“네. 대신 조금만 주세요.”
수의사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냥이의 한 달 약과 냥이의 습식 간식을 사서 병원을 나왔다. 지난번 검사 결과로 절망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은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역시 냥이는 차를 타자마자 엄마에게 연신 야옹거리면서 하소연했다.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어. 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