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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Oct 20. 2023

당신의 샌드백은 누구인가요

 피로도가 급상승하는 날엔 뻔하다. 분명 나의 신경망을 온통 헤집고 돌아다닌 사람때문 이었으리니, 그마저도 한 명이면 감사한 일이다. 집과 일터, 주변 안팎에서 스트레스를 얹어주는 사람들이 등장할 때면 우린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찾게 된다. 스트레스에 또 스트레스를 두 배로 얹어 주게 되는 격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있는 게 미안하고, 또 한심하지만, 속내를 풀어낼 만한 가장 만만한 아니 가장 편안한 사람이 바로 가족과 연인과 친구 아니던가. 물론 이마저도 마땅치 않다면, 차라리 다행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머릿속으론 그러면 안되지 다짐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빵하고 터지게 되는 건 여지없이 그들 앞에서니...못나디 못난 자식이요, 애인이요, 친구가 따로 없다. 

 이와는 반대로, 그들이 마치 미리 작당 모의라도 한 듯  한 데 뭉친 거처럼 자신을 들들 볶을 때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적시 적타에 짠 것처럼, 참 신기하게도 골고루 타이밍이 맞아 떨어지며 모두가 덤벼든다. 그럴 땐 정말 호적을 파던, 이별을 고하던, 의리를 엿바꿔먹던 무슨 수를 써서라고 도망가고 싶어진다. 

 안그래도 삶이 피곤해 죽겠는 마당에, 덜어주지는 못할 망정 보태고 또 보태지는 스트레스에 압사당하지 않으려 몸부림을 쳐야만 한다. 실상은 하나가 꼴보기 싫으면 다른 모든 사람이 괜히 싸잡혀 한통 속으로 보이는 것 뿐이지, 그들은 단체로 아무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우리는 지난 일까지 꺼집어 내서, 과거의 과거까지 거슬러 트집을 잡아대기 시작하며 억지를 부리고, 우김질에 열을 올린다. 세상 당할 자 하나도 없는 망난이 그 자체, 바로 자신이 스트레스 덩어리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관계에 있어서도 완벽함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끼리 어울려 사는 이 세상에서, 누가 조금은 덜 갖고, 덜 부딪히고, 덜 화를 내야만 모두가  탈없이 살 수가 있다.

 그럴 때마다 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하는 건 그저 이해심뿐 아닐까 싶다. 참 사람 맘이란게 그렇지 싶다. 내가 한 짓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나의 입에서 속사포처럼 쏟아부을 땐 특별한 대안도 없는 그들의 부족한 이해심을 못내 서운해 하지 않는가. 정작 반대의 입장으로 되고 나면, 아니 되고서도 바뀐 것은 없다. 

 역시 그들이 조금만 더 아량있게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랄뿐, 나의 입장만 고수하게 되어 모두가 한순간에 꼴보기 시러져 버린다. 사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볼 사이라 함부로 대하는 게 없지 않아 있다. 글쎄. 또 볼 사이로 남을건지, 영영 두고 보지 않을 사이 인지는 그때 가봐야 알 일이지만, 나도 그들도 서로에게 못할 짓 하고 있는 건 맞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미친 듯이 올라올 땐 이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럴수록 나도 그들도 자신의 감정선을 더 나가지 않게 지키는 것이 바로 사람의 기본됨 아니던가. 

 항상 쏟아 부을대로 쏟아 부은 후 메아리처럼 후회는 꼭 돌아온다. 알면서도 매번 같은 실수를 밥먹듯이 하는건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한테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타인들에게 상처를 내는지 받아본 적이 무수히 많으면서도 꼭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멍청한 건지, 기억력이 온전치 못한 건지 우리는 자신을 안타깝게 여겨야 한다. 사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법 한데도 왜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하는지 항상 밀려오는 후회속에 답답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당연한 건 결코 없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받아주는데 한계를 느끼게 되는 순간, 이미 뒤틀린 관계로 전속력을 다해 변질되 간다. 그걸 알면서도 그들의 심장에 난사해대는 주둥이의 만행은 매로도 다스릴 방법이 딱히 없다. 

 우리는 스트레스 속에서 자신을 구하는 방법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 여럿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살면서 인류를 위해 큰 포부를 안고 좋은 일까진 못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 스트레스 폭탄을 날리지 않는 것만 해도 장한 일이다.   칭찬받을 일이라서 슬프지만, 남들은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나이불문, 지위불문, 성별 불문이다. 

 인간사회에서 타인을 위한 봉사와 희생이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자신보다 좀더 남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 없는 곳에서 그럴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님에도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건, 그만큼 나보다 남을 조금이라도 배려하는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빡!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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