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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Oct 20. 2023

앞으로만 걷기

 예기치 않게 세워놓은 계획들이 다 틀어져 버렸다. 

뭐 그렇지 항상. 내 뜻대로 다 되면 그것 역시 스릴 빵점의 밋밋함 그 자체겠지. 그런 재미없는 뻔하고 진부한 스토리는 영화에서 조차 초장에 꺼버리고야 만다. 하지만 뜬금없이, 느닷없이 닥쳐오는 그야말로 밀려오는 시시각각의 사건들이나, 건강이 무너지는 변화에 담담해할 사람은 없다. 

  어디던, 언제던, 누구던, 가리지 않고 차별없이, 공평하게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그동안 건강관리하며, 열심히 또 착실하게 삶을 꾸려가면 뭐하나. 한방에 넉다운 시킬만한 사안들은 누구하나 가리지 않고 참으로 우리가 살아오던 방식대로, 열심히 그리고 착실하게 괴롭힘의 혀를 낼름거린다. 

 그래. 항상 느끼는거지만, 방심은 역시 나만 손해지. 

 내가 또 오냐오냐 둥가둥가 만만하게 내 품에서 보란 듯이 얼러주고 달래주면 말 잘 듣고 순순히 나를 따라올 것이라 믿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댓가치곤 혹독한 뒷끝을 맛봐야 하는 게 분하고 억울할 따름인 건 나 뿐만이 아닐테지. 

 형형색색의 괴생물체라면 차라리 무섭지도 않겠다.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어떻게 된 게 특징적이게도 다들 하나같이 같은 모습이다. 형체가 없다는 것. 특정 냄새도 없고, 그래서 나를 집어삼키러 오는지 감조차 있을 수 없게 그렇게 나에게 균열을 가하기 시작한다.   단박에 나루해치워버릴 생각은 없나부다. 늘 몇 번 가지고 놀다 흥미를 잃은 듯, 이거봐라. 꽤 버티는데? 흐트러지질 않네? 에이 재미없어! 하며 내 인생의 한 구간을 흠씬 두들겨 패놓고 어디론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역시 형체가 없고, 냄새가 없어, 어디로 가버렸는지 일절 알 길이 없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항변을 하건, 맞싸워 이겨야하거늘, 놀다버린 인형마냥 온몸이 힘아리가 없고, 정신도 돌아올 길을 터줘야 할 일이 남아있을 뿐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싸울 수 있는 것만은 아닌가부다. 우리의 맷집도 나날이 업그레이드가 되가고 있는지라, 생각보다 꽤 설득력있게 강력해지고 있다. 두들겨 패는 입장에선 마구잡이겠지만, 당하는 사람한텐 이젠 패턴이란 것이 보여지고 익혀지게 된다. 역시 고등동물인 사람이다. 

 일정하게 내가 쓰러지고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걸 보면, 정신의 베터리를 갈아끼울 때 쯤인거 같다. 여지없고, 봐주지 않는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공격을 받곤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박애주의적인 관점에서 공평하게 고루고루 타격을 가하며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인격도 없는 것이, 형체도 없고, 냄새도 없고, 자취도 밟을수 없게 난해하고 복잡한 놈이지만, 분명한 건, 생각보다 쉽게 물러나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쉽게 지치고, 쉽게 질린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유일한 것은 역시 일단은 무조건 버티고 보자라는 심사로 뒷걸음치지 않는 것이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겨루기 한판으로 쫑낼 것이 아니라, 절대로 먼저 손을 놓거나, 무릎을 꿇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다짐하는 그 시간을 믿고 따라가는 것, 그것이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어준다. 삶은 내가 물러서지 않으면, 결코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뚱이가 애처롭긴 하지만, 원래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하지 않은가.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하면된다. 죽사발이 되게 흠씬 두들겨 맞아도, 이 순간은 분명 과거가 된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우리는 영광의 상처를 훈장처럼 이 삶에 새겨넣을 것이다.

 뒷걸음질 칠지라도, 결코 뒤로 걷는 법은 우리는 배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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