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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Oct 20. 2023

넘사벽, 그 높은 벽을 가뿐히 넘는 사람들

 같은 곡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연주해도 같은 법에 한 번이 없다. 

참 신기하다. 더욱이 어느정도 귀가 발달한 사람에겐 연주자 마다의 시그니쳐같은 무언가를 발견한다. 

 과연 쇼팽과 모차르트 혹은 베토벤 처럼 전세계 모든 사람이 알만한 위대한 음악가들의 곡을 지금 그들이 하늘에서 듣고 있다면 누구의 연주가 흡족할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그들을 향한 끊임없는 오마주의 향연들은 인류의 맥이 지속되는 한엔 끊어지지 않으리라. 그래서 클래쓰가 다른 예술은 언제나 시대와 상관없이 영원한 법 아니던가. 

 우울한 기분에 우울한 곡만 모아 듣게 되는 날에도 그 많은 곡 들중 같은 노래라도 유독 가슴을 후벼파며 깊숙이 눈물샘에 홍수를 일으키는 곡이 분명 있다. 사람의 감성이란 시시때때로 변화무쌍 한지라 당최 믿을 것이 못되는 것 같아도, 인간의 기본정서는 다 비슷하니깐..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들의 주옥같은 노래 역시 얼마나 많이 리메이크 되고, 헌정 되며, 연주되고 있는가. 그럼에도 우리나라 기타리스트 김태원님의 연주는 가히 독보적이다. 그의 기타는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기타가 운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그냥 밖으로 내지르는 슬픔이 아닌, 무덤덤하고 초연하게 툭 슬픔을 던져놓는다. 그것도 오래도록 숨겨놓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꺼집어낸 묵직한 것을 말이다. 우울할 때 김태원님의 곡들은 우울함을 최상치의 우울로 끌어올린다. 

 슬픔이 아름다울수 있다는 건 음악으로 이렇게 표현이 되는구나 알게되는 순간이다. 그저 아름답고 또 아름다울 뿐이다. 그가 써내려간 수많은 곡들의 가사또한 인생을 반추하게 하며 우리를 울보로 만들기 충분했으며, 그를 닮은 기타연주는 우리의 영혼을 많이도 달래주었다. 소울이 그대로 전해오는 소름돋는 경험은 부활을 그저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많은 팬을 양산시켰고,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두 번은 나올수 없는 그만의 클래스를 보유할 것이다. 비단 한 시대를 풍미하는 문화예술인들 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감상하거나 혹은 글을 읽거나, 또는 쓰거나, 아니면 옷을 입거나, 일을 하는 모든 과정에 있어서 우리의 소울이 스며드는걸 인지하지 못한다. 머리아프게 신경쓸일이 태산인데, 원래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피곤한 건 언제든 감수모드로 일관해야 팔자가 수월해진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우리의 정신이 깃들고 있다는 걸 알면, 갑자기 얼마나 조심스럽고 신중해 지는가. 부끄럽고 숨고 싶을 정도다. 

 나의 정서가 경박하고 촌스러우면, 나의 말과 행동은 고스란히 따라간다. 내가 슬픔이 많고, 우울이 깊으면 눈빛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늘이 항상 드리워져 있다. 천박하고 얕은 영혼이 담긴 사람이 결코 말과 행동이 고급질 리 없다. 삶을 대하는 자세와 살아가는 태도는 언제나 그것의 영혼을 반영한다. 완벽한 투사 라고 볼 수 있다. 

 성실하고 완벽하게 잘 살아온 사람들이 언제나 그에 맞게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법은 없다. 삶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건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는 빼박중의 빼박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과정에 있어선 감히 누구도 나설 수 없을 것이다. 꼭 이길 싸움만 골라하고, 좋은 결과만 가질 수 있는 것에만 덤벼드는 인생이면 너무 얍실하지 않은가. 

 넘사벽의 클래스들은 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 천재성을 부여받은 특혜자가 아니라, 특별해질 수 밖에 없을 만큼의 노력을 다해서 이루어낸 성과이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결과물, 그 레거시를 누릴 자격은 우리 모두에게 차별없이 주어져 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럼에도 지금 병들고 나약한 정신으로 일어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자들, 아니면 더 이상 손 쓸수 없이 망가져 버린 도덕성 결여의 바닥치는 이들,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고 세상에 불만만 가득한 치졸한 영혼들, 성실은 일찌감치 개나줘버린 게으른 기생충들, 노력이란 걸 생전 꿈도 꾸어본 적 없거나, 아니면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갈등과 좌절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영혼을 돌보는걸 이미 까먹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노래와 연주, 영화와 서적을 늘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뻔하다. 그들이 인생을 걸고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치열함의 결정체다. 그 기운을 햇빛처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구석구석 정화될수 있다. 빈티나는 영혼은 그만 벗어버리자. 싼티나는 정신은 제발 사양하자. 그러다보면 그들과 비슷무리하게라도 우리만의 시그니쳐같은 그 무엇을 얻게 될 것이다.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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